누가 봐도 다른 가게와 다르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방법, 그래 바로 그거다. 페인트칠.
당장 시장에 가서 민트색 페인트를 산 뒤 가게 외부를 색칠하기 시작했다. 많고 많은 색깔 중에 왜 하필 민트색일까. 민트색이 하얀색보다 조금 덜 눈에 띠긴 하지만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민트색 가게는 없어 보였다. 또한 저렴한 가격으로 최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외부 단장이었다. 30년 이상 된 건물이라 손볼 곳이 많았지만 할 수 있는 건 페인트 칠 뿐이었다. 가게를 지탱하는 기둥은 이미 썩어간 지 오래되어 보였고, 건물이 붕괴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민트색 건물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이 묘하게 다가오는 날이다. 특히 옷가게 메인인 골동품 같은 오래된 쇼윈도 창은 제아무리 세련된 옷을 데리고 와도 빈티지하게 비추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쨍한 빨간색 남방도 빛바랜 색처럼 보였고, 녹색도 카키빛처럼 물들어버렸다. 허허, 참 신기하다. 누군가 색깔 마법이라도 부리는 걸까.
비바람이 부는 날이면 쇼윈도 창도 함께 춤추는 것만 같았다. 흔들흔들, 덜컹덜컹, 마치 박자 맞춰 추는 알 수 없는 존재가 있는 것처럼. 옷가게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공간은 옷을 장식하는 쇼윈도가 아니라 유리창 밑바닥이었다. 손님이 디피 된 옷에 이끌려 판매까지 연결되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쇼윈도 바닥을 보고 반해서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짙은 갈색 융을 깔은 그곳에는 신발 몇 켤레와 액세서리용 벤치의자를 두었고, 의자 위에는 책 두 권을 나란히 올려두었다. 덜렁 책만 있으면 어떤 의미를 가진 책인지 알 수 없으니 글과 사진이 있는,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의식 치르듯 매일 새롭게 펼쳐 놓았다. 어떤 날은 잔잔히 흐르는 강가 사진을, 또 어떤 날은 꽃이 흩날리는 찰나를 담은 사진을, 새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 아무도 밟지 않은 풍경을 펼쳐놓기도 했다. 그날그날 내 감정을 잘 묘사해주는 구절이 있을 때마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옷가게 주인장이 추천한 책 페이지를 누군가 유리창 밖에서 유심히 바라보는 풍경을 상상해본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장갑 같은 사람일 것이다. 차가운 손을 녹여주는 따뜻한 체온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이었으면 좋겠다.
쇼윈도를 비추고 있는 조명을 작은 샹들리에로 바꿨다. 샹들리에는 전구에 비해서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긴 하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작은 전구들은 며칠 안돼서 펑펑 터지는 소리를 내며 꺼져버렸다. 전구 수명이 이렇게 짧아서야 원, 그래도 가게를 가장 빛나게 해주는 것 중 하나가 샹들리에라고 생각했다. 인테리어에는 젬병이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 밝다 못해서 얼굴에 작은 점하나 조차 홀라당 보이는 불편한 가게가 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내 가게가 다른 어떤 장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손님들 대부분은 옷보다 차 한잔에 대화를 원하는 듯한 사람들이 많았다. 옷을 사러 오는 것보다 늘 자신이 앉았던 익숙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꺼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싫지는 않았다. 옷이 좋든 사람이 좋든 민트 색깔 오래된 가게가 좋든 어떤 것으로 마음이 이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티셔츠 한 장이라도, 스카프 하나라도 팔아야 한다는 목적이 자신을 괴롭혔다.
상대를 마음이 아닌 이윤추구를 위해 만나고 대화하는 게 괴로운 나날이 지속되었다. 목적 없이 순수한 만남이었으면 좋겠는데 장사를 시작하며 그런 것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가게를 하지 않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나는 지금까지 상대를 판단할 때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 사람인지 단정 지으며 관계를 맺었다. 서로 만나 밥 한 끼를 사면 상대도 나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손해 본다고 생각할 때는 곧바로 만남을 끝내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만 알던 사람이 어느 날 문득 장사꾼이 되어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고 싶다고 말을 하고 있느니, 나란 사람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 맞다.
우당탕탕, 천장에서 무언가 가볍지만 요란한 발소리가 들렸다. 야옹, 찍찍, 서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 소리를 듣고 옆집에서 장사를 하는 주인아주머니께 곧장 달려가서 천장이 무너질 것 같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천장 어딘가 나무판자가 썩어서 그 사이로 고양이와 쥐가 들어가서 '톰과 제리'놀이 중이라고 했다.
"별일 없을 거야. 여기저기 고양이 천지인데 발 달린 짐승이 천장이라고 안 들어가겠어? 호호호"
주인아주머니는 이미 오래전부터 일어난 일처럼 익숙한 말투였다. 월세 25만 원에 나무 기둥은 썩어가고, 천장은 고양이와 쥐로 언제 무너질 줄 모르는 곳이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이런 소리마저도 적응이 되어갔다.
톰과 제리 사투가 끝난 듯 며칠 동안 천장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근처 상가 대부분 낡은 건물인데, 그깟 천장이 우리 가게뿐이겠어? 어디든 떠났을 거야. 암만 고양이는 그런 동물이지.'
몇 시간 지났을까. 어딘지 모를 곳에서 작고 나지막한, 엄마를 애타게 찾는 아이 목소리를 닮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던 낯선 소리였다. 알고 보니 며칠 전에 있던 고양이가 새끼를 우리 가게 천장에 낳았다. 그야말로 우리 가게는 소리 소문 없이 1층은 옷가게, 2층은 고양이 하우스로 변했다. 월세는 홀로 내고 있는데 내 허락 없이 룸메이트로 살고 있는 고양이가 얄미웠다. 아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주인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들어와 새끼까지 낳았다. 게다가 화장실 없는 천장에서 응아를 여기저기 싸고 다닐 텐데 상상만 해도 질색이다. 그렇다고 주인아주머니에게 "고양이가 2층에서 무단 침입해서 살고 있으니 월세 5만 원이라도 깎아주세요."라고 할 수도 없는 일. 혹여 대 소변을 밖에서 해결하는 고양이라면 할 말은 없겠지만 말이다.
우리 옷가게 상호가 <COCO>인데 고양이와 함께 장사하는 줄 알았다면 다른 상호를 지었을 것이다.
<고양이가 살고 있는 옷가게> 어떤가. 원초적인 이름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다정해 보이는 옷가게가 되지 않았을까.
민트색 페인트, 오래된 쇼인도 창가, 분위기 가득한 샹들리에 조명, 가게를 찾는 따뜻한 사람들, 고양이 가족...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곳은 동네 다락방 같은 친근한 가게이다. 우리 옷가게를 소개하자면 이렇게 소중한 것들이 가득하다. 비록 인건비도 찾지 못하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지만,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모래알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이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그 시간이 한없이 튀어나오는 줄자처럼 오랜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야오오옹~ 그새 고양이들이 조금 컸다고 얼굴을 보여줬다. "건강하게 잘 자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