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하나 사이, 청력의 세계.
쉐어하우스에서 내가 가장 오래 살았던 방은 계단 바로 아래의 1인실이었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 누가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 심지어 문을 열고 나와 화장실을 가는지, 부엌을 가는지까지—하루 종일 소리에 노출되는 공간이었다.
처음엔 솔직히 시끄러웠다.
나무가 아닌 철제 계단이라, 탕탕 울리는 소리가 심할 땐 '계단소음'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귀가 '길들여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니, 소리 나는 시간대가 몸에 새겨졌다.
누가 몇 시에 퇴근하는지, 나갔다가 언제쯤 돌아오는지, 소리만 들어도 파악할 수 있게 된 거다.
어느 순간부터는, 지금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까지 짐작할 수 있게 됐다.
2층 친구 중 한 명은 슬리퍼를 살짝 끄는 습관이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항상 빠르게 계단을 올라왔다.
누군가는 현관 번호키를 리듬감 있게 ‘띠띠띠’ 누르고,
또 어떤 친구는 천천히, 마치 숫자를 되새기듯 눌렀다.
심지어 소리는 개인의 성격과 분위기를 드러낸다.
누구는 문을 조용히 닫고 나가고,
누구는 항상 쾅쾅 문을 닫는다.
윗층 룸메이트들이 말싸움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한 명이 문을 귀 찢어지게 닫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날 밤, 너무 큰 소음에 다른 룸메이트들과 상의해서 결국 관리자에게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다들 묻는다.
“그 정도면 진짜 시끄럽지 않아? 어떻게 살아? 괴롭겠다.”
맞다. 시끄럽다. 근데 그렇게만 생각하면 못 산다.
나는 오히려 이 시끄러움을 소리 퀴즈로 바꿨다.
“지금 들어온 건 누구일까?”
“발소리가 무겁네. 오늘 힘든 하루였나?”
“문 여는 소리가 느린 걸 보니, 망설이고 있는 기분인가?”
“금방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네. 뭘 놓고 갔나?”
이렇게 혼자 추측하고,
나중에 마주치면 “요즘 좀 피곤해 보여요.” 라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소리’로 사람을 살피고, 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갔다.
지나고 보니, 계단 아래 그 방은 나만의 훈련소였다.
청력도 예민해졌지만, 그보다 더 자란 건 관찰력, 공감력, 그리고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를 발견하는 능력이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오히려 좋아!" “러키비키자나~” 하는 장원영식 멘탈을, 아마 그때 키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말해주고 싶다.
만약 음악을 하거나, 소리에 민감한 사람이 있다면 계단 아래 방도 괜찮다고.
생각보다 즐겁고, 의외로 평화롭다고.
그리고 정말, 청력이 좋아진다.
그 방에 살았을 때 들린 소리들은 누군가에겐 소음이겠지만,
나에겐 익숙한 친구 같은, 일상의 배경음이었다.
매일 들리는 반복적인 소리 속에서, 나는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그 소리로, ‘평범함’이라는 것까지 배웠다.
그렇게 매일 들리는 소리 속에서 나는 일상의 소중함과 소리로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