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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zue Oct 14. 2022

사랑은 내가 선택할 수 없기에 더 값지고 아름다워진다.

당신이 지금 외사랑, 짝사랑중이라면 당신은 아주 멋진 사람임에 분명하다.





사랑이란 인문학적 성찰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삶'은 '사랑'과 완전히 다르다.

당신이 그토록 어렵게 느낀 '사랑'은 그래서 더 맑게 빛나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사랑보다 어렵지는 않다. 적어도 삶은 선택을 할수도 쉽게 좋게 치부하듯

끝을 낼 수도, 인연을 맺고 끊는 선택권은 주어지기 때문이다.




(1) 사랑은 세상의 박스를 채우는 것과 비슷한 '추억놀이'이다.


사랑의 컬렉션을 채우는 일은 아주 값지다.

그리고 그 사랑의 콜렉션들이 하나 둘 쌓이면

순위가 매겨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 말은 즉슨,



다음 인연이 만약 오더라도 지금의 힘든 사랑마저 추억처럼 보관하면 맑게 빛나게 될것이란 뜻이다.

내 지난 날들의 인연에 대해 서운함을 느낀다면, 너무 수치심이 가득하다 하더라도 결국은 콜렉션이다.

그 인연의 결실은 맺을 이유가 없게 된다는 것. 이별 이후에 또 다른 사랑으로 우린 배워갈 것이다.








그 유치함


그 찌질함들을.









내가 꽃필 수 있었던 유일하고도 짧은 기간

그리고 벚꽃이 2-3주를 지나 나머지 계절을 앙상하게 사는 것처럼

내 인생도 빈공간으로 살아가게 되는 그 날들을 말이다.








(2) "나는 네가 나를 사랑하기를 원해."                          

                           라는 말처럼 사랑에 가까운 말은 없다.




사랑이라는 것을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사실 사랑에 대한 부담성을 잊어서 일지 모르겠다.


..


언젠가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 줄 지 모르겠다는 그 믿음

그래서 계속해서 사랑을 표현하는 그 무거움. 그 마음이 아름답고 숭고스러운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사랑을 하는 입장에서는 열정적인 사랑임에 분명하다. 

받는 입장에서는 어리둥절하면서도 멋지게 느껴진다. 짝사랑들이 대게 그렇다.














(3) '사랑'에 대해 받을 때의 부담이 받을때나, 줄때나 벅차고 참 무겁고 힘들었다.

그런 '사랑의 무거움'을 개념 잡고 나서 이해하게 되었다. 감사하면 예뻐진다.





나에게 헌신적이면서 뭔가 바라지 않는 그 느낌. 나이가 들수록 대가없는 사랑만큼

아름다운 외사랑은 없었다. 그러니 받는 쪽에서도 어느정도 상대에 대한 심정을 알게되면

부담은 없으나 설레이게 되는 '사랑의 경계선에 서서' 그 사랑을 감사히 여기게 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는 것을 '부담'이 아닌, '감사'로 여기게 될까?









어릴 때는 내가 원하는 사람을 원한다. 하지만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원하는 사람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니, 사랑에 대한 편식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사랑에 대해 배가 고파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는 작은 사랑이 감사하게 된다. 고독이랑은 다르다. 짝사랑이랄까. 헌신에 가까운. 근데 우린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를 외사랑하더라도 그것은 '숭고'한 추억과 행동이며- 고독과는 다르다는 것을. 사랑을 날로 먹으려 들지 않기에 당신은 '짝사랑'마저 감당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4) 사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다. 주는 사랑에 대한 깊이를 아는 순간 감사하고 설레이게 되는 것.



그러니 격정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이 더 멋있다고 본다. 깊이를 헤아리지 않고 표현하는 사람말이다.


나에게 많은 것들을 주고도 본인이 더 행복해하는 그런 사람. 그리고 아낌없이 다 주고 헤어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기억이 남고 좋은 것이다. 부담이 아니다. 고마운 것이다. 그러니 우린 외사랑을 자주 해야겠다.








:

:

*



당신이 잘 됐으면 좋겠다.

당신을 사랑해준 그 고마움들.

잊지말고, 당신도 했으면 좋겠다.


당신은 너무 예뻐보일테니까. 그것이 수치나 찌질함이 아님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 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사랑이라는 것은 '질투'를 내포한다. 누군가랑 만나는 데 내가 아닌 다른 이성과 있다면 질투를 해야 사랑의 증거이기도 하다. 프루스트에서 말하는 양성애적 본질성에 기여해서도, 동성친구들 끼리도 질투를 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것도 '사랑'의 일부일까? 성적 정체성에 혼돈을 말하자면 많은 사람들은 일정 부분 동성애가 일관하고도 있으며 그것이 동성이 아닌 동물, 물건, 텍스트가 될수도 있다는 사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한용운, 「알 수 없어요」






 우리는 상대방을 위해 내 마음을 죽이고서라도 사랑해본 '절절함'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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