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자에게 본질은 초월적이다
삼각형을 그린다고 했을 때 정확히 180도에 합하는 삼각형을 그릴 수 있을까? 추상적인 것을, 본질적으로 정의하고 이를 실제와 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플라톤은 이에 반대한다. 실제 어디에 존재한다는 것인가. 그는 이데아의 세계를 믿는 철학자이다.
우리는 태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태어난 직후에도 동일함이나 큼, 작음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것들 일체를 이미 알고 있었겠지? 왜냐하면 지금 우리의 논의는 특별히 동일함에 관한 것만이 아니고, 아름다움 자체라든가 좋음 자체, 그리고 올바름 자체나 경건함 자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니까. 말하자면 내가 지금 말하고 있듯이 우리의 문답을 통해서 묻고 대답할 떄. "-인 것 자체"라는 표시를 하는 모든 것들에 관한 것이기도 하기 떄문일세. 그래서 이 모든 것에 대한 지식들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획득해 갖고 있었다는 것이 필연적인 것일세.
- 《파이돈》
에이도스 "-인 것 자체"는 용어, 그 말대로 아름다움의 자체 좋은 자체 올바른 자체 경건한 자체등의 모든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이러한 완전함이 없다. 오직 불완전한 아름다움이 있고 불완전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파올로 베로네세의 플라톤이 존재한다. 완전한 180도의 균형을 이루는 삼각형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에 그리스에서 등장한 것이 '분유 分有 이론'이다. 《파이돈》에서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이 아름다움 자체에 의해서 아름답게 된다." 즉 아름다움이라는 에이도스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여러가지로 사유된다. 분유 라는 말 그대로 '일부분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분유 이론은 '사각형 자체' '아름다움 자체''인간 자체'라고 한다. 이러한 양대 산맥으로 '상기이론'이 존재한다. 플라톤은 인간 영혼이 육신에 들어오기 전의 이데아 세계속에 살고 있다 에이도스를 알고서 불행히도 육신에 같혀 에이도스를 잃어 간다고 말을 한다. 플라톤의 의식에 따라 아름다움은 기억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저서 《국가》에서도 보면 상기이론으로 레테의 신화가 등장한다.
'망각의 평야'로 나아갔다네. 이곳은 나무도 없고 땅에 자라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네. 그들은 '무심의 강'옆에서 야영을 하게 되었는데, 이 냇물은 어떤 그릇으로도 담을 수 없는 것이라네. 그래서 이 물은 모두가 어느 정도는 마시기 마련이지만, 분별의 도움을 받지 못한 자들은 정도 이상으로 마시게 된다네. 일단 이를 마시게 된 자는 모든 걸 잊어버리게 된다는 군.
-《국가》
레테는 이승과 저승의 중심에 있는 곳으로 황량한 땅이다. 영혼은 이 곳을 지나야만 이승으로 살게 된다. 이를 '무심의 강''망각의강'이라고 한다. 영혼이 이 거리를 지나면서 '레이도스'를 망각하게 된다. 강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영혼들은 결국 망각의 물을 마시고 그나마 물을 적게 마신 영혼은 현명한 인간으로 살게 된다. 그리고 너무 많이 물을 마신 인간은 '무지한 인간'이 된다.
현실을 살아야 하는 사람이 '에이도스(기억)'을 상기하는 것은 진정한 이데아의 세계를 뜻한다. 그래서 순수한 에이도스를 본다는 것은 결국 죽음으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을 벗어나 순수한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 플라톤은 말한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은 육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는다" 즉 그는 에이도스를 상기하려면 순수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경험과 감각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