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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Sep 08. 2023

무도의 기본입니다

그녀의 컬러벨트 (3)

“태권, 안녕하십니까!”     


도장 입구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엄마도 관장님과 사범님, 아이들에게 인사를 한 후 뒤편 어딘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어색함을 견뎌냈을 것이다.


수업은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했다.

가볍게 몸을 풀어주는 동작들을 이어갔다. 일자로 다리 찢기, 창틀 잡고 한발 뻗기, 다리 올려 높이 차기....


다음은 윗몸일으키기, 엎드려 팔 굽혀 펴기와 줄넘기 백 개다. 몸풀기가 끝나면 도복의 매무새를 가다듬고 기본 품새를 배웠다. 사범님이 앞에서 태극 1장부터 8장까지 시범을 보이면 수련생들은 따라 했다. 각자 진도에 맞추어 배운 만큼 따라 하고 뒤로 나와 연습했다.


엄마는 이제 태권도의 맨 처음 품새인 1장을 배우기 시작했다. 1장이 끝나면 엄마는 뒤편으로 이동해 배운 동작들을 혼자 연습했다. 사범님이 한 명씩 돌아가며 한 동작씩 자세히 알려주셨다.


관장님은 항상 기본기를 강조하셨다.



주먹을 쥐는 것도 정확하게, 두 발은 11자로 바르게 서기, 앞굽이 할 때 다리를 확실하게 굽히기, 발차기할 때는 무릎을 정확히 접었다 펴기.


관장님은 모든 동작은 크고 유연하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품새의 기본 동작은 정확하고 자신감 있게. 엄마는 아직 동작을 외우기 바빴지만 관장님과 사범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음에 잘 담아두었다.


기술의 기본기도 중요하지만 태권도는 ‘무도’라는 것을 새겨야 한다고 했다. 공격하고 방어하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선배와 후배들은 배우는 과정에서 서로 배려하도록 배웠다.


엄마는 어린이 선배들에게 미안해하며 태권도의 동작들과 임하는 자세를 배웠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며 생각했다. 부끄럽지 않게,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나에게는 축구선수 입장 때 보는 장면이 되어버린 국민의례가 엄마에게 너무 경건한 거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 짧은 순간, 엄마는 마치 자신이 정화되는 느낌이라는 말을 했다.


엄마는 너무 피곤하고 체력이 떨어져도 어떻게든 결석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기본기를 배우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을 해낼 체력을 기르는 일이 먼저이므로.




기본을 지킨다는 것.

엄마와 통화하며 짤막짤막 이야기를 듣는데도 태권도장의 입구에서부터 기본기가 느껴졌다. 아이와 함께 읽었던 만화 손흥민 편이 떠올랐다. 손흥민의 아버지는 중학교 3학년까지 6년간 슈팅이 아닌 기본기 훈련만 혹독하게 시켰다고 했다.


헤어디자이너의 기본이 가위질이라고 대답할 줄 알았던 나의 친구는 태도라고 말했다. 그 사람의 일상에 어떤 헤어스타일이 편안한지 알지 못하면 현란한 가위질도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


새삼 나도 주변을 둘러싼 많은 일들의 기본을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 배우고 있는 일과 초심을 잃은 일들, 매일 내가 마주치는 사람들을 대하는 일. 그 바탕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매일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는지.      




수업이 끝나면 관장님과 사범님이 문 앞까지 나와 인사하신다.


“관장님, 여기까지 안 나오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이렇게 인사하는 것이 무도의 기본입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몸 둘 바를 몰라했다. 엄마가 나이 든 사람이라 하는 인사가 아닌가 생각했을 것이다. 관장님의 말씀을 듣고 엄마는 이해했다.

내가 받는 인사는 무도의 기본이라는 것을.


“태권,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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