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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Oct 22. 2023

살아 있다는 느낌

그녀의 컬러벨트 (8)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은 장치가 없어도 느낄 수 있다는 사실, 고요할 수 있는 능력, '무언가에 뛰어들' 능력, 집중하는 능력이 있으면 된다는 사실 말이다."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중 p.64



하나, 둘, 셋,.... 열 아홉, 열 아홉, 스물.


이렇게 숫자에 집중할 때가 있었던가.

트레이너에게 열아홉부터 잘못 셌다고 말할 힘도 없다. 숫자 하나를 더하냐 덜 하느냐에 따라 내 몸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낀다. 몸 안에서 이름도 모르는 작은 근육들이 움직이는 촉감이 전해온다.


자주 감기몸살이라고 어리광을 부리는 회원인 나에게 트레이너는 전신운동인 푸시업을 자주 시킨다.

처음에는 벤치프레스 기구에 가슴 높이의 바를 잡고 가볍게 시작한다. 스무 개면 끝났겠지 하며 고개를 들려는 순간 계속되는 그의 구호에 종종 당황한다. ‘오케이. 30개면 많이 했다.’ 나의 만족스러운 미소와 달리 그는 매몰차게 바를 아래로 내린다. 한 단계 내렸는데 내 눈엔 왜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는지.


푸시업이 끝나면 트레이너는 나에게 한 바퀴 걷고 오라며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좀처럼 땀이 없는 나는 10분 뛰고 난 후, 근력운동을 하면 땀이 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남들은 모르는 그 땀을 느낄 때, 나는 살아 있는 듯한 묘한 감정을 느낀다.




우리 집 10살 아가씨는 일주일에 한 번 축구교실에 간다.

남동생을 따라갔다가 자기도 다니고 싶다길래 한두 번 하고 말 줄 알았다. 그런데 몇달 째 계속 다니는 중다. 그만두라고 해도 다니겠단다.


골을 넣는 것도 아니고, 축구를 엄청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일까.

축구가 끝나면 아이들은 머리카락까지 땀이 흠뻑 젖어서 온다. 한 번은 아이들이 축구 수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여자 코치님은 맨몸으로 훈련을 시킨 다음 공을 나누어 준다. 아이들은 공 하나에 온 정신을 쏟는다. 상상해 봤다. 공 하나에만 몰입하는 시간,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뛰어들어보는 용기, 내 발로 뻥 차보는 시도.....


엄마는 어땠을까.

엄마는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태권도를 배우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기본동작을 익히고, 반복하고, 내 몸 을 훈련시키며 몸과 마음을 집중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하고 싶다는 열정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뒤엉켜 때로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훈련을 통해 쌓은 몸과 내면의 에너지가 온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가득찰 때까지 견뎠을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우리에게 묻는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느냐고.

그는 언제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폰을 들고 있지 않아도 고요하게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지. 살아 있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뛰어들고 싶은 순간이 있는지. 자신의 생명력을 키우려는 노력을 하는지.



엄마와 통화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주말이면 야생화와 나무를 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산길을 오르는 시간이다. 엄마는 밝은 색 등산복을 입고 백팩에 초콜릿과 뜨거운 물, 핸드폰을 넣어놓았을 거다. 태권도 수업인 오후 6시부터 7시도 마찬가지다. 엄마에게 한의원이나 다름없는 목욕탕에 갈 때도. 차가운 냉탕과 뜨거운 온탕을 오가며 수축했던 근육을 이완시키는 중일 것이라는 걸 안다.


들뜬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관장님이 하신 말씀을 전해주었다. "선생님, 이제 국기원 갈 준비 하시게요."라고 말이다.


엄마의 활동적인 일상을 보고, 듣고, 느끼며 가끔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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