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컬러벨트 (4)
뻥, 탁, 찰싹.
둔탁한 소리 또는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 발과 미트가 어떤 호흡으로 만나는지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타이밍, 정확도, 발등이 미트에 닿는 면적이 중요하다. ‘탕’하고 천정에 울리는 소리가 나는 순간.
나와 엄마는 그 순간의 희열감을 안다.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나는 스포티한 치마를 입고 멋지게 라켓을 휘두르는 모습을 상상하며 테니스를 배울 작정이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찬물을 끼얹었다. 네 운동신경으로 테니스는 어림도 없다고 말이다. 엄마는 이제라도 기능적인 운동을 해야 한다며 나를 끌고 집 근처 검도장으로 갔다. 검을 든 수련생들의 포스와 검은색 도복이 멋있어 보이긴 했다.
길 건너 태권도장에도 들렀다. 30대 남자 관장님과 꼬마 아이들이 열심히 기합을 지르며 운동하고 있었다. 엄마는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도복을 주문하며 관장님께 잘 부탁한다고 했다. 다른 운동을 하면 용돈을 안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아니, 태권도를 가르치려면 초등학교 때 보내지. 누가 가나 봐라.’
나는 용돈을 받아야 아르바이트를 줄일 수 있는 대학생이었고, 비교적 엄마 말에 순종하는 딸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아디다스 도복을 입고 흰 띠를 매고 있었다.
손끝에 정확히 힘을 주고 하나하나 동작을 충실히 해야 하는 태극 품새, 정신까지 집중해서 손 끝에 힘을 모아 하는 격파, 빨간색 헤드기어를 쓴 나보다 키는 작지만 방심하면 내 머리 위로 돌려차기를 날리는 파란색 헤드기어 상대와 겨루기.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는 천천히 태권도를 익혔다. 저녁이면 맥주 한 잔 하러 가자는 친구들에게 쪽팔려서 말도 못 하고 그렇게 도장에 다녔다.
앞 구르기, 품새, 겨루기 등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었지만 서서히 나는 적응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관장님이 빨간 미트를 양쪽 손에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합과 발차기 두 가지를 빠르게 하라는 신호였다. 발 윗등과 미트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을 때 ‘뻥’하고 체육관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열심히 발차기를 위해 몸을 풀었다. 다리 찢기가 괴로워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우아하게 발레봉을 잡는 대신 벽을 잡고 옆차기를 연습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엄마는 같은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
엄마는 쪼그려 앉아 태권도장 앞에 숨어 구경하던 어린 시절부터 발차기가 하고 싶었다고 했다. 도장에서 발차기를 배운 날, 전화 너머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한껏 흥분되어 있었다.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적인 쾌락보다 몸을 쓰면서 얻는 에너지는 유효기간이 더 길다. 그 에너지로 한참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 다른 이는 알아차리지 못할지 몰라도 내 안에서 온전히 살아 있다고 느끼는 흥분이랄까.
나의 경우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하게 된 경험이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엄마의 경우는 달랐다. 엄마는 스스로 마음 구석구석에 숨겨진 욕망을 살폈고 그 마음이 지닌 활력을 삶에 들였다.
엄마에겐 발차기 파트너가 있다.
도장에서는 매일 같은 사람과 호흡을 맞추어 미트 발차기를 진행한다고 했다. 키가 비슷한 두 사람이 파트너가 된다. 엄마의 파트너는 태극 2품인 6학년 남학생이다.
이름은 주호. 엄마는 주호가 말수가 없지만 늘 성실하게 운동을 하는 멋진 아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 큰 수술을 했는데 주호의 엄마는 아무리 아파도 도장에 가야 한다고 한단다.
엄마는 처음 2품 선배의 미트를 잡아줄 때 버벅거리고 리듬을 못 맞추어 미안했다고 한다. 매일 서로의 발차기에 호흡을 맞추다 보니 하루하루 점점 나아졌다.
오늘도 엄마는 주호와 번갈아 가며 미트를 잡았을 것이다.
엄마가 돌려차기를 하는 날이 온다면 그건 주호 덕분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