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의 사람이 아니다

― MBTI, 페르소나, 그리고 교사의 일상

by 미냉

“MBTI가 뭐예요?”
이 질문에 나는 종종 이렇게 답한다.
“ISTJ요. 그런데 그게 늘 같진 않아요.”

나의 MBTI는 ISTJ, 분석적이고, 말수가 적고, 계획을 중시하는 사람.
적어도 테스트 결과는 그렇다.

그런데 나는 고등학교 교사다.
매일 교실 앞에 서서 수십 명의 학생들을 마주해야 한다.
말수가 적고 내향적이며 계획적이기만 한 사람으로는 이 일을 해내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수업 전에 복도를 걸으며 슬쩍 마음가짐을 다듬는다.


“이제 수업이 시작되니까,
목소리 톤도 조금 더 높이고,
더 밝은 표정으로 아이들을 마주해야지.”


내 안의 다른 감각을 앞으로 꺼내는 일이다.
분석적이고 차분한 내가 중심이던 순간에서,
조금 더 유쾌하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중심을 옮긴다.


그렇게 수업 속 나는, 때때로 ESTP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돌아오면,
나는 다시 익숙한 나로 돌아온다.
조용하고 정리된 공간을 선호하고, 생각을 천천히 정리하는 사람.
수업 중의 내가 진짜 내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도 또 하나의 ‘진짜 나’라고 믿는다.

상담도 비슷하다.
나는 평소에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쪽에 익숙하다.
하지만 상담은 그런 접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학생이 감정을 쏟아낼 때면,
나는 내 안의 해답을 잠시 내려놓고, 감정에 더 귀 기울이려 애쓴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 상황에서는 정말 힘들었겠네.”

말투 하나, 표정 하나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그 순간 나는 아마 평소보다 더 따뜻하고 섬세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이런 변화들은 억지로 만들어낸 게 아니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떤 면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지
조금씩 다를 뿐이다.

예를 들어, 나는 평소에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편이다.
하지만 학교 일, 특히 수업이나 평가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볼 때는
그 꼼꼼함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조차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덜 준비되었더라도
일단 해보자는 쪽으로 생각을 돌려본다.
계획이 어긋나더라도,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그게 교사로서 더 낫다고 느껴질 때면
망설임을 넘어서보려 애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가 늘 J처럼만 살아온 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이런 경험들을 떠올리다 보면,
나는 과연 하나의 성격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심리학자 칼 융은 ‘페르소나’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 속에서 여러 역할을 맡고,
그에 맞는 가면을 쓰며 살아간다.
그 가면은 거짓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장치다.

교사로서 나는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갖는다.
수업할 때의 나, 상담할 때의 나, 기획 업무를 할 때의 나.
그리고 그 역할들 사이에서 나는 매번 조금씩 달라진다.
그게 거짓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있는,
움직이고 확장되는 존재라고 믿는다.

MBTI는 흥미롭고, 사람을 이해하는 하나의 틀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그 틀은 이해의 도구이지,
나를 가두는 경계선이 되어선 안 된다.

나는 고정된 사람이라기보다,
상황에 따라 중심이 달라지고,
신경 쓰는 방향이 바뀌고,
그 속에서 조금씩 새롭게 나를 알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하나의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나는 단일한 유형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장면 속에서 만들어지는 흐름이다.

이영도의 소설 『드래곤라자』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여러 자아를 지닌 인간의 본질을 짧게 압축한 말이다.


한 사람 안에 다양한 모습이 존재하고,
그 모습들은 타인과의 관계마다 달리 드러난다.

나 역시 그렇다.
나는 때때로 외향적이고, 때로는 감성적이며,
때로는 과감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 모든 나를 합쳐야 비로소 내가 된다.
나라는 사람은 단수가 아니라,
관계와 상황 속에서 계속 생성되는 복수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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