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은 불편하다.
그건 내가 덜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무례했을 수도 있고 게을렀을 수도 있으며
어떤 순간엔 이기적이기까지 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게다가 성찰은 대개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반복 속에서 찾아온다.
예를 들어 문을 세게 닫는 습관,
대화 중 끼어드는 버릇,
감정을 먼저 던지는 말투처럼.
누군가 지적할 만큼 큰 문제는 아닐지 몰라도 스스로는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버틴다. ‘이 정도는 이해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회사에서는 다르다.
회의에서 태도가 지적되면 바꾸게 된다.
상사가 반복적으로 말투를 지적하면 의식하게 된다.
관계가 수평이 아니고 평가가 따르며
그 사람과 계속 함께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게 생계와도 연결된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바꾼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하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적하는 사람이 상사가 아니라 가족일 때 말은 훨씬 가볍게 들린다.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가면 안 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이해를 먼저 요구하게 되고 받아들이기보다 방어부터 한다.
어쩌면 ‘여기만큼은 날 있는 그대로 받아줘야 한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 작은 습관들이 반복되면 결국 신호가 온다.
말없이 멀어지는 거리감, 설명 없는 피로한 대화처럼.
크게 다투지는 않아도 관계의 온도가 서서히 식는다.
그제야 돌아보게 된다.
예전엔 ‘내가 원래 그렇지’ 하고 넘기던 걸
이제는 넘길 수 없다는 감정이 찾아온다.0
‘내가 바뀌어야 이 관계가 무너지지 않겠구나’ 싶은 불안.
성찰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스스로가 싫어서가 아니라 상대를 지키고 싶어서 일어나는 변화다.
우리는 결국 내가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쌓이면 이 관계도 버거워질 수 있다는 걸 감각하게 된다.
그래서 바꾼다.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는 조용한 결심으로.
물론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고집을 세우는 사람도 있다.
받아들이면 자존심이 무너질까 봐 두려워서.
하지만 실은 그 반대다.
스스로 돌아보고 바꾸는 건 자존감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건 자신과 관계를 함께 지키기 위한 감정의 근력이다.
성찰은 거울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다.
익숙한 얼굴을 낯설게 보면서 그 낯섦 속에서 무엇을 고칠지 묻는 일이다.
혼자일 때보다 함께 있을 때 더 자주 생긴다.
그 사람이 내게 소중하다는 감각
이 관계가 오래 가야 한다는 판단
그리고 지금은 조금 미안하다는 감정
이 세 가지가 겹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나를 바꾸기 시작한다.
#성찰 #철학은일상으로부터두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