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를 보며 드는 생각

규범과 관계의 무게

by 미냉

트럼프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후련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거리낄 것 없이 말하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모습.
마치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 자유로움이 한편으로는 부러울 때도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늘 참고 절제하며 산다.
말을 고르고, 행동을 조심하고, 감정을 눌러둔다.
속마음을 그대로 내놓으면 상처를 주거나

되돌릴 수 없는 거리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꾹 삼키고, 웃고, 맞춘다.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착해야 한다는 가르침 때문이 아니다.
오랜 시간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같은 사람과 마주하고 다시 협력해야 하고
언젠가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
관계는 한 번의 게임이 아니라 끝이 없는 여정이다.
그 안에서 신뢰는 자산이다.
그리고 규범은 그 신뢰를 지키는 최소한의 틀이다.


규범을 가장 먼저 깨는 사람이 단기적으로는 유리할 수는 있다.
정치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가까운 관계 안에서도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규범을 지키고 있으니,
그 바깥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더 많은 공간과 선택지를 가진다.

하지만 그 이득은 오래가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업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는 사람
회의에서 부담스러운 안건이 나오면 눈을 피하고 조용히 몸을 빼는 사람.
그때는 잘 넘어간 것 같아도
언젠가 중요한 자리에 불리지 않는 순간이 온다.
대화에서 이름이 빠지고 결정에서 제외되고
점점 ‘함께 하기 어려운 사람’이 된다.
신뢰는 그렇게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사라진다.


사실 트럼프는 예외적인 인물이다.
그는 이미 부자였고, 유명했고, 정치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영향력이 있었다.
이미 살만큼 살았고 다음 선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였다.
어떤 행동을 해도 버틸 수 있는 기반이 있으면서도 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규범을 어기고도 중심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앞으로도 관계 속에서 버텨야 한다.
평판을 쌓아야 하고, 협력해야 하고, 다시 만나야 한다.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기반은 신뢰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신뢰는 규범을 지킬 때만 유지된다.


규범은 착하게 살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다.
나를 꾸미기 위한 것도,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 장치가 무너지면 관계도 무너진다.

눈에 잘 띄지 않아도 묵묵히 규범을 지키는 사람.
아무도 보지 않을 때도 맡은 일을 끝내는 사람.
처음엔 눈에 띄지 않지만

시간이 쌓이게 되면 ‘그 사람이라면’이라는 믿음이 붙는다.
그 믿음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기회다.


계속 만나야 한다면 규범은 필요하다.
그리고 규범을 지킨 사람에게만
다시 기회가 돌아온다.
그 기회는 빠르게 오지 않을 지 모르지만

사라지지도 않는다.


#규범과윤리 #관계의태도 #철학은일상으로부터두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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