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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인 Oct 15. 2021

마음이 아플 때 효과적인 수프매너

플라시보 효과 아님

닭고기 수프의 힘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닭고기 수프를 먹어본 적이 없는 이들도,

이 책 제목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의 저 한 구석부터 따듯해옴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은 몸이 아플 때 죽을 먹는다.

그럼 마음이 아플 때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몸이 아플 때 따듯한 죽이나 수프를 먹으면 회복이 빠른 것처럼

마음이 아플 때 역시 따듯한 수프가 아주 효과적이다.

부쩍 차가워진 바람이 마음에 새어 들어와 

외로움, 슬픔, 귀찮음, 걱정 따위의 이름으로 내 안에 머무르고 있다면

따듯한 수프를 먹어보자.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


몸과 마음이 아플 때 따듯한 수프를 먹으면 좋은 이유.

매우 과학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따듯한 수프를 섭취하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면 노폐물 배출이 빨라지면서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감기에 걸렸을 때도 비슷한 이유로 따듯한 차(茶. tea)를 자주 마시라고 하는데

수분 공급도 하고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차에 비해 수프는 훨씬 더 많은 영양을 가지고 있고

여기에 소화흡수가 잘 될 수 있는 형태로 조리되었으니까 

굉장히 빠른 속도로 에너지를 빵빵하게 올려줄 수 있다.




나를 슬프게 하는 수프


사실 나는 수프 매니아이다.

그래서 맛있는 수프를 먹기 위해서 아주 멀리까지 가기도 하고,

아예 날을 잡고 수프 전문점에 가서

많은 종류의 수프를 먹을 수 있는, 수프 샘플러를 시키기도 한다.

이런 내가 수프 때문에 아주 힘들어하는 시간이 있다.

격식 있는 서양식 코스요리에서 아주 맛있는 수프가 제공될 때이다.


몇 년 전, 메리어트 호텔에서 프렌치 코스 요리를 먹었는데

랍스터 내장으로 만든 주방장 스페셜 수프가 나왔다.

물론 맛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정말 이 정도로 맛있을 줄은 몰랐다.

아무리 수프가 맛있다 하더라도 한 그릇 더 먹는 것은 

서양식 테이블에서 좋은 매너가 아니다.

셰프가 또는 호스트가 준비한 메인 요리를 맛보기도 전에

수프로 배를 채우는 것은 예의가 아니니까.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아니 평범한 한 사람의 지성인으로서

그러면 안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 맛있는 수프를 

(심지어 양도 무지하게 적은데)

더 먹지 못한다는 건 정말 비극이지 않을 수 없다.



침묵의 007 작전, 매우 성공적


격식 있는 자리에서 식사를 할 때 

수프를 두 그릇 먹으면 안 되는 것 말고도 꼭 지켜야 하는 수프 매너가 있다.

바로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

수프를 스푼으로 떠서 입안으로 넣을 때 후루룩 소리를 낸다거나

접시에 남아있는 수프를 스푼으로 긁어서 소리를 내는 것도 좋은 매너가 아니다.


사실 수프 매너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 이슈는 스푼으로 수프를 뜨는 방향에 관한 것이다.

'6시 방향에서 12시 방향 vs 12시 방향에서 6시 방향'

이걸로 내기하는 나의 지인들을 굉장히 많이 보아왔다.

열띤 토론을 펼치다가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물어온다. 어떤 것이 맞는지..

결론은 '둘 다 상관없다'이다.

6시 방향에서 12시 방향은 미국식, 12시 방향에서 6시 방향은 유럽식으로 

통상적으로는 두 가지 모두 혼용하여서 사용한다.

하지만 수프를 입안으로 넣을 때 소리를 내지 않는 것과

아무리 적은 양이 아쉬워도 스푼으로 박박 소리를 내어 긁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나쁜 매너이다.


여기서 잠깐!!

정말 맛있는 수프가 너무 적은 양이라 한 방울도 아쉬운 상황이라면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겨둔 수프를 바라보며

꾹꾹 참는 것 말고는 진정 답이 없단 말인가?


우선 수프 접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여서 스푼으로 매너 있게 영끌해보자.

소리가 크게 나지 않도록 미소를 머금고 아주 자연스럽게~

이렇게 했는데도 남아있는 극소량의 수프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면 

스푼을 내려놓고, 식전 빵을 이용해보자.

식전 빵을 이용하면 남아있는 수프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그것도 아주 매너 있게 먹을 수 있다.




수프를 먹으면 호르몬 부자


이 과정을 거치면 묘한 성취감과 함께 행복함이 밀려온다.

한 방울도 남기고 싶지 않았던 맛있는 음식과 지성인으로서 지켜야 할 매너,

이 두 가지 모두를 지켜낸 것이다.

어마어마한 유혹 앞에서도 매너의 끈을 놓치지 않은 자신을 보며 무언가 뿌듯함이 올라왔다면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라는 자각에서 나오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이 몽글몽글 생겨났을 것이고,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싶을 정도로 너무너무 맛있는 수프를 먹었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나오는 즐거움 호르몬, '엔도르핀'이 마구마구 솟아났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지켜내면서 얻게 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성취감 호르몬 '도파민'인데 

힘든 목표를 이루어냈을 때 비로소 생겨나는 아주 귀한 보상 호르몬이다.


맛있는 수프 한 접시를 매너 있게 먹었을 뿐인데

호르몬 플렉스를 아주 제대로 해버렸다. 

그것도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호르몬들만 골라서.

이 정도 플렉스라면 아픈 마음에 손바닥만 한 담요 한 장 정도는 덮어줄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이런 수프는 세상 살벌한 칼바람도 제대로 막아주는 롱 패딩 같다.



마음이 아플 때
따듯한 수프를
유독 예뻐보이는 그릇에 소담하게 담고
우아하게 먹으면
저기 저 한 구석에서부터
따스한 기운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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