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향로, 시간의 창」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 절터 발굴 현장.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작업원들의 곡괭이가 얼어붙은 흙을 부수고 있었다.
그날, 한 발굴원이 다른 층과는 색이 다른 단단한 흙덩이를 발견했다. 삽날이 부딪히자 금속성 울림이 미세하게 번졌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파내자, 누런 망에 싸인 둥근 물체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연꽃 받침 위에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몸체를 용과 산수문이 휘감은 금동대향로가 있었다.
국립부여박물관 발굴 기록에 따르면, 이 향로는 백제 7세기 초 제작, 왕실 의식용으로 쓰인 유물이었다.
2025년, 국립부여박물관 중앙 전시실.
나는 유리 진열장 속 그 향로 앞에 서 있었다. 위치는 입구에서 직선으로 걸어 들어가면 마주치는, 가장 밝은 조명이 드리운 공간이었다.
향로 아래에는 발굴 당시 사진이 놓여 있었다. 흙 속에서 막 꺼낸 순간, 얼어붙은 망 사이로 금빛 문양이 드러나는 그 장면.
유물 설명판에는 “봉황은 하늘, 용은 물, 연꽃은 땅을 상징하여 우주 삼계를 표현”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차가운 박물관 공기와 조명 열기가 섞인 지금 이곳의 냄새가, 서서히 다른 시공간의 냄새로 변했다.
낙화암 절벽 위.
붉게 물든 하늘 아래, 바람은 검게 탄 연기 냄새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스님이 어린 동자의 손목을 꽉 쥐고 절벽 가장자리로 달렸다. 그 품에는 망에 싸인 향로가 있었다.
향로 틈새로 새어 나오는 연향은 부드럽지만 깊게 스며드는 향이었다.
그 향 속에는 절 마당의 마른 나무, 강가의 습기, 그리고 전란의 피비린내마저 희석시키는 연꽃의 단내가 섞여 있었다.
동자의 손끝이 향로 표면을 스쳤다. 차갑지만 미세하게 살아있는 금속의 온기, 그리고 봉황 날개의 굴곡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물방울이 떨어진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물줄기는 절벽의 폭포가 아니라 박물관 조명이었다.
그런데 발밑 감각이 기묘했다. 한쪽은 대리석 바닥, 다른 한쪽은 절벽의 바위 표면이었다.
향은 여전히 코끝을 자극했다. 현실의 나는 관람객이지만, 동시에 그날의 동자이기도 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유물은 과거를 보여주는 물건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를 바라보는 창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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