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은 언제나 악기의 첫 음표였다.

by 마루


손끝은 언제나 악기의 첫 음표였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내려앉는 한 마디의 두드림, 바이올린 줄 위를 미끄러지듯 타고 흐르는 활의 긴장, 혹은 지휘자의 손끝에서 공기마저 울리는 그 작은 떨림. 인간의 손가락 마디는 단순한 뼈와 관절의 배열이 아니라, 수천 개의 근육과 신경이 빚어낸 살아 있는 오케스트라였다.


해부학은 이를 27개의 뼈와 30개가 넘는 관절로 설명한다. 하지만 음악적 언어로 표현하자면, 손은 하나의 교향악단이다.

뼈는 현악기의 줄처럼 기초를 이루고, 근육과 힘줄은 그 줄을 켜는 활이며, 신경은 지휘자의 지팡이처럼 리듬을 조율한다.

손끝에 모여 있는 촉각 수용체는 수많은 관객의 숨결과 같다. 단 2mm의 간격도 구분해내는 민감함은, 음표와 음표 사이의 쉼표를 알아듣는 섬세한 청각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로봇 공학은 이 교향악단을 재현하려다 늘 음정이 어긋났다.

다리를 걷게 하고 팔을 휘두르게 하는 일은 이미 오래전 해냈다.

하지만 손가락 마디의 복잡한 합주는 늘 불협화음에 머물렀다.

자유도가 부족해 피아노의 아르페지오를 흉내 내지 못했고, 힘의 피드백이 서툴러 첼로의 현을 끊어버리곤 했다. 촉각이 부재한 손가락은, 마치 귀를 잃은 연주자처럼 소리를 내지만 음악은 잃어버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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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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