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흥업(興業)’이야기

흥업

by 마루

오늘 흥업면사무소 앞 우체국에 들렀다가 우연히 마주한 작은 기념탑에서 이 마을의 이야기가 시작됐어요.

‘흥업의 유래’라고 새겨진 비석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 지역이 어떻게 농업으로 흥성했던 땅인지, 그리고 매지리나 대안리 같은 작은 마을들이 하나로 합쳐져 지금의 흥업면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더라고요.


사실 흥업은 단순히 농업의 역사만 있는 게 아니에요. 시간이 흐르면서 이곳에는 연세대 원주캠퍼스나 한라대학교, 원주대학교 같은 대학들이 들어서면서 교육적인 색채도 함께 짙어졌죠. 게다가 육민관고등학교 같은 오래된 고등학교도 있어서, 이 지역은 예전의 농업 중심지에서 점점 교육과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곳으로 변해왔어요.


흥업에는 또 박경리 선생님의 흔적도 남아 있는데, 매지리 쪽에는 박경리 기념관(토지문화관)이 있고, 단구동 쪽에는 작가의 옛 생가가 있는 박경리 문학공원도 있답니다. 이렇게 흥업은 단순히 한 시절의 농업 유래를 넘어, 시간이 흐르며 교육과 문학, 그리고 지역의 다양한 변화가 켜켜이 쌓인 곳이에요.


오늘 그 기념비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글자를 읽다 보니, 이렇게 작은 비석 하나가 흥업이라는 마을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작은 창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興業의由來」 (흥업의 유래)


흥업면은 원주시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토지가 비옥하고 산수가 수려하여

농업이 발달한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이 지역은 매지리(梅旨里), 대안리(大安里), 흥호리(興湖里) 등의

여러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이들 마을이 통합되어

현재의 흥업면(興業面)을 이루게 되었다.


‘흥업(興業)’이라는 이름은

농사가 흥하고 산업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염원이 담긴 뜻으로,

예로부터 근면과 협동으로 지역 발전을 이끌어 왔다.


이에 우리 면민들은 선인들의 개척정신과

오늘의 번영을 기리고자 이 비를 세운다.


1999년 9월

흥업면장 具光洙

흥업면민 일동

원문은 한글과 한자 혼용으로 새겨져 있었으며,

하단에 “中伐山 後攬碑(중벌산 후람비)”라는 비석 제작 표기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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