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통
〈원주 언덕길의 수통 하나 — 목마름이 행운을 품을 때〉
원주 단계동.
기독병원으로 올라가는 언덕을 천천히 걷다 보면
누구는 그냥 스쳐 지나갈 작은 복권방 하나가 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화려한 간판도 없지만
가게 앞 문고리에 매달린 낡은 수통 하나가
이곳의 시간을 말해준다.
문을 열면 수통이 가볍게 들리고,
문이 닫히면 다시 톡— 하고 내려앉는다.
그 단순한 움직임 하나에
이 가게의 오래된 정겨움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수통을 볼 때마다
군 시절의 목마름이 떠오른다.
갈증과 피곤, 그리고 누군가 건네주던 미지근한 물 한 모금.
그 한 모금이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채워주던 순간들.
아마 이 가게 주인도
그 마음을 알고 있었던 걸까.
이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목마름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물을 찾는다’는 마음으로
그 수통을 걸어두었을지도 모른다.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그저 거기 걸려 있는 것만으로도
이 집은 왠지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조용한 복권방에서
17억짜리 1등이 터졌다.
2등도, 최근 1등도 또 한 번.
사람들은 이 작은 언덕길을 찾아와
수통을 바라보고, 문을 열어보고,
마치 행운과 자신이 연결되기를 바라듯
잠시 조용히 숨을 고른다.
나도 문을 열며 생각했다.
“이 수통처럼…
나도 어디선가 작은 희망과 연결될 수 있을까.”
문이 열릴 때 올라갔다 내려오는 그 작은 통은
단순한 플라스틱이 아니다.
목마름을 달래던 기억,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찾아오는 행운,
그리고 언덕길 어딘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소망이
살짝 걸려 있는 것이다.
원주의 한 언덕에서
수통 하나가 움직이며 들려주는 이야기.
그걸 보며 우리는 잠깐 멈추고,
우리 안에 남아 있던 ‘작은 목마름’을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조용히 말한다.
“언젠가 나도, 이 작은 통처럼
행운의 문에 살짝 매달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