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긴짐승들의 개미굴
학성동 개미골: 목 긴 짐승들과 깨진 유리의 온도
공기의 밀도
원주 학성동 40계단 아래로 내려서는 순간, 공기는 설명할 수 없이 무거워졌다. 지상에서는 분명 평범한 골목이었으나, 단 몇 개의 계단을 내려오자 공기는 눌리고 소리는 삼켜졌으며 냄새는 벽면에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곰팡이 핀 벽지, 오래된 비누 향, 비릿한 쇠 냄새,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의 식어버린 체온이 뒤섞인 냄새. 이곳은 길이 아니라 굴이었다. 빛이 들어오지만 결코 빠져나가지 못하는 구조. 나는 기록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으나, 그 순간 깨달았다. 나 또한 이미 이 서늘한 프레임 속에 갇혀버렸음을.
1일 차
유리 너머의 목 긴 짐승들
미로처럼 얽힌 복도는 손끝에 닿기만 해도 가루처럼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그 어둠 사이사이, 쇼케이스가 있었다. 한때 여인들이 앉아 있던 투명한 유리방. 그것은 전시장이라기엔 너무나 비정한 시장이었고, 보호막이라기엔 지나치게 가혹한 경계였다. 유리는 투명했으나 결코 넘을 수 없었고, 가까웠으나 결코 닿지 않았다.
유리 너머 벽면에는 기괴한 벽화들이 남겨져 있었다. 기린처럼 흉측하게 늘어진 목, 비틀린 시선, 뒤틀린 경추. 그들은 모두 유리를 향해 고개를 길게 빼고 있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 한 번만이라도 누군가 자신을 온전한 인간으로 보아주길 기다리는 짐승들처럼. 나는 도망치듯 떠나가는 방문객들의 뒷모습과, 그 뒤에 남겨진 정지된 시간의 무게를 동시에 셔터 속에 가두었다.
2일 차
깨진 유리, 남아 있는 촉감
둘째 날, 공포는 가라앉고 날카로운 촉각이 살아났다. 발 밑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밟으면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고요했다. 유리는 이미 충분히 부서져 소리 낼 힘조차 잃은 상태였다.
붉은 대문의 칠은 비늘처럼 벗겨져 내 손가락 끝에 붉은 얼룩을 남겼다. 출입구에 붙은 ‘석면 제거 고지서’의 문장은 너무 건조해서 오히려 잔인했다. 석면은 발암물질이다. 하지만 이곳에 쌓여온 것은 석면 가루가 아니라 부식된 시간이었다. 반복된 거래와 무시, 그리고 거대한 침묵. 지붕 위 슬레이트보다 그들의 시간이 더 깊이 몸속을 파고들어 폐부를 갉아먹었을 것이다. 형광등은 불규칙하게 깜빡였고, 나는 일부러 노출을 맞추지 않았다. 이곳의 삶은 애초에 정리된 밝기로 존재한 적이 없었기에.
3일 차
만져지지 못한 것의 무게
마지막 날, 해설자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개미굴에서 몇 해를 살다 소리 없이 사라진 여자. 그녀는 유방암을 앓고 있었다. 가슴 속에 잡히는 딱딱한 종양을 숨기지 않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그것을 만져보라고 내밀었다.
사람들은 경악하며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는 그녀를 때리고 도망쳤다. 그러나 그녀가 내밀었던 것은 성적인 욕망이 아니라 처절한 ‘증명’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 이 딱딱한 고통조차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온기로 닿을 수 있다는 실낱같은 가능성. 평생을 유리 너머에서 타인의 시선에 박제되어 살았던 그녀는, 죽기 직전 단 한 번이라도 폭력이 아닌 온기로 자신의 아픔이 어루만져지길 갈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리는 끝내 열리지 않았다.
반전: 유리가 사라진 자리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는 바닥에 흩어진 유리 파편들을 다시 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유리는 그들을 가두는 감옥이기 이전에, 우리를 위한 '변명'이었다는 것을.
보았지만 만지지 않아도 되는 이유. 알았지만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장치.
이제 유리는 깨졌고, 더 이상 투명함 뒤에 숨을 수 있는 공간은 없다. 학성동 40계단은 이제 '문화'라는 화려한 옷을 입으려 한다. 그러나 그 새 옷 아래에는 여전히 목을 길게 빼고 누군가의 온기를 기다리던 시선들이 고여 있다. 이곳이 못내 불편한 이유는 그곳이 추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너무나 오랫동안, 유리를 핑계 삼아 그 아픔을 방관해 왔다는 사실을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원주시청 한켠에 전시되었던 희매촌 사진과 문장들을 오래 바라본 적이 있다.
검은 액자 안에 정갈하게 놓인 문장들은
“기억해야 할 상처”, “끝내야 할 이야기”라는 말로
그 공간을 설명하고 있었다.
희매촌.
희망과 매화가 만나 만들어졌다는 이름.
그러나 그 이름이 감싸 안고 있는 것은
희망도, 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전시는 말한다.
도시재생 속에서 희매촌은 사라지고 있지만,
그 쇠퇴가 곧 폐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지워지지 않은 흔적과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나는 그 문장들 앞에서 묘한 어긋남을 느꼈다.
문장은 단정했고, 공간은 너무 오래 단정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학성동 40계단 아래로 내려갔을 때,
그곳은 이미 ‘끝난 장소’로 설명되고 있었지만
현실의 감각은 전혀 끝나 있지 않았다.
곰팡이 냄새,
유리 파편이 바닥에 남긴 차가운 감촉,
쇼케이스 너머에 남아 있던 시선의 잔상.
사진 속의 희매촌은
기억해야 할 상처였지만,
현실의 희매촌은
아직 만져지지 않은 통증에 가까웠다.
전시는 우리에게 말한다.
기억하고,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야 할 때라고.
하지만 나는 질문을 하나 더 남기고 싶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오래 보아왔는가,
그리고 얼마나 오래 유리 뒤에 서 있었는가.
유리는 투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본다.
하지만 투명하다는 이유로
손을 내밀지 않아도 된다고 착각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유리방과 쇼케이스,
그리고 바닥에 흩어진 유리 파편은
특정 공간의 구조물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대하던 태도에 가깝다.
이 소설은 고발이 아니다.
결론을 내리기 위한 글도 아니다.
다만,
전시된 문장 너머에서 아직 식지 않은 온기와,
정리된 서사 아래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몸의 기억을 외면하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희매촌은 끝나야 한다.
그러나 그 끝은
조용한 철거가 아니라
제대로 마주 보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사진은 변명하지 않는다.
유리는 깨졌고,
이제 남은 것은
그 파편을 어떻게 건너갈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선택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