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란
이 사진 속 두 배우는 웃고 있다.
하지만 영화 파이란을 본 사람이라면
이 웃음을 가볍게 볼 수 없다.
장백지의 파이란과,
탕웨이의 서래.
두 사람 모두 조용히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의 방향은 완전히 다르다.
파이란의 사랑은,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다.
만나지 않아도 사랑하고,
확인받지 않아도 사랑하고,
보답이 없어도 사랑한다.
그녀는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파이란의 사랑은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뒤에 더 크게 다가온다.
“당신이 있어서 덜 외로웠습니다.”
그 한 문장이
강재의 인생을 무너뜨린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여자가
자기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는 사실.
자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했던 존재였다는 사실.
파이란의 사랑은
자기 자신을 지워가며 남는 사랑이다.
반면,
헤어질 결심의 서래는 다르다.
서래는
자신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위험하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선택한다.
같이 있으면 망가진다.
멀어지면 살 수 있다.
탕웨이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정에 가깝다.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는 사람.
파이란은
사랑하면서 작아지고,
서래는
사랑하면서 버틴다.
장백지는
사랑받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을 연기했고,
탕웨이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라지는 사람을 연기했다.
그래서 남는 감정도 다르다.
파이란을 보고 나면
미안함이 남고,
서래를 보고 나면
복잡함이 남는다.
2001년의 파이란은
사랑을 운명으로 말하고,
2022년의 헤어질 결심은
사랑을 선택의 문제로 말한다.
둘 다 슬프지만,
슬픔의 결은 다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차이를 보며
자기 자신의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