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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Sep 11. 2024

광한루에 드리운 수양버들

  수양(水楊)을 처음 본건 4월 봄맞이 행사에서였다. 열여섯의 이성은 남원 부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행사에 참여했다. 광한루 주변에 마련한 공연 마당에서 예기들이 비단옷을 입고 춤을 추고 있었다.  여러 명의 기생들 중 수양의 춤사위는 단연 돋보였다. 늘어진 수양버들에 새싹이 돋아나고, 복사꽃이 흩날리던 광한루 주변으로 생강나무와 산수유, 진달래가 지천이었다. 봄 정취를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예기들의 춤을 구경하기 위해 광한루 주변에 북적였다. 먼 발치에서도 버들처럼 휘어질 듯한 수양의 자태가 눈길을 끌었다.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성은 양반 체면에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기생을 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양의 미모와 요염한 자태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져 눈을 뗄 수가 없없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수양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어느새 자정이 넘어가고, 어둠이 농축된 축시가 되도록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성의 시간은 수양을 처음 보았던 그 순간에 멈춰 버렸다. 그곳에서 넋을 잃고 수양을 바라보는 자신과 대면했다. 기생들의 공연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거리를 지나치는 행인의 움직임들이 모두 소거된 채 수양만이 비단 치마를 나부끼며 춤을 추고 있는 정오의 시간에서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었다. 


  “웅삼아! 웅삼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성은 다음 날 동이 트기도 전에 웅삼을 불렀다.


  “나으리 어인 일로 이리 이른 시각에 저를 깨우시는지요?”


  웅삼이 잠이 덜 깬 모습으로 행랑에서 나왔다.


  “웅삼아, 내가 긴히 부탁할 일이 있느니라.”


  이성이 행랑채 앞에서 왔다 갔다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있었다.


  “도련님답지 않게 이리 안절부절못하십니까?”


  “그게 말이다……, 어제 광한루에서 말이다…….”


  “광한루에서 어쨌다는 겁니까?”


  이성이 쉽게 입을 떼지 못하자 성질 급한 웅삼이 이성을 재촉한다.


  “그러니까, 광한루에서 말이다……. 아리따운 기…….”


  “기생 수양이 말씀이십니까?”


  웅삼이가 기막히게 눈치채고 수양의 이름을 먼저 말했다.


  “어제 광한루에 춤을 추던 아리따운 기생이 수양이냐?”


  “이미 남원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정평이 나 있습죠.”


  “네가 자리를 마련할 수 있겠느냐?”


  “글쎄요. 수양은 사사로이 부를 수 있는 기생이 아닙니다. 잘못 접근했다간 크게 망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요. 특히 지체 높은 양반들이 사방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습죠. 그래도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는 기생으로 유명합습죠.”


  “그렇다면 수양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단 말이더냐.”


  이성이 크게 실망한 모습으로 물었다.  16세에 접어든 사또 자제에게 그간 내로라는 양반가에서 청혼이 들어왔지만, 이성은 정인을 정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배우고 익히는 속도가 남달라 그를 스쳐간 스승들이 모두 그를 흠모했다. 특히 스승 조경남은 이성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문뿐만 아니라 무를 갖춘 선비로 길러내고자 정성을 들였다. 그러던 터에 멀찌감치서 떨어져 우연히 보게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나니, 이성은 그만 정신이 아득하였다. 게다가 대상은 기생이 아니던가. 밤 새 한숨도 못 잔 채로 웅삼을 찾아와 기생을 만나게 해달라고 보채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이미 온통 수양에게로 가버렸으니 몇 번이라도 체면 따위 훌훌 벗어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은 웅삼을 닥달하는 수밖에 없었다.


  “관에서 행사가 있을 때 한 번씩 나오긴 합니다만. 교방 문턱이 워낙 높은지라…….”


  “그렇다면 곧 곡우절 행사가 있지 않느냐. 그때 내 서신을 전할 것이니…….”


  “글쎄요. 그때 수양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습죠. 서신을 전한다 하더라도 도련님이 뉘신지 알지도 못할 터인데, 수양이 눈이나 꿈적할까요?”


  웅삼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놈, 잔말이 많구나! 사흘 뒤가 행사일이니 서신을 전할 궁리나 하거라!”


  웅삼은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입을 닫았다.


  “그러면 이제 다시 잠을 청하러 들어가도 되겠습니까요, 도련님? 아직 동이 트지 않았습니다요.”


  이성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이 트기는 커녕 까만하늘에 수많은 별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자신이 믿어지지 않았다. '참으로 낭패구나!' 이성은 속으로 되내었다. 수양을 만나지 못하면 이대로 영영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 같았다. 사랑으로 들어선 이성은 종이와 먹을 준비하여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어느새 동이 트고 사랑채에도 아침 햇살이 스며들었다.  상 위로 쓰러진 채 잠든 이성은 꿈 속에서도 수양을 생각하는지 잠꼬대를 했다. "곱기도 하구나! 저……, 수양버들……" 교자상 아래로 구겨진 종이가 흐트러져 있었다.      



9월 15일 일요일에 다시 찾아 올게요

예약 발행이 서툴러서 착오가 있었네요

관심 보내주신 독자 여러 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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