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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Apr 08. 2023

아내가 부지런해질까 봐 걱정하는 남편

잔소리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게 잔소리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부모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직장에는 나보다 직급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업무절차 간소화와 세태 변화 등으로 직장 문화도 계속 바뀌고 있다. 각자의 휴대폰에 집중하는 사이 서로에 대한 관심과 간섭이 줄어들었고, 불필요한 말들이 많이 사라졌다. 


가장 조심해야 될 사람이 한 사람 남아 있다. 아내다!

천만 다행히도 아내는 잔소리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위생과 청결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한 편이어서 이 점만 조심하면 내가 아내로부터 잔소리 들을 일은 거의 없다.


아내는 식당에 가면 깨끗한 테이블을 찾느라 시간이 한참 걸린다. 여행을 할 때는 호텔 측에서 방을 바꿔줄 수밖에 없는 꼬투리를 귀신같이 찾아낸다. 공중 화장실에서는 작은 물티슈 한 통을 거의 다 쓰고 나온다. 아들은 그런 엄마에게 아예 청소 도구 세트를 차에 싣고 다니라고 한다.


아들은 아직까지 엄마의 코드를 맞추지 못하고 지겹도록 잔소리를 듣고 있다. 엄마의 위생 수칙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도저히 맞출 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런 아들에게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너는 나중에 독립하면 되지만, 아빠는 평생 동안 엄마의 위생 기준을 맞추며 살아야 한다. 너는 아빠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니 조금만 참고 살아라"


아들을 달래기 위해 하는 말이지만, 사실 나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일찌감치 항복 선언을 했다. 100% 까지는 아니지만 아내 앞에서는 위생 수칙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아내보다 훨씬 더 깔끔을 떨어(물론, 연기다) 사전에 잔소리를 차단시킨다.


이런 아내도 위생 문제 외에는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아내 보다 더 부지런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나의 부지런함과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본인 스스로 쿨하게 인정한다.


내가 이렇게 부지런한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생활습관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더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것으로 잔소리의 주도권은 부지런한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지런한 내가 게으른 아내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느냐?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거의 하지 않는다.

만약, 내가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면 아내는 분명 나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 중대한 결심을 할지도 모른다. 독한 마음을 먹고 나보다 더 부지런하게 변할 수도 있다. 나보다 더 부지런한 아내의 잔소리! 상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다. 지금까지 유지해 온 평화와 균형이 한꺼번에 깨질지도 모른다.


나는 아내로부터 잔소리를 듣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의 부지런함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능성은 많이 낮지만 아내가 갑자기 나보다 더 부지런해질까 봐 은근히 걱정이 된다.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부지런해지싶은 마음이 아직은 없는 것 같다.


부지런하면서도 피곤한 표시를 내지 않는 남편을 보면서 아내는 자신의 그림에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지런한 사람은 남편 하나로 충분하다는 아름다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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