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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원 Oct 27. 2022

호수 위에 떠 있는 카렌시아


단양대교에서 바라본 마을

이 멋진 풍경은 오른쪽 좌석에 앉은 사람에게만 잠시 감상할 시간을 허락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은 마을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 체 그냥 지나쳐버린다. 설령 저곳에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미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더라도 마을 전체의 풍경을 온전히 눈에 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파른 산자락을 이리저리 휘감아 돌던 버스가 다리로 진입하자 가이드 레인 좁은 틈 사이로 선심 쓰듯 가느다라한 마을의 모습을 살짝 보여준다. 곧이어 다리를 건너자마자 가이드 레인을 훌러덩 벗어버린 마을이 장관을 연출한다. 하지만, 경이로운 풍경에 흥분한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마을찻장 뒤편으로 달아난다. 고개를 최대한 돌려 찻장 끝을 따라가 보지만 멀리 산자락 뒤로 숨어버린다.   


사진 속 마을은 피요로드처럼 이어지는 충주호 상류에 자리 잡고 있다. 중세 유럽 요새와 닮은 이 마을은 중앙고속도로 하행선 단양대교 위에서 볼 수 있는 절경이다. 단양의 아홉 번째 절경이라고도 한다. 단양팔경을 구경할 여유가 없는 바쁜 사람들에게 도로 위에서나마 눈에 담고 갈만한 풍경을 만들어준 이 지역  특유의 후한 인심이 느껴진다.


다만, 이 마저도 운이 좋거나 순간을 놓치지 않는 순발력을 가진 사람에게나 기회가 주어진다. 운전자가 절경에 한눈을 팔지 못하도록 가이드레일이 높게 설치되어 있어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 와서야 잠깐 시야가 확보된다.




나는 2년 전부터 주말마다 단양대교를 건너고 있다. 처음에는 자차로 다니다가 피로와 졸음에 지쳐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버스 안에서는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브런치 작가들의 글을 읽고, 글감이 될만한 아이디어를 구상해 보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잠을 자면서 보낸다.  


가끔 커튼을 젖히고 밖 갓을 바라 보기는 하지만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시선을 오래 두지는 않는다. 어느 날 무심코 찻장 밖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호수 위에 떠있는 작은 마을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순간적이었지만 비현실적인 카렌시아의 모습은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았다.


그때부터 마을의 풍경을 휴대폰에 담아보려고 애를 썼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단양이 가까워지면서부터 초집중 모드로 전환해 보지만 깜빡 잠이 들어 버리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치기가 일쑤였다. 어쩌다가 촬영에 성공할 때도 있었지만 사진 상태는 엉망이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 타이밍을 잘 잡아 비교적 양호한 사진 한 장을 건졌다.



꾸불꾸불 호수를 껴안은 산들은 계절마다 물 색깔을 바꿔준다. 마을 뒷산에 오르면 소백산과 월악산 자락이 멀리 가물거리고 호수는 협곡을 따라 남북으로 좁고 길게 이어진다.

마을은 동쪽을 향하고 있지만 아침 햇살이 마을까지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호수를 자욱하게 덮고 있던 물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마을은 잠에서 깨어난다.


저 마을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귀농한 청년들의 꿈들이 모여 있거나 은퇴한 노부부의 안식처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처럼 글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해방구일지도 모른다.

마을은 주말마다 다리 위를 바쁘게 다니는 나를 가엾게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저 마을을 방문하면 미뤄 놓았던 여유를 마음껏 부리며 정신없이 살아가는 나를 위로해 주어야겠다. 마을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세상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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