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남을 판단할 자격이 있어
"자기 자신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남을 판단할 자격이 있어."
왕은 자신을 재판관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재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정의를 말했지만 실천하지 않았다. 법을 말했지만 그 법은 마음속에만 존재했다.
어린 왕자가 법무대신을 하라는 왕에게 이 별에서는 재판받을 사람이 없다고 하자 "그럼 그대 자신을 재판하라"라고 왕은 말한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보다 자시 자신을 판단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니라. 네가 자신을 잘 판단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네가 참 슬기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니라"
나는 왕이 한 말을 오래 곱씹었다. 우리는 종종 남을 쉽게 재단한다.
"저 애는 왜 저래."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남에게는 그러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얼마나 관대한가?
누군가를 비판하기 전, 나는 나를 먼저 살폈던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우리는 누군가를 판단하고 재단하는 오류에 자주 빠진다. 인간관계에서 자주 발생하는 이 오류는 관계에 금이가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왜곡된 시각에 갇히게 만든다.
"내가 본 것이 그 사람의 전부일까?"
"나는 그 사람의 전체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단편적인 것만 보고 내리는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이 과연 사실에 근거한 걸까?"
내가 타인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삶이 아니라 내 편견을 비추는 거울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무슨 말인가를 할 때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그렇게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자,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왕은 떠나려는 어린 왕자를 붙잡으려 했다.
어려서는 어른들은 '참 이상해. 왜 자꾸 명령을 하고 복종을 요구하지.'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인생의 수레바퀴를 몇 십 년 돌아보고 난 후 나는 다시 왕을 만났다. 왕에게 진심으로 필요한 건 장관이 아니라 친구였음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가짜 '자기 위안'을 만들어가며 타인을 붙잡는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이라는 명분으로.
어린 왕자는 떠났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서
"나는 사형선고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 말은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때때로 얼마나 많은 내 안의 무력감에 '사형선고'를 내리며 살아왔던가. 우리는 모두 자신이 만들어 놓은 감옥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문을 열 열쇠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외부에서 구원을 찾으려 했다.
어린 왕자는 떠났다.
왕의 위엄도, 장관자리도, 화려한 별도 뒤로 한채, 그는 자유를 택했다. 나는 그 모습에서 '진짜 어른'의 뒷모습을 보았다.
문득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괜찮아, 지금부터 다시 출발해도 돼. 스스로에게 내려놓았던 부당한 명령에서 벗어나, 이제는 나 자신과 화해할 시간이야."
예순이 된 나에게 어린 왕자는 또 하나의 스승이었다. 그를 보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 나에게 명령을 내릴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지신뿐이야. 나에게 진정한 자유를 명령할 거야."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은 그 누구도 다스릴 수 없다는 진리를 되새기며 내 안에 들어 있는 권위와 복종, 명령을 왕이 있는 별에 두고 어린 왕자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