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성향인 오지라퍼, I로 바뀌다
나는 20대 때 오지라퍼였다. ENFP이인 나는 사람을 만나야 에너지가 충전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대학시절, (그때도) 청년 교사를 하였고 마케팅에 관심이 있어서 마케팅 동아리도 참여하였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하였고 번 돈으로 또 신나게 친구들과 음주가무를 즐기며 연애 또한 쉰 적이 없었다.
그러던 내가 극 I성향인 남편을 만나서인지, 아니면 긴 출산과 육아의 시간을 홀로 지나서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홀로 있는 시간이 편해졌고 사람 만나는 것이 귀찮아졌다.
“너는 대학교 때 집에서 밥 먹은 적이 손에 꼽혀.”
라고 말씀하신 친정 엄마의 말과는 전혀 다른 삶, E가 아닌 I의 삶으로 바뀐 듯하다.
27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결혼을 했다. 친한 친구 한 명도 결혼을 하지 않았던 그 시절. 29살에 첫 아이를 낳고 31살에 둘째를 낳았다. 주변에 결혼한 친구 한 명도 없이 홀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던 그 외롭고 어둡던 시절. 그때 나는 성향이 바뀐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날 여유도 없었고 누군가를 만날 몰골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쩌면 그 시기에 더 ‘무언가’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시절의 내 옆에 있었던 사람은 극 I성향인 남편이었다. 부부는 서로 닮는다 하지 않았던가. 점점 나는 집돌이인 남편을 닮아 집순이가 되어갔다. 하지만 남편의 유전자가 더 셌던 것 같다. 남편은 여전히 지금도 극 I성향인 것을 보면 말이다.
그리고 아마도 나의 직업 상, 어떤 한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기보다는 혼자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까 혼자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나의 또 다른 직업 또한 빨래방, 작가이다 보니 직장 동료도 없고 혼자 조용히 일을 하다 보니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사실 20대 때 회사 다닐 때만 해도 나는 회사 내에서도 오지라퍼였다. 물론 4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4년이라는 시간에 안 해본 것 없이 내가 하고 싶었던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실컷 했던 시간이었다. 모든 직원들을 챙기며 퇴근 후 시간을 함께 하고 주말에 여행까지 다니던 그 성격은 어디 갔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가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가 E라고 하면 놀란다. 물론 조금 나를 오래 알면 당연히 E라고 느껴질 텐데, 잠깐 아는 사이에서는 내가 I로 보이기도 하나보다. 그러나 나는 20대 때에 비해 확실히 E성향은 줄고 I성향이 강해진 것 같다. 물론 반대인 사람들도 많이 봤다. 20대는 그냥 조용히 살다가 40대가 되어 진짜 인생을 찾아, 훨훨 날며 즐기는 사람들.
내가 확실히 I성향이 되어 가고 있다고 느낀 적이 몇 번 있었다.
한 번은 성당 교사를 하면서였다. 물론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약간 댕댕이 같은 성격은 여전히 있다. 특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막 퍼주는 성향이 있고, 좋아하게 되는 것도 살짝 금사빠이긴 하다. 성당 생활은 아무래도 기본적인 인간의 가치관인 종교가 같은 사람들의 집단이다 보니 결이 비슷한 사람이 많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치 20대 때 회사 생활을 하듯, 공과 사 구분이 없이 빠져서 생활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의 한 마디에 정신이 버쩍 들었다.
“너 혹시 어떤 소속감을 느끼려고 성당에 빠진 것 같이 보여.”
남편의 말을 듣고 나는 브레이크가 걸렸다. 어쩌면 맞고 어쩌면 틀릴지도 모른다. 갑자기 생긴 소속감에 나는 마음의 안정감을 느끼고 그 속에 나의 온몸을 내던졌던 것은 아닐까. 남편의 말 한마디에 잠시 한 발 뒤로 물러나서 나의 삶을 되돌아봤다. 맞았다. 나는 그 소속감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부터 나는 적당한 거리를 나 혼자 지켜내며 성당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얼마 전의 일이다. 나의 본업 일이 줄어들자,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강사 자리에 취업을 했다. 처음 원장님과의 면담 시, 원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학원은 무엇보다 선생님들끼리 사이가 정말 좋아요. 서로 돕고 지내면 좋을 거예요.”
나는 학원의 생리를 잘 모르지만 원장님의 말을 듣고, ‘아, 선생님들끼리 진짜 친하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일을 한지 벌써 3달이 되어간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어떤 선생님과도 커피 한잔 마신 저이 없고, 심지어 연락처를 주고받은 선생님도 없다.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겉으로 보기에 서로 웃으며 인사하는 사이를 보고 원장님이 그냥 지나가는 말로 그냥 한 말일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I성향이 강한 나는 먼저 다른 선생님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사실 그럴 여유도 없다. 아직은 한 반만 맡고 있어서 학원에 있는 시간은 고작 1주일에 3번, 1시간 30분 정도이다. 수업 전 10분 전에 가서 복사를 하고 잠시 화장실만 다녀오면 수업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끝나면 밤 10시이기 때문에 집에 오기 바쁘다. 사이가 언제 좋아진다는 거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히려 이 적당한 거리감이 좋다. 소속은 되어있지만 프리랜서처럼 일해서 편하다. 몇 번 학원 측에서 페이퍼 워크를 부탁을 했는데 처음에 짜증이 났다. 왜 이런 것까지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아마도 내가 회사생활을 너무 오래 쉬어서인 것 같다. 조금씩 적응하면서 매달 해야 하는 페어피 워크도 잘 쳐내고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아서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자꾸 나는 안으로 향하는 것일까? (예전에 비해서 말이다.) 40대가 되어 이렇게 되었는데, 50대 60대 때는 더 남편처럼 되는 것이 아닐까, 살짝 겁도 난다. 새로운 만남을 피하는 것뿐이지, 사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소홀히 하지는 않는다. 그냥 이 나이정도되면 인간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가끔 통역 현장에 가서 일을 할 때, 20대 때의 내 모습이 스멀스멀 나타날 때도 있다. 일본 기업 측 일본인에게 오지랖을 떨기도 하고, 에이젼시 직원에게 마음을 표하기도 한다. 어쩌면 잠시 I가 되었다가 40대 지나서 다시 사회생활이 늘면 E인 나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아이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도 성장하기에, 어쩌면 나의 성향도 그 환경에 맞춰서 변화를 하는 것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나의 40년 인생. 그래서 더 즐겁지 아니한가? (ㅎㅎㅎ) 앞으로 또 나는 어떤 모습으로 40대를 보낼지, 설레면서도 기대가 된다. 변화무쌍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난 왜 그래.‘ ’ 난 왜 진득하지 못하지.‘라고 질책하기보다는 난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탄력성이 많은 사람이야!라고 칭찬하면서 보내야겠다. 2025년은 뱀의 해답게 허물을 벗으며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