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에 처음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서른 아홉 시리즈(1)

by Gaemi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1도 관심이 없었다. 궁금하지도 않았고 읽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 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내가 가끔 부끄럽기는 했다. 그렇다고 그 방대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긴 버거울 것 같아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책을 사서 책꽂이에 꽂아 두었다. 언젠가 읽겠지, 하며 말이다. 그러다 작년 초등 3학년 아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학습 만화에 빠지면서 우리 집에 때 아닌 그리스 로마 신화 열풍이 불었다. 아들은 둘째 딸이랑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신이 되어 역할 놀이를 했다.


"바로 내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다!"

"아무도 나를 막을 자는 없다, 인간 주제에!"


평소에 학습 만화를 아이들에게 사주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학습 만화에 빠지면 글밥 많은 책을 안 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쩔 수 없이 몇 권을 사주었다. 왜냐하면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도 학습 만화로 익힌 후에 아이가 더 역사에 관심을 가져 책 점프를 했던 터라 나는 아이들을 믿었다. 아이들이 신 이름을 말하며 역할 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질문을 했다.


"야, 제우스는 왜 그렇게 자식이 많아?"

"신들은 안 죽어? 왜?"

"인간을 누가 만들었다고?"


계속되는 질문에도 아이들은 학습 만화 덕분인지 바로바로 대답을 해주었다. '아니 어떻게 그 많은 신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질문을 자꾸 하는 나를 보고 아들이 나에게 말했다.


"엄마도 만화책 봐봐. 금방 알 수 있어."


그렇게 나는 아들과 대화하기 위해 39살에 처음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학습 만화를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읽는 만화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옛날엔 어떻게 만화책을 읽었을까' 싶을 정도로 집중이 되지 않아서 처음에는 고작 몇 장만 읽고 만화책을 덮었다.


"엄마, 아직도 3권이야?? 언제 다 읽어~"


영 진도가 나가지 않는 나를 보고 아들은 핀잔을 준다. 심지어 읽을 때마다 나오는 신이 헷갈린다.


"페르세우스가 누구였지?"

"어휴 엄마 그거 16권에 나왔잖아."


보다 못한 아들은 어느 날 나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 계보도를 직접 적어서 주었다.


"엄마, 모르면 이거 보면서 읽어. 그리고 읽으면서 모르는 거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봐"


아들은 어린아이에게 한글을 처음 가르치듯 나에게 차근차근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나를 가르치는 아들을 보고 반성을 했다.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하는 나에게 화 한번 내지 않고 몇 번이고 알려 주는 아들. 반면 나는 아들의 질문에 짜증을 많이 내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았다. 아들이 나보다 낫네.


지금 아들과 나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읽으려고 준비 중이다. 최근에 나온 특별판은 정말 한눈에 봐도 딱 벽돌이 생각날 정도로 엄청 두꺼웠다. 이렇게 두꺼운 두께의 책을 읽은 기억도 없다. 과연 아들이 읽을 수 있을까? '생각보다 두껍긴 하네?' 벽돌 책을 처음 본 아들의 반응이다. 왠지 아들은 단숨에 읽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설민석의 삼국지 두꺼운 책도 거의 1주일 만에 다 읽은 아이다.


"엄마, 언제 26권 만화책 다 볼 거야~ 빨리 봐야 나랑 저 벽돌 책 보지!"


아이는 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선생님이다. 맨날 내가 몇 권까지 읽었는지 체크를 하고 중간중간에 신의 이름도 질문을 한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준다. 이 아이가 이렇게 처음부터 벽돌처럼 두꺼운 어른 책을 읽은 것이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을 보다가 그 내용으로 동생과 역할 놀이를 하며 아웃풋을 실천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알려 주면서 자기가 배운 지식을 뱉어낸 것이다. 메타인지가 발현되는 시점이다. 그러면서 더 궁금해진 것이다. 자기보다 잘 모르는 엄마한테 가르쳐주기 위해 더 알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어른 책을 더 읽게 된 것이다. 누가 보면 부모가 시켜서 저 두꺼운 책을 읽은 것 같지만 이 아이는 스스로 배우는 즐거움을 깨닫고 누군가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모든 배움이 이렇게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어렸을 적에 그리스 로마 신화에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못나서가 아니란 것을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그 어떤 자극도 없었고 아웃풋을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떠한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할까? 지금 우리 아이들이 시키지도 않는 그리스 로마 신화 책에 빠져서 몰입하여 독서하는 모습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만큼 책을 통해 배우는 즐거움을 깨닫게 하고 그 배운 지식을 즐겁게 아웃풋 할 수 있는 경험을 주어야 한다.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학습 만화를 통해 배운 지식을 아이들과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에 놓였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읽고 싶어진 것이다. 아이들 덕분에 이제 나도 그리스 로마 신화 읽은 여자가 되었다. 40대를 코 앞에 둔 39세에 처음 읽는 그리스 로마 신화,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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