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emi Mar 07. 2022

학교를 처음 보내는 엄마들에게 하는 소소한 당부

아이가 내민 손을 잡아줄 준비,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2012년 9월 어느 가을. 처음으로 내 뱃속에서 태어난 생명체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저 아이가 정말 내 뱃속에서 나왔다고?'


 출산을 처음 해 본 엄마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 아이가 어느새 목을 가누고 아장아장 기어 다니고 걷게 된다. 늘 엄마 껌딱지로 화장실도 못 가게 한 녀석, 밤에 잠도 안 자고 울기만 하던 녀석이 어린이집에 처음 등원한 날, 나는 주책맞게 눈물까지 흘렸다. 어느새 아이는 어엿하게 책가방을 매고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 뒤도 안 돌아보고 학교에 갔다. 학교를 처음 간 날, 녀석의 뒷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마냥 신나서 친구들과 떠들며 교문을 들어갔다.

 녀석은 벌써 그렇게 학교를 다닌 지 4년이 되었다. 이제 고학년이 되니 남자 향기가 물씬 풍긴다. 가끔 녀석이 학교를 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남편이 회사를 갈 때의 뒷모습처럼 짠할 때가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학교를 3년 동안 다니면서 담임 선생님과 했던 대화들은 이상하게도 늘 똑같았다.

"어머님, 혹시 궁금하신 점 있으세요?"

"아니요. 없어요."

...

"어머님, 아드님은 정말 모범적인 아이예요. 그런데 어머님이 조금만 챙겨주시면 더 잘할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챙겨봐 주시겠어요?"

"네..."


 늘 이런 식이었다. 나는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시 딱히 들을 이야기도 없었고 물어볼 것도 없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첫째, 아이가 그다지 눈에 튀는 행동도 하지 않고 FM 같은 성격이라 지적할 일이 별로 없어서일 것이다. 아니면 선생님 기억에 없는 수많은 학생 중 한 명이거나. 둘째, 나는 아이를 믿기에 딱히 선생님께 물어볼 말도 부탁할 말도 없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관심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의 학교생활은 늘 아이의 입을 통해 매일 듣고 있었다.

 그런데 늘 마지막은 선생님이 나에게 '아이를 더 챙겨달라'라고 말했다. 내가 무엇을 더 안 챙겼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어느 날은 녀석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엄마가 너 안 챙겨주는 것 같니? 엄마가 더 챙겨주었으면 하는 것이 있을까?"

"아니요, 지금 충분해요. 혼자 할 수 있어요."


 맞다, 녀석은 이렇게 늘 혼자 잘 해왔다. 이런 녀석과의 대화를 하고 있노라면 30년 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가 가끔 떠오른다.



 우리 엄마는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학교생활을 다 챙겨주셨다. 아마 그 당시 엄마는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그것이 나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책가방은 늘 엄마가 싸 주셨고 숙제를 하나하나 확인해서 챙겨 주셨다. 방학이면 늘 만들기 숙제가 있었는데,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가 다 만들어 준 것을 마치 내가 한 숙제인 양 학교에 제출했다. 학원을 다녀오면 학원 숙제를 다 봐주셨고 시험을 본 날이면 시험지를 보시고는 틀린 개수대로 때리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하라면 하라는 대로 때리면 때리는 대로 그냥 맞고 있었다.


 그렇게 자라고 보니 나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대학을 정할 때도 그랬다. 정말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엄마가 가라는 대로 갔다. 대학을 다니면서 처음으로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함을 깨달았다. 더 이상 대학 생활에는 엄마가 들어올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매우 불안했다. 그렇게 나는 스무 살이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우리 엄마는 공부하란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그냥 늘 나를 믿어주셨던 것 같아. 그게 지금 돌이켜 보면 감사해."

 이렇게 유년 시절을 돌이켜보는 지인들을 만날 때면 나는 정말 부러웠다. 우리 엄마는 늘 공부하라고만 했는데... 그래서인지 지금도 혼자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그러한 아쉬움 때문인지 나는 절대 나처럼 아이를 키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가끔 이러한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너무 아이를 방관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나는 학교 알림장을 내가 먼저 보자고 해서 보지 않는다. 아이가 가져와서 봐 달라고 하면 봐준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스스로 알림장을 보고 필요한 것을 나에게 요구하길 바란다. 나는 언제든 도와줄 준비는 되어있다. 그러나 내가 해줄 생각은 없다. 그러다 보니 가끔 아이는 알림장을 보는 것을 까먹고 학교에 가는 날도 있다. 그렇게 실패를 해 보면 다음부터 아이는 더욱더 열심히 알림장을 챙기게 된다. 그리고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렇게 아이는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사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처음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는 어느새 나처럼 엄마가 다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준비물을 하나 빠트리기라도 하면 엄마를 원망하게 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아이에게 스스로 하게 해야 한다.


 숙제나 공부도 그렇다. 3학년 올라가면 과목이 많아지고 수학 같은 경우는 어려운 개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때가 되면 엄마들 단톡방에서는 학원을 어디 보내냐, 학습지는 무엇을 푸느냐 등의 이야기가 오고 간다. 그러면서 단원평가 점수가 몇 점이니, 재시험을 보네 마네와 같은 이야기까지 주고받게 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대화에 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아이가 어떤 공부를 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나날들이 많았고 시험을 봤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점수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관심 없는 엄마처럼 비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나는 녀석을 믿었기에 늘 알아서 잘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가끔 녀석이 나에게 손을 내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3 자릿수 나누기 2 자릿수를 배울 때, 학교에서 배운 것으로는 이해를 다 못하겠다며 힘들어했다. 그때는 녀석과 같이 교과서를 보며 공부했다. 녀석은 그렇게 혼자 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시험을 보고 온 날이면 시험을 봤다고 이야기를 하고 점수를 이야기해 주었지만 나는 점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도 겪어 보았지만 그 점수가 인생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완벽한 시험 점수보다는 시험을 못 봐서 속상해하는 녀석을 위로해주고 싶었고, 부족한 부분을 함께 채워나가고 싶었다. 그러한 실패 경험이 아이 인생에서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숙제를 못해가고 준비물을 챙기지 못한 실패를 경험함으로써 아이가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실패 경험이 쌓이다 보면 아이의 마음 근육도 단단해지고 주체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된다. 아이가 저학년 때는 선생님한테 '아이를 더 챙겨달라'는 충고를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학년 때의 실패 경험으로 인해 정말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고학년이 되면 아이는 더 빛을 발하게 된다. 내 주변에는 아직도 알림장을 엄마가 확인하며 나에게 묻는 친구 엄마들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이가 부족함을 탓한다. 그러나 내가 봤을 때는 고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이의 모든 것을 챙겨주고 있는 엄마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자기 것을 챙겨 보지 못한 아이는 늘 엄마에게 기대기 마련이다. 엄마가 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선생님 말씀도 귀 기울이지 않고 알림장도 설렁설렁 써서 온다. 그리고 물어보면 모른다, 못 들었다로 일관한다. 그러니 엄마는 다른 엄마들에게 늘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키우면 요즘 많은 엄마들이 바라는 '주도적 학습'은 절대 할 수 없는 아이가 될 것이다. 바라건대 아이를 믿어라.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스스로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다. 엄마가 해 주지 않아도 충분히 해 낼 수 있는 아이들이다. 그러므로 엄마는 그냥 아이를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늘 엄마는 너를 도와줄 마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면 된다. 아이가 손을 내밀었을 때 손 잡아주면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신학기, 아이도 새로운 학교 생활에 적응해야 할 때이다. 덩달아 엄마들도 긴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조금만 더 아이를 믿어주고 스스로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게 지켜봐 주길 바란다. 그래야 고학년이 되어서도, 또는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스스로 생각하고 주기 주도 학습이 가능한 아이,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즐기면서 하는 아이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이의 성장만큼, 엄마의 성장도 필요하다. 나부터 먼저 아이를 믿어주고 옆에서 지켜봐 줄 수 있는 엄마로 성장해보자.

작가의 이전글 엄마는 덕질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