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작가가 되기까지.
'책을 한 권 낸다는 것은 소중한 내 아이를 출산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 나는 지금 나의 세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인가 보다. 한번 출산을 겪어본 여성이라면 대충 어떤 일일 것이라는 짐작은 갈 것이다.
나는 올해 3월부터 그림책 수업을 들었다. 지금은 수업이 끝났으며, 같이 수업을 들었던 동기분들과 함께 스터디 형태로 그림책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6개월 간의 수업 시간에 나는 2가지의 주제를 갖고 그림책 작업을 진행해 왔다. 그중 하나의 작업이 그나마 모양이 갖춰졌다고 생각해서 나는 올해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였던 '출판사에 투고'를 실천했다.
사실 많이 부족한 작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의 스승님도 나의 작품에 아직 '오케이'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시험해 보고 싶었다. 나의 그림책에 대한 출판사의 피드백이 너무 궁금했다. 혹시나 내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었다. 그래서 나는 약 20군데 정도의 출판사에 투고를 하였다. 스승님 몰래.
거의 반 이상은 읽고 회신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몇 군데는 '소중한 원고 감사드린다. 내부 적으로 검토를 한 후 연락을 드리겠다'라는 회신을 주기도 했다. 또 몇 군데는 '우리 출판사와 결이 맞지 않다'라고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그중 2군데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메일을 받은 날, 마치 계약이라도 한 것처럼 너무 행복했다. 그 행복한 마음을 안고 미팅 준비에 돌입했다. 먼저 출판사와 미팅을 해 본 동기에게 조언을 구하고 인터넷 검색도 이것저것 해 보았다. 일단 나의 원고의 더미북을 하나 인쇄해서 가져가기 위해 인쇄소에 맡겨서 더미북을 제작했다.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가져가는 분들도 계시던데 나는 그렇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서 나의 아이패드에 있는 그림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먼저 연락이 온 출판사 한 군데와 미팅을 했다. 화창한 어느 날, 오후 2시. 나는 처음 가는 곳이라 이른 점심을 먹고 2시간 전에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은 42분이라고 찍혔지만 나는 길을 헤맬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바로 출발했다. 아니나 다를까 1시간 전에 도착한 나는 주차를 한 후 주변을 구경했다. 방송사 주변이라 그런지 북적북적했다. 나는 커피 한잔을 시켜 놓고 마음을 다 잡았다. 통역을 하러 갈 때만큼이나 떨렸다. 아니 더 떨었을지도 모른다. 내 인생 첫 출판사와 미팅이라니.
약속시간이 다 된 후 나는 출판사로 향했다. 담당자분이 편집장님이 옆에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계시니 그쪽으로 같이 가자고 해서 함께 이동했다. 한 작은 커피숍에서 나는 편집장님과 담당자분과 함께 첫 미팅을 시작했다.
나는 가지고 간 원고를 드렸으나, 파일로 받아서 괜찮다며 바로 원고 이야기를 하셨다. 어떤 의도로 이 그림책을 만들었냐는 질문에 나는 나의 평소 생각하던 것을 말했다. 그리고 평소에 제가 그린 그림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하고 아이패드에 있는 이것저것을 보여드렸다. 다 보신 후, 혹시 원고가 하나 더 있는데 보여드려도 되냐고 여쭈었고 "더 있으면 좋죠!"라고 흔쾌히 받아 주셨다.
그렇게 내가 준비해 간 것을 다 털고 나니 편집장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론은 '흥미로운 주제다. 다만 너무 어렵다.'. 조금 더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으로 풀었으면 좋겠고, 나의 원래 그림대로 따뜻한 그림체로 갔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주셨다. 그러면서 출판사에서 낸 그림책 몇 권을 주시면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셨다. 이렇게 원고를 받고 출판사와 협의를 하며 그림책을 만들고 출판하는 데까지 2년이 걸린다고 한다. 나보고 2년 길게 잡고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나름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셨다.
그림책 시장에서는 출판 게약을 바로 하는 일은 정말 그 원고가 바로 출판해도 무색할 정도로 완벽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보통은 이렇게 몇 번 편집자님과 주고받으면서 결을 맞춘 후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그때 계약을 맺는다고 한다. 그래, 나는 아직 그 단계가 아닌 것이다. 심지어 제목 빼고는 다 바꿔야 할 판이다. 나의 아이디어만 좋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주신 말씀 중에 용기를 얻을 만한 이야기도 있었다.
"지금 제일 잘 나가는 이 그림책 작가님도 비 전공자인데, 이 책 나오는데 2년 걸렸어요. 그런데 이 책, 지금 중국에도 수출될 예정이고요. 이렇게 비 전공자분들이 투고를 하시면 그림은 정말... 못 그리지만 생각이 반짝반짝 빛이 나서, 전공자분들이 그림으로 승부한 그림책보다 이야기가 훨씬 좋을 때가 많아요."
나의 2가지 원고 모두, 아이디어는 좋으나 풀어내는데...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만 같다. 지금껏 6개월 동안, 고액의 수업료를 내고 그림책을 배웠는데 아직도 갈길이 멀다고 생각이 들었었는데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 6개월 배웠으니까 지금부터 수정 작업은 쉬울 거야! 더 속도가 날 거야! 그리고 편집장님과 피드백을 주고받다 보면 나도 분명 성장할 거야!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기회가 왔잖아!라고 생각하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여유가 생겼다.
내가 미팅을 한 출판사가 (몰랐는데 스승님 말로는) 모체가 큰 회사이고 자본력이 되어서 홍보와 마케팅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편집장님이 좋으신 분이라 같이 작업하다 보면 많이 배울 거라고 한다. 나는 이렇게 기회를 잡은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생각하고, 이 기회를 잘 살려볼 것이다. 2년이 걸려도 괜찮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나의 첫 그림책이 나올 수만 있다면.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나의 온전한 홀로서기를 시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