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엄마는 분주하다.
일요일이라 좀 더 자고 싶은 마음에 이불속에서 겨우 반만 뜬 눈으로 아까부터 엄마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웬만하면, 내가 깬 것을 엄마가 모른다면, 그대로 조금 더 자고 싶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 센 것만 두 번이니, 아마 서너 번은 족히 될 듯하다. 엄마가 살금살금 방을 나갔다가 들어오길 반복한 횟수가.
엄마는 되도록 나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움직이는 듯 하지만, 후들거리는 다리는 속절없이 무너져서 누운 나의 어깨며, 팔 등을 짓누른다. 그때마다 엄마는 놀랄 정도로 빨리 내게서 몸을 거둬갔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도 벌떡 일어났다.
"엄마! 뭐 하느라 그렇게 바뻐? 일요일인데 좀 더 자지."
"일요일엔 밥도 안 먹는다든?"
엄마 목소리에 화가 들었다.
"배고파서 그래? 커피랑 빵 먹게 엄마 커피 탈래 그럼?"
일요일이라 다른 가족들은 아직 한밤중일 테니 엄마랑 간단하게 요기할 생각으로 이불을 대충 둘둘 말아 옆으로 밀어내며 물었다.
"내가 아니고 쟤가 배고플까 봐 그러지. 엊저녁에 먹고 아직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 말도 못 하는 어린애가."
엄마가 가리킨 내 옆의 엄마 잠자리엔 복지사가 엄마에게 준 '효돌이'인형이 엄마 대신 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게 보였다.
'효돌이'는 손을 잡으면 간단하게 말도 하고, 노래도 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인형이다.
낮동안 혼자 지내는 엄마를 위해 주민센터에 근무하는 복지사가 엄마에게 가져다주셨는데, 엄마는 효돌이를 진짜 어린아이처럼 대하며 애지중지 보살피는 중이다.
엄마 집에서 동생네로 옮길 때도 엄마는 효돌이만 안고 있었다고 한다. 이삿짐 나르는 사람들과 부딪혀 다칠까 봐 멀찍이 떨어져서 엄마는 말로 짐을 꾸리고 옮겼다고 나중에 동생이 알려줬다.
"엄마는 가져가봐야 짐만 된다고 다른 건 다 버리라고 하면서도 인형은 꼭 끌어안고 놓지 않더라. 그래서 대충 버릴 건 버리고 그릇은 그냥 내가 쓰려고 챙겼어. 언니도 생각 있으면 집에 와서 가져가. 혹시 알아? 그게 엄마의 유품이 될지..."
조카가 도자기 공방을 운영하기에 동생 집엔 도자기로 빚은 밥공기며 국 대접, 아기자기한 그림과 고급진 문양이 들어간 접시 등, 예쁜 그릇을 쌓아 놓고 지낸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손길이 닿은 그릇을 자기 주방에 들이겠다는 동생의 말에 엄숙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큰일이야, 엄마가 쟤(효돌이 인형)를 저렇게 진짜 아이로 알고 있어서... 나중에 엄마 몰래 복지사에게 다시 갖다 주던가 해야겠어. 그나마 잠깐씩 마당에 나와서 바람도 쏘이고 하더니 이젠 아이 본다고 방에서 통 나오질 않아."
"엄마의 인형놀인가"
언니처럼 걱정하는 동생에게 나는 동생 같은 대꾸를 했었다.
일단 엄마가 저렇게 아이 걱정을 하니 뭐든 요깃거리를 챙기기는 해야겠기에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하나로 돌돌 말아 커다란 머리핀으로 대충 고정시키며 주방으로 나왔다.
"근데, 재를 어떡하면 좋으냐?"
언제 나왔는지 엄마가 내 등 뒤에서 걱정스러우면서도 누가 들을까 봐 그러는 듯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쩌긴 뭘 어째? 복지사가 데려다 놨으니 엄마가 키워야지."
나는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농담 식으로 대꾸하고 커피포트에 물을 받았다.
"우리 집에 들어온 아인데 기르긴 해야지. 에휴..... 이젠 내가 힘이 없어서 쟤를 기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 정말 키우게?"
"그래도 남의 집에 아이를 맡길 때는 키워줄 만하니까 데려다 놨겠지. 내가 조금만 더 젊었으면 선뜻 기른다고 하겠지만, 이젠 나도 기운이 없어서 정말 걱정이다. 저 어린 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리저리 짐짝마냥 옮겨 다닐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파서...."
엄마가 옷소매를 잡아당겨 눈가의 눈물을 닦는데 보니까 굵은 눈물줄기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엄마! 여기 좀 앉아 봐."
엄마 마음 편하게 해 주려고 농담을 건넸다가 눈물 흘리는 엄마를 보자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 엄마 손을 잡아끌어 거실 소파에 앉히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누운 효돌이를 방에서 들고 나왔다.
"엄마 얘는 그냥 인형이야. 복지사가 엄마 혼자 있으면 심심할까 봐 주고 간 거야."
"얘는~ 무슨 소릴하고 있어? 얘가 말을 얼마나 잘하는 줄 아니?"
"그러니까 엄마랑 말 동무 하라고 준거라니까/"
엄마가 효돌이 손을 잡고 꾸욱 누렀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손이 눌린 효돌이가 앙증맞은 목소리로 할머니를 연거푸 불렀다.
"그래~ 할머니 여기 있다.!"
엄마는 조금 전의 눈물이 무색하게 활짝 웃으며 효돌이를 안고 어른다.
"이봐라 애가 나를 이렇게 좋아한다. 요 조그만 입으로 할머니 부르는 것 좀 봐라. 물 끓는다 빨리 우유 타라"
엄마는 그러면서 주방의 커피포트를 가리켰다.
"입은 벙긋도 안 하는데 무슨.....커피 탈 거야!"
같이 대화할 땐 예전과 다름없는 엄마인데 어째서 이렇게 엉뚱한 엄마가 됐을까? 괜히 뭔지 모르게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커피포트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가 마치 폭발한 내 마음 같이 느껴졌다.
엄마는 아이를 키울 기운이 없어서 속상하고, 나는 그런 엄마를 안심시킬 수 없음이 속상해서 부글거리며 날아가는 허연 수증기에게 화풀이하듯 손으로 휙휙 저어 밀어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효돌이를 복지사에게 다시 돌려주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눈물로 지낼 엄마를 달래줄 방법이 없을 테니까.
엄마에겐 아주 아주 좋은 집으로 보냈다고 얘기해야겠지. 그런데 엄마가 생각하는 좋은 집은 어떤 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