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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Sep 20. 2024

애증의 크리스마스

#1




크리스마스를 좋아했다. 한 해를 무사히 살아낸 기분이라서. 다른 사람들도 같은 이유로 크리스마스를 좋아해서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케이크에 초를 붙이나보다. 그러다보니 과자점의 크리스마스는 꽤나 중요한 날이 된다. 무사히 살아낸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가장 많은 케이크가 팔리는 날이라서다. 그래서 많은 과자점에서 부랴부랴 연말 분위기를 내려고 12월이 되기도 한참 전에 트리를 꺼내 장식하고 캐롤을 틀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머라이어캐리가 할로윈 다음 날만되면 ‘it’s time~!’하고 본인의 캐롤이 bgm으로 깔린 영상을 sns에 업로드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과자점 사장이라면 두배로 좋은 날이 된 것 아닌가 싶겠지마는 반대로 과자만드는 사람이 되고 나서는 크리스마스를 온전히 좋다고만은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본디 크리스마스는 가족, 연인들과 평소보다 다소 화려한 음식들로 테이블을 채우는 날 아니던가. 그 테이블 가운데에 놓일 케이크를 준비해야 하는 파티쉐에게는 엄청난 시련과 고난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고난인지 설명해보자면 첫 번째로는 딸기를 들 수 있다. 크리스마스 하면 딸기 생크림케이크라는 국룰(?) 때문인지 12월 초중순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딸기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크리스마스 전 날 가장 비싸진다. 그도 그럴게 크리스마스케이크는 몇 주 전부터 진즉 주문을 받아두기 때문에 딸기 값이 예상보다 비싸다고 받은 주문을 취소하거나 추가로 돈을 받을 수도 없다. 게다가 딸기 가격은 당일 새벽 도매시장에서 정해지기 때문에 가격을 미리 알고 수량을 조절할 수도 없다. 그냥 과일가게 아저씨가 부르는 게 값이 된다. 그래서 주문을 받을 때부터 딸기 가격이 어느 정도 되겠지 생각하고 주문을 받긴 하는데 예상보다 너무 많이 비싸면 곤란한 상황이 된다. 사실 거의 매년 딸기값은 내 예상보다 비싸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만 되면 늘 억울해진다. 과자점 사장으로 크리스마스를 아홉번이나 보냈는데도 가격 예상 실력은 왜 하나도 늘지를 않는건지. 아무래도 부자가 될 사람은 아닌가보다.


딸기는 비싸도 어쨌든 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데 여기서 두번째 고난이 생긴다. 생크림이 아예 씨가 말라버리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대량으로 깡그리 구매해 가서 그렇다는데 진짜인지는 작은 영세업자는 알 길이 없다. 유통기한도 짧은 생크림을 미리 쟁여둘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생크림이 부족해 납품해주시는 사장님께 애걸복걸하는게 일상이 된다. 그래도 부족한 건 매 한가지라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네다섯 배의 비싼 가격에 구해야하는 상황도 생긴다. - 여담이지만 크리스마스 다음날이 되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생크림들은 다 어디에 있었던 걸까.


이렇게 재료 준비부터 힘이 드는데 밀려드는 주문에 며칠 동안 꼼짝없이 몸과 시간을 갈아 넣으며 케이크를 만들다 보면, 떼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짓거리를 하는 건지 반쯤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년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었다. 그럴 수 밖에 없게 되는 이유는 꼭 내 직업이 과자만드는 사람이라서, 많은 케이크를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라서 때문만은 아닌 듯 하다.


나는 그 이유를 감히 어머니의 마음에 빗대어보고 싶다. 어머니들은 첫째 아이가 겨우겨우 제 몫을 하기 시작할 때쯤이 되면 알 수 없이 기쁘고 벅찬 기억만이 남아, 임신과 출산 등 그간의 힘든 시간은 모두 잊고 둘째를 하나 더 낳아볼까 생각하게 된다고 하던데. 나 또한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쇼케이스 안에 가득 채워져 있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들을 보면 하나하나 모두 내 새끼 같아 그간의 고통은 사라지고, 보고만 있어도 예쁘고 귀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추운 날씨를 뚫고 예약한 케이크를 찾으러 오신 손님들의 행복한 표정을 읽는 것은 붙잡아둘 수 없어 아쉬울 정도의 즐거움이며, 맛있게 먹었다는 후기를 받을 때면 집집마다 도착한 케이크가 제 몫의 역할을 잘해준 것 같아 자랑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과 하룻밤이면 사라질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무게가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어쩐지 나는 아이를 낳으면 행복이 지붕을 뚫고 온다는 그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올해도 12월이 되면 트리 장식을 시작으로 또다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준비하게 되겠지. 모르면 모를까 얼마나 힘들지 이미 알기 때문에 더 크게 다가오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모든 일이 끝난 뒤의 충만한 보람과 기쁨을 놓을 수도 없는 애증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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