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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으로의초대 Sep 17. 2022

위로받지 못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 독서 후기

헛헛한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마주치는 상황들. 날카로운 말로 서로의 마음을 할퀴는 순간들. 도를 넘고 선을 넘고 적정선을 넘고 뱉지 말아야 할 말을 뱉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 남을 깎아내려야 할 때 내가 가져야 할 마음들.


그제 회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그런 마음이었다. 마음을 위로받지 못한 채, 어디에도 두지 못 한 내 마음을 도닥여줘야 하는데 나조차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겠는 시간들. 두지 못하고 붙잡아 두지 못하고 뭉쳐두지 못하고 흩어진 마음들을 수습해야 하는, 아니 수습해야 할지 그대로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는 순간들.



이런 위로받지 못한 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새벽에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을 꺼내 들었다. 마음을 폐기하지 말라는 소설.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경애는 그런 마음에 대해서 꽤 잘 알았다. 그러니까 현실의 효용가치로 본다면 애저녁에 버렸어야 했을 물건들을 단지 마음의 부피를 채우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마음을 말이다."



"다른 사원들과 달리 상수는 그런 말들을 아주 귀담아들었다. 정말 말 그대로 듣기 좋은 소리였다. 마음 어딘가에 쌓인 만년설 같은 것을 녹이는 소리였다. 본인은 극구 인정하지 않지만 아버지 덕분에 회사에 들어와 대강 시간을 뭉개며 살아보려 하던 상수를 깨우는 소리였다. 하물며 기계라는 것, 미싱이라는 것,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도 그런 '의미'랄까, '본질'이랄까 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그것이 상수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



"경애는 그때 그 노래가 별로여서 웃은 게 아니었다. 한다정을 곤란에서 구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물론 경애는 회사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다정과도 친분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ㅡ 여자 화장실 한편에서 유축기로 젖을 짜던 소리와 공용 냉장고 냉동실에 얼려놓은 서너개의 젖병으로 ㅡ 다정이 엄마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는 그러면 안될 것 같았다. 누구도 새해 첫날 망신을 당해서는 안되지만, 특히 엄마라면."



마음에 관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주는, 마음을 폐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담담한 연애소설. 지금 마음이 힘든 사람. 기댈 곳을 못 찾은 사람. 그런 당신의 마음을 이 소설이 다정하게 만져줄 것이다. 소위 '담백한 연애', '자만추'의 정석인 연애소설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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