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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일을 우선 해야 할 거 같다는 불안에.

중단과 시작 사이, 취업 대기중과 소식

 책과 공부를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를 계속해 와서, 이제는 좀 더 외곽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여기에서는 입사 지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볼 텐데, 미취업상태에서 취업상태로 가는 단계의 기준이자 경계이기 때문에 그렇다. 또한 이 입사지원은 실업급여의 수급 조건으로 한 구직활동, 즉 단순히 시도했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아예 취업을 할 작정으로 실행한 것이었다. 

 책으로 하루와 머리를 채워가던 중에 배경이었던 현실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조금 어두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취업을 하지 않았던 기간 동안,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책과 공부, 글로만 채워가고 있었고 가능한 한 거기에 집중하고 그에 대한 생각들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어찌 발 딛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언어에 치중하다가 다른 분야의 책들도 읽어보고 하루 종일 책만 봐 보는 시간도 가져 봤다. 이런 시간을 다시 한번, 그리고 여유만 된다면 언제까지나 갖고 싶었지만, 잔고가 바닥에 가까워지면서 더 이상 현실을 생각하지 않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전신에 독처럼 불안이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이 불안은 몰입을 자꾸만 깨트리고 마음을 어지럽혀서 손에 책을 잡히지 않게끔 했다. 그렇게 불안에 짓눌려 버린 것이다.


 불안 속에서 들었던 생각은 책은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 어찌 삶보다 클 수 있겠냐는 것과 현실이 어느 정도 뒷받침이 되어줘야 책도 읽을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현실이 안 되면 책을 읽는 여유가 없을 뿐만이 아니라, 공간의 문제로 소유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바닥이자 발판 같은 최소한의 현실이 굳건해야 하고 그래서 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는 건 결국 책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현재 몰입하고 있는 모국어가 모든 지식의 흡수의 근간이 된다는 믿음은 변치 않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현실에선 그 자체의 힘은 미약하기만 하다. 무언가를 하기 위한 발판은 되어줄 수 있어도 이 것 자체만으론 힘이 없다.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것에 비해 당장은 돈이 될 수 없으며 내 현실적인 문제와 필요들, 즉 내 대출금을 갚아주지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아직까지는 자기만족이자 준비적인 것 외에 별다른 역할이자 의미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결국 당연한 수순처럼 입사 지원을 시작으로 취업에 관한 활동을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 현실 생각 않고 하던 온전한 몰입의 시간이 중단되며 멈춰버린 시간이 됨과 동시에 내가 견디며 통과해야만 하는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원친 않았지만 내린 선택으로 인해서, 지속해 오던 시간의 중단과 다가올 또 다른 형태의 시간의 시작 사이에 틈새 시간도 함께 생기게 되었다. 대기 상태라는 이름의 사이 시간이었다.


 대기 상태 동안엔 돈에 대한 불안과 중단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각오와 함께 바쁘게 움직이며 하나씩 준비를 해갔다.


우선은 취업을 하기로 한 곳이 식품계열이었기 때문에 보건증을 떼어와야만 했다. 보건증을 떼고 발급받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장 우선적으로 보건소에 가서 보건증을 발급받는 절차를 거치며 준비를 해두고 기다리다가 나올 때쯤에 맞춰서 입사 지원을 한 것이었다.


 그 후에는 바뀌게 될 생활을 위해 원래 하던 생활 방식을 뜯어고쳐야만 했다. 새벽에 늦게 자던 생활에서 늦어도 12시 안으로는 자는 식으로 수면 패턴을 맞춰보고 일을 다니면 하지 못할 것들을 생각하고 하나씩 했다. 도서관에 가서 회원증을 새로 갱신해 오고, 청년도약계좌 신청이 와서 가입을 하는 등의 행동이었다.


 취업 전에 해치워야 하는 행동들을 다 하고 나서 지원은 저녁쯤 했었다. 입사 지원을 조금 늦출까 생각도 했지만, 구직활동 증명을 위한 취업증명서를 발급받아 첨부하는 것도 취업 전에 미래 해둬야겠단 생각에 미루지 않고 했다.  구직 사이트에서 온라인 형태로 지원을 했는데 미열람 상태가 조금 길어졌다. 밤까지 아무 소식이 없어서 문자로 한 번 더 지원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저 못한 일들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에 보내지도록 문자 메시지 예약을 걸어놨다. 빠르면 내일 면접 보러 오겠다고 생각하면서.


 미열람 상태로 인해, 월요일은 예상과 다르게 그렇게 평소 지내던 것처럼 지나가 버렸다. 평소 일상에 단지 취업 준비를 더한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예상보다 좀 더 확보가 된 대기 시간으로 미루었던 쉬운 국어 문제를 다시 풀었다. 한동안 중단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부담과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중단했던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괴롭거나 아플 것을 아는 상태에서 다시 매를 맞는 각오를 하는 것과 비슷하단 기분이 들어서이다.


 그런데 의외로 훨씬 쉽게 느껴졌다. 이는 그간의 괴로울 정도로 강도가 세었던 혹독한 독서로 단련이 된 것인지 아니면 마침 쉽고 내가 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운 좋게 접하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쨌든 예상한 것보다 한 번에 훨씬 많이 할 수 있었고 그래서 마음이 놓일 정도였다. 어쩌면 혹독할 만큼 엄격한 독서로 실력이 향성 된 것일지도 몰랐다. 

 국어 문제는 성인인 내 수준에 비해 매우 쉬운 편이지만, 대충 의미만 읽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쉬운 만큼 더 하나하나 뜯어서 머리에 박아 넣듯이 아주 엄격하게 읽는 방식을 고수 중이다. 그래서 꽤나 힘들고 어려웠는데 다시 해보니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게 훨씬 쉽게 느껴졌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취업이 최종적으로 확정될 때까지는 흔들리지 않고 최대한 평소처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작은 안심과 자신감을 주기도 했다.


 다음날인 화요일 오전, 여전히 미열람 상태였다. 다소 불안하긴 했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문자를 보내놨기 때문에 별 걱정은 안 하고 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다 잊고 있었는데 12시가 다 된 시점에 드디어 문자 답장이 왔다. 바로 오늘 당일이 면접인데 괜찮다는 거였다.

 준비를 안 하고 있었던 데다가 적어도 하루 정도의 여유를 줄 줄 알았던 터라, 꽤나 당황해서 꼭 오늘 이어야 하냐고 물어보았다. 그에, 다음 면접날짜가 또 있긴 하지만 달의 중후반이라서 너무 늦는다는 거였다. 나도 이것저것 빠져나갈 돈들과 그 돈을 충당하지 못했을 때의 경우를 생각하면, 되든 안 되든 면접만이라도 빨리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래도 바로 내일 출근하라고는 안 할 거고 며칠 시간이 더 걸리겠지라는 생각으로, 면접은 오늘 당장 보더라도 출근 일이라도 미루면 된다는 생각으로 일단은 서둘러 준비해서 당일에 예상에는 없던 면접을 보러 갔다.


 버스를 타고 처음 가보는 낯선 곳에 무사히 그리고 조금 이르게 도착을 했다. 약속된 시간에 가까워지자 나 이외에도 마찬가지로 면접을 보러 온듯한 사람이 하나둘씩 시간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 뒤에 면접 담당자가 나타났고 안내를 따라 사무실의 2층 회의실로 들어가 이런저런 설명과 함께 서류들을 작성했다. 그리고 출근일자를 정하기로 했는데 이틀 뒤 교육하고 3일 후엔 바로 출근하는 것과 다음 주 출근이 있었다. 조금 고민이 되긴 했지만, 몸은 고되고 힘들어도 돈을 조금이라도 빨리 버는 편이 마음이라도 편치 않을까 싶어서 약간 부담은 되었지만 이틀 뒤, 이번주 안으로 출근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갔지.


 이로써 이제 정말 일을 하러 가는 것이 결정 나 버렸다. 이제는 기다리며 대기 시간에 넉넉히 글을 읽고 공부를 하는 시간조차 끝이 났고, 직장생활을 하며 자투리같이 남는 작은 시간에 끊어지지만 않게 이어나가는 형태정도만 겨우겨우 하게 될 것이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이자 알아봐야 할 것은, 출근을 하고 직접 일을 해봐야 아는 것들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출근이 확정된 후론 오히려 빨리 출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그랬다.


 나의 것들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급하게 간다는 느낌도 다소 들기는 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오래 다닐 거 아니니까, 급한 불 끄고 천천히 다시 할 거니까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걸리는 것들을 달래려고도 했다. 

 '그래 우선은 한동안은 일에만 집중을 하자. 그러느라 원래의 일상을 중단할 수밖에 없어지더라도,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자.'라고 생각하면서 출근할 날을 기다리고 그전에 대충이라도 정돈하고 끝내둘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그 시간 속의 끝 무렵에서, 현실과 꿈 사이에서 조용한 발악을 하며 산다는 기분이 들었다. 다소 착잡하고 무겁고 답답하게 내려앉는 마음에 얹어야 할 것은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었고 내가 믿고 의지해야 할 말처럼 느껴졌다. 

 당분간 나는 눈을 감은 듯이 지낼 테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그저 먹고사는 것 외엔 별생각 없이 그럭저럭 만족하는 가축 같은 삶일지라도 원하는 것과 더 잘살기 위해 견디고 살아내야만 하는 삶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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