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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 땅에서 피어난 꽃 Sep 09. 2023

하루종일 책 읽기와 언어가 아닌 책의 환기

입사 지원 후 남은 시간을 보낸 모습들


[하루종일 책 읽어 보기]


한창 도서관에 들락거리며 책을 읽던 어린 시절이든 경제적 자유와 그로 인한 넉넉한 시간적 여유를 갈망하는 현재든 여전히 바라며 해 보고 싶은 것 중에는 하루 종일 책을 읽는 것이 있다.

 이것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연차나 남아 있는 돈이 있는 상태와 같이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는 백수생활을 할 때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니 취직을 앞두고 있는 지금에서는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셈이었다. 그래서 일단 바로 해보기로 했다.


 또한, 늘 염두하고 있는 바람이자 필요성의 이유 외에도 평소에 쉬운 수준의 국어 문제를 매일 한 바닥씩이라도 풀었음에도 갈수록 느끼는 어휘에 대한 부족함도 꽤나 크게 한 몫했다. 어휘 부족은 문제를 푸는 데 걸리는 시간 역시 늘어나게 만들었으므로 이번에는 순서를 바꾸어서 어휘 부분을 채우고 국어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드문드문이긴 하지만, 어제 하루종일 책 하나만 골라 읽은 하루를 보냈다.


 대상에 대한 설명을 담고 개념을 알려주는 책과 달리, 언어에 관한 책은 상당히 꼼꼼히 읽기 때문에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일단 넘어가거나 문맥에 따른 이해를 했으면 지나쳐가는 걸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철칙이긴 한데, 마치 훈련과 수행을 하듯이 괴롭고 고통스럽게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이해하고 삼키듯이 읽고 넘어간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그 잔상이 남고 외워지기까지 할 때도 많다. 따라서 확실한 장점은 확실히 남는 독서가 된다는 것이다. 대신 단점은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린다는 것이고.


그렇다 해도 중간중간 정신이 없었기 때문일까, 꼼꼼하게 읽는다 해도 너무 그 양이 적다고 느꼈다. 다소 나태했기도 했고 뜬금없이 멀쩡하던 벽의 선반이 떨어져 버려서 물건을 주워야 했던 일들이 생기는 바람이었다.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만큼으로 시도를 했다는 정도에 그치고서 불편한 마음으로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정신이 좀 든 오전에 바로 침대로 방석과 등받침을 가져와 앉았다. 갑작스레 떨어져 나간 선반으로 인해 내 소중한 물건들을 놓을 데가 없어, 작은 내 책상 위에 모조리 올려놓느라 앉을 때가 없기 때문이었다. 선반을 인터넷으로 주문하긴 했지만 주말인 탓에 월요일까진 책상에 자리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간단하게 어포 따위의 간식거리와 얼음을 탄 차를 타서 먹고 10시가 좀 안 된 시간부터 바로 책을 보기로 했다. 잠에서 덜 깨서 그런지 머릿속에 안 들어오긴 했지만 반복해서 보다 보니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제 읽었던 책을 마저 읽는 것이었는데, 서문을 겨우 다 읽고 차례를 읽다 말았으므로 차례부터 읽으면 되었다.


 일반적인 책의 경우 차례는 큰 단원 정도의 이름만 나와 있어 짧지만, 이 책의 경우는 큰 단원을 구성하는 내용들 하나하나에 한 문장씩 전부 차례에 나와 있었고 그 수가 200개에 이른다. 그래서 차례만 읽어도 200개의 문장을 읽는 셈이 된다. 어제는 38개까지 읽었으므로 이제 160여 개가 남았다. 오늘은 이 차례만이라도 다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오늘 하루의 끝에서 최종적으로 얼마큼 읽었는지 기록하기로 하고 조금씩 읽어 나갔다. 양이 꽤 많긴 하지만 부디 차례만큼은 다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집은 조용하지 못한 환경이다 보니, 집중에 도움을 주는 다른 소리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무언가에 집중할 때는 물론 잘 때도 자주 듣는 ASMR영상 속 소리로 주변 소음을 덮듯 책을 읽는 낸내 ASMR도 함께 내내 들었다. 거의 5개는 넘게 들은 것 같다.


 목표와 바람과는 달리 차례는 다 읽지 못하였고, 최소로 삼은 목표량 정도만 겨우 읽어 냈다. 아직은 이해도와 속도 모두 현저히 떨어진다는 걸 확인했을 뿐이었다. 시간만 오래 걸리고 말았기에 다른 것들은 추가적으로 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원래의 루틴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루 종일이라는 오래 시간 동안 책을 읽으려 했던 건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는 데에서 온 생각이었다. 그래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에 대해 더 기쁘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과 과거에 내가 누군가와의 비교로 상처 입을 수밖에 없었던 열등한 기분에 대한 극복도 포함되어 있다. 결과적으론 한 가지에 몰두해 봤지만 그 양은 미비한 정도에 그치고 말아서 시도의 의미정도만 가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남는 것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나중에 분명 쌓여서 빛을 발할 누적양에 보태질 것이었다. 그리고 노력하며 보낸 시간의 총량에도 더 해질 것이었으니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이렇게 미약해도 이런 시간들이 쌓여 나를 보다 능숙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그땐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대폭적으로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만을 생각하고 나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 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무언가를 점점 더 못하게 된다는 믿음이 내 안에 존재한다. 그래서 양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간을 들여하는 것이 특히나 중요하단 생각이다.


[수학과 과학책-언어가 아닌 책의 환기] & 그 밖에 현실적인 생각들


 하루하루 남은 시간을 인식하며 시간이 넉넉할 때 손댈 수 있는 것들을 하던 도중 드디어 입사 지원을 했다. 그전까지가 이제 얼마 큼의 시간이 남았다고 대략적으로 헤아리며 보냈던 때라면 이제는 그 시간의 양이 분명하게 제한되고 결정이 난 것이었다. 이제 길어야 일주일, 빠르면 며칠이었다.


  현재 시점에서는 언어, 그중에서도 모국어가 지식과 학문을 접하는 데 있어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보고서 치중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분야도 언어를 중심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고 이해가 어려워도 붙들며 집중한다. 하지만, 이렇게 한 가지만을 파고들면 다른 영역이 발달이 덜 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퇴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학교 다닐 때 여러 가지 과목을 동시에 배우는 것처럼 그 균형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모국어조차 깊고 제대로 파고들면 그 양이 방대하고 버겁다 보니 도무지 그럴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언어 분야가 아닌 지식도 함께 접할 필요는 있는 법이었다.


 단순히 지식의 균형적인 면뿐만 아니라, 오직 기분과 감정에 따라서 다른 영역을 접하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다. 쉽게 말해 한 가지만 하니 질려서 뭐라도 다른 걸 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모국어에 관한 것임에도 잘 읽히지도 않아서 독서 자체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을 때, 이럴 거면 차라리 다른 분야의 책이라도 읽자는 결심과 실천이 그 포기를 막게 했다. 

 그리고 어쩌면 입사 지원 후, 아직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좀 더 다른 것들을 접해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적응기간만큼은 힘들어서 책은 손도 못 댈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에. 꼭 입사 지원 기념으로 본 것만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이미 사두었던 책 중 수학책과 과학책을 꺼내 들었다. 수학책은 나는 잘 몰랐지만 2014년도에 나온, 출판된 지 꽤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극찬과 환영을 받는 기대되는 책이었다. 이렇게 과거의 어느 시점에 출판된 책에 대해선 꼭 한 번씩 그 책이 나온 시점을 상상하게 된다.

 2014년도에 신작을 이 책이 나왔대도 나는 선뜻 이 책을 사는 것은 물론 한 번 훑어보지도 못했을 것 같다. 그때는 한창 힘들 때였고 혼란은 가득하고 돈은 부족하니 수학은 당연히 먼 존재였을 테니까. 수학에 조금이라도 마음을 내어줄 여유가 없어서 어차피 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책은 사피엔스로 두 말할 필요 없는 유명한 책이다. 사피엔스는 오히려 워낙 유명해서 손이 잘 가진 않았고 어떤 편견이 자리 잡혀 있던 책이었다. 필독서라는 말에 오히려 잘 안 보게 되는 그런 책들 말이다. 좋은 책이라고 해서 샀지만 그래서 읽지 않고 둔지 꽤 된 책이었다. 하지만 책을 펼치기 전 띠지와 겉 부분에 책의 간략한 소개를 읽어 보니, 많은 사람들의 극찬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내가 원하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폭넓은 책인 것에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수준 높아 보이는 지식을 지금의 나의 지식수준으로 접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준비되지 않고 갖춘 건 없는 사람이 어떤 이의 훌륭한 성과물을 가볍게 접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서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유로 손을 대지 않는 것도 방치적 행위라고 생각이 되어서 적어도 내용 이전만이라도 제로 읽기로 했다. 비록 부족하지만, 대신 정말 하나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표지와 책날개를 모조리 깨끗이 훑고 뜯어내듯 곱씹으며 읽어 보았다. 재밌게도 다른 분야의 신기함과 흥미 때문인지 함축된 의미가 있는 언어 책의 한 줄짜리 차례보다 훨씬 잘 읽히는 경험을 했다. 한 줄에서 넘어가질 못했던 것과는 꽤나 대비돼서 조금 놀라울 정도로 말이다.

 이렇듯, 다른 분야의 지식과 문장들이 윤활제 같은 역할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어 다시 막혔던 언어 부분으로 돌아가 읽어보자 확실히 언어 부분도 잘 읽혔다. 


 몰두하고 있는 분야의 방해가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이 두 책을 앞으로도 보다 과감하게, 더 자주 스스럼없이 보기 위해서 띠지는 제거하고 정성스레 책 비닐로 감싸 포장하였다. 그건 앞으로 언어만큼은 아니어도 책장에 꽂아두고 잊지 않도록 손을 대어 보겠다는 의지이기도 하였다.


 일정한 수준과 목표로 삼은 정도까지는 계속해서 우리말과 언어에 치중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해도 잘 되지 않을 때와 너무 언어 쪽의 지식만 과하게 접했다고 생각이 들 때에는, 이번처럼 수학같이 다른 분야의 책으로 환기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 효과와 긍정적인 영향은 제대로 확인했으니 말이다.


 현실적으로는, 일하는 시간이 내 삶에 다시 끼어들게 되면서 그 양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일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한 것으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생각을 갖고 있다. 그때까지만, 원하는 생활의 모습을 포기하고 나는 버티면서도 아주 조금이라도 지속해 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항상 돈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동안에 부수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함께 생각해 보았다. 이왕 하던 것을 중단하다시피 해야 한다면 그 외적인 것들을 함께 처리하는 시간으로 보내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비록 온전히 몰입하지 못한다는 건 아쉬우나, 돈을 버는 것 자체도 그리 나쁘진 않으며 묵은 사진정리 같은 것을 하는 것이 잠시 멈추고 쉬는 동안에 하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해되거나 시간을 뺏는 것들을 같이 처리하는 시간으로 보낸다면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여유가 생겨났을 때 더 잘 집중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내는 준비를 하는 것이 될 테니까. 

 어쩔 수 없고 원치 않게 당분간은 살아내야 할 형태의 현실일지라도, 기반이나 기초 따위를 아주 잘 닦아 놓을 수 있다면 오히려 가치 있고 필요하기까지 했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내가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니 손으로 할 수 있고 그나마 가진 내 재능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니 아마 그림, 블로그, 전자책 만들기 알아보기 정도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보면서 같이 하기엔 결코 적지 않은 할 일들이다 보니 바쁜 시기를 지나 일한 시간이 6개월 이상이 되어 안정적이 되었을 때에서야 조금이라도 시도를 해 나아가고, 천천히 그것들까지 같이 하는 생활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곧 시작될 직장생활의 일자리 소식을 기다리며 나는 좀 더 책을 읽고 평소와 다른 책도 접해 보며 당분간의 미래를 그려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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