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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 땅에서 피어난 꽃 Oct 17. 2023

걱정과 기대의 첫 출근

취업과 생산직 첫 체험

  면접 후 출근 하루 전 교육을 먼저 들으러 가야 했다. 교육에서는 현장에서 일할 위생복과 장갑 따위를 지급받고 신발장 등에 쓰이는 개인 번호와 통근버스 지정 좌석번호등도 부여받았다. 그 후 위생복 착용과 현장에서 알아야 할 사항들과 안전교육까지 듣고 임시로 옷가지 등을 보관할 라커로 이동을 했다. 거기에 옷가지를 두고 나가기 전에 통근버스 기사님의 번호를 전달해 들은 뒤 통화를 해서 버스를 탈 것을 알린 뒤에 귀가할 수 있었다.


 개인 번호라는 게 있었고 임시로 옷을 둔 라커 번호, 통근 버스 좌석 번호까지 기억해야 할 번호가 여러 개가 있어 꽤나 헷갈렸고 잊어버릴까 봐 많이 신경이 쓰였다.

 내일부터 출근이고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통근버스를 놓치지 않고 잘 타는 것이었다. 시간은 새벽 5시 55분이었는데, 여유 있게 10분 전까진 도착해야 한다고 했다. 통근버스를 타는 곳은 집에서 거리가 꽤 있었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정확히는 몰라서 여유시간을 두고 훨씬 일찍 나가야만 했기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취업 전의 생활에는 늦게 자면 밤을 꼬박 새우고 이때 잘 때도 있었는데 이제 취업을 하면서 정반대로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이었다.


탑승하기로 한 버스 정류장 앞에서 같이 들어온 입사동기 한 명과 버스가 오는 건지, 여기가 맞는 건지 다소 불안해하면서 기다리다가 버스를 겨우 탔다. 어리숙한 신입 두 사람에게 통근버스 아저씨는 다소 불친절했고 지정 좌석에 가자 가방을 두고 자고 있던 사람이 나를 보고 가방을 치워줘서 앉을 수 있었다.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혼자서 편하게 갔을 텐데 어쩔 수 없는 거긴 해도 불편하긴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버스는 24분 정도 달렸고 이제 3번째 와보는 회사 정문에 정차했다. 라커에 두고 간 물품을 챙기기 위해 사람들과 뒤섞여 내리고 머뭇거리며 기억을 더듬어 탈의실로 향했다. 거기에서 놓고 간 집을 챙겨 나오자 1층에서 신입분들이냐면서 남자 직원분이 말을 걸었다. 

 알고 보니 일을 할 곳은 휴게실이 깨끗하고 시설이 좋았던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 그게 좀 아쉽다고 생각하면서 안내에 따라 차를 타고 근무지로 이동을 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서, 그렇게 멀진 않지만 걸어서 이동하기엔 멀어서 차로 이동을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원래 일하는 줄 알았던 곳에 비해서는 다소 작고 지어진지 좀 된 편의 건물이었다.


도착한 건물에서 다시 탈의실을 배정받았는데, 이제는 임시가 아니라 지정된 내 탈의실이었다. 위치는 1층이었고 2칸의 탈의실 중 왼쪽 끝에 있는 작은 탈의실이었다. 거기에서 지급받은 옷을 비로소 갈아입고 몇 명의 입사동기들과 함께 5칸 정도 되는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 갔다. 


그러자 장화를 벗어 걸어 두는 곳과 신고 온 슬리퍼를 두는 곳, 현장에 들어가기 전 통과해야 하는 에어워셔가 있는 공간이 나왔다.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중간지점이었다. 낯설게 느껴지는 입실 절차를 거치고 이미 근무시간을 지나서 입실을 할 수 있었다. 7시 40분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내부에서 사람들은 일사불란해게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친절하게 알려주는 여자분을 따라 동기들은 여기저기로 하나씩 흩어졌다. 이 사람은 여기, 저 사람은 저기와 같이. 나는 책상 혹은 작업대처럼 생긴 정사각형의 넓고 큰 도마가 일렬로 쭉 이어 붙어진 곳에 가게 되었다. 거기에서는 한창 용기에 담긴 언 고기들을 깨끗한 용기에 예쁘게 쌓아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내게 주어진 첫 할 일이었다.

 정확히는 la갈비였는데, 납작한 고기들을 층을 쌓아 높이를 만든 후, 맨 위에는 마트 같은 곳에서 파는 것처럼 가장 예쁜 부분을 올려놓고 덮어서 장식하는 식이었다. 데려온 사람이 맡아달라는 부탁에 도마 중 한 분이 나이부터 해서 이 것 저 것 물으면서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이해는 어려웠다. 이를테면 별 다른 설명 없이 위에는 얼골을 올려, 같은 식이었는데 뭐가 얼골인 지를 모르겠어서 물어보면 그 특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그냥 이게 얼골이다라는 식이다 보니 애를 먹었다.


그리고 언제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들었던 말처럼, 현장의 사람들은 전부 하얀색 옷과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중간중간 다른 색깔의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 같이 위생복과 마스크를 쓰다 보니 구분이 어려운데 강렬한 모자 색 때문에 구분이 쉬운 것은 있었다. 그 사람들이 일반 사원보다 직급이 1단계에서 3단계 높은 사람들이었다. 부르는 이름도 각각 프로, 선임, 수석과 같이 구분이 되어 있었고 수석이 가장 높았으며 공장으로 이동을 할 때 태워다 준 남자 직원이었다. 


현장일의 특성상 오전 쉬는 시간이 있고 역시 적용되었는데 7시부터 업무를 시작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은 9시였다. 8시가 다 되어서 현장에 들어왔기 때문에 얼마 안 돼서 쉬러 나갈 수가 있었다.


 그 후 다시 돌아와서 일을 하고 점심시간에 나가고 쉬었다가 다시 돌아와서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저녁 6시 정도가 되었다. 사람들은 하던 작업을 다 마무리하고 정리를 했는데, 굉장히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저기 갑자기 흩어졌는데 습기가 차기 시작했다. 남자들 중에서 주로 빨간 모자인 사람들이 긴 호스를 이용해서 세제를 뿌리고 물을 뿌렸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역할이 정해져 있거나 할 일을 잘 안다는 듯 정해진 것처럼 움직였다.  

 첫날에 와서 작업을 하는 것도 정신이 없었지만 청소 시간에는 '와 이게 진짜 뭐지.. ' 하며 잠시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기도 했다. 멍하니 뭘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렇게 잠시 서 있다가 사람들에게 뭘 하면 되냐고 이리저리 물으며 겨우겨우 하나씩 서툴게 참여해서 해 나아갔던 것 같다. 그 과정 중에 호스를 든 프로 한 명이 나오라고 소리쳤는데 굵직하고 단호한 목소리에 조금 무섭게도 느껴졌다.


 청소까지 마무리 짓고 나니 일이 끝이 났다. 수석님이 종례 같은 걸 하며 마무리 짓게 되었는데 첫날이라 그런지 일부러 더 신입분들 일 잘한다고 하던데?라는 식으로 공개적인 칭찬을 하면서 북돋아 주었다. 그렇게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의 일이 끝났다. 12시간가량의 일이었는데 중간중간 쉬어서 그런지 시간에 비해선 업무 강도는 세지 않았다. 대신 다소 정신없고 안 하던 일을 하는 데에서 힘든 건 있었다. 그래도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돌아다니며 묻고 또 일을 했던 것 같다. 새로운 시작인 만큼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금요일이 첫 출근이어서 출근 하루 만에 쉬는 건가 했지만 바쁜 시즌이어서 다음날인 토요일도 나와 야한 댔다. 그래도 이틀째였고 토요일 근무는 전 직장에서도 한 번씩 해보고 1.5배만큼 수당도 쳐주니 나쁘진 않았다.


 사실 이제 출근하는 거라 어떻게 되고 얼마큼의 시간이 남는지는 몰랐지만 그래도 셔틀버스로 이동 중이나 점심시간 같은 때에는 여유 시간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출근 전에 책 한 권을 들고 가봤다. 그런데 이제 막 일을 시작해서 알고 되뇌어야 하는 것들도 많아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퇴근할 때 정도는 볼 수 있을 거 같았지만 크기가 크면 불편하고 잘 안 읽게 되는구나 싶어서 정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책을 볼 생각이라면 작은 미니북으로나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집에 완전히 귀가해서야 책에 손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제 막 다니기 시작했다 보니 얼마간은 첫인상이나 드러나는 모습에 이목이 많이 집중되기 쉬워서 괜스레 더 부담되고 신경이 쓰여 보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다닌 지 얼마 안 돼서 관심이 뜸해질 때에나 편하게 볼 수 있을 듯했다


 정신없이 지나간 출근 첫날이었지만 12시간이나 일하고 온 것이었고 그 긴 시간 동안 일하고 와서도 하루에 글 몇 줄정도는 볼 수 있구나라는데서 오는 희망도 있었다. 출근 때문에 일찍 자고 일어나야 하지만 적어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게 기뻤다. 비록 그 양과 비중은 작아질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더 다른 생활을 시작하고 일을 한다고 해서 중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불안과 걱정에 짓눌려 있다가, 한동안 돈 걱정만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안도감과 적게나마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긴장을 풀고 편하게 잠에 들 수 있던 출근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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