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한다는 칭찬
이제 막 일을 시작해 배워 나가고 익숙해지는 중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워지는 추석으로 9시 야근의 연속같이 일에 파묻혀버린 듯한 생활 속에서 정신없는 나날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여태껏 일에 대한 적응과 그 안에서의 내 생각과 고민, 걱정, 갈등과 같은 부분에만 계속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해오며 다른 외적인 것들은 많이 생략하여 이야기를 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다고 한들 어떤 식의 일을 했는지에 대해 말할 수 없고 12시간에서 많으면 14시간가량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어찌 아무 일이 없었으랴. 나의 개인적인 생각과 상황적 이야기는 이제 충분히 한 것 같으니 이번에는 말하지 않았던 일의 상세한 내용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조금 섞어서 해보려고 한다.
정신없이 지나쳐 오느라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지만, 확실한 것은 일한 지 일주일이 넘어 며칠 뒤의 일이었다는 것이다.
가장 초반에는 내가 여자이다 보니, 여자들이 주로 작업을 하는 공간인 기다란 도마에서 나열을 하고 조금씩 배웠다. 그리고 일주일차에 잘 못하는 모습이 보이자 나라는 신입은 무슨 일을 잘하는지, 이걸 잘 못한다면 저건 잘하는지 등을 보기 위함인 것처럼 이 일을 해보라며 다른 일을 지시받게 되었다. 그때쯤의 일이다.
기본적으로 이곳의 공정은 가장 먼저 들어온 원료를 1차적으로 풀어헤치고 다듬은 뒤 불필요한 지방을 기계로 제거한다. 그다음 지방을 어느 정도 제거해 살코기의 비율이 많아진 고기를 상품에 따라 알맞은 모양으로 기계로 잘라 성형을 하고 잘 다듬어진 모양의 고기를 도마로 가져와 나열하고 최종적으로 포장을 한다.
여기에서 내가 하게 된 다른 일은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의 일이었는데, 일주일차에 두 번째 단계의 일을 먼저 해보다가 그다음 날부터 세 번째 단계의 일을 새롭게 해 보라며 지시를 받게 되었다.
먼저 해본 두 번째 단계의 일은 크게 어려운 건 없었다. 오히려 몹시 단순한 일이었는데, 그저 잘린 고기 덩어리들을 넓은 판에 옮겨 담은 뒤 성형하는 곳에 옮겨서 전해주는 것이 전부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계속 허리를 숙여 들어 올려 담아야 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하면 무척 힘들고 허리도 아팠다. 또 한, 두 사람이 기계 4-5대를 돌아다니며 중간에 끊김이 없도록 연속적으로 가져다주어야 했다. 그래서 몸도 아프지만 정말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냉동 상태의 고기가 녹지 않도록 낮은 온도를 유지하는 곳에서도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잘린 고기를 담아서 전해주는 간단한 중간 단계의 보조 역할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꽤나 힘든 부분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기가 무척 힘들다. 그래서 이 역할은 한 사람이 쭉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한 명 정도씩만 돌아가면서 하고, 지시하는 사람도 그렇게 일을 시키는 편이다.
두 번째 단계의 일을 하고 난 다음날에 아직 허리가 얼얼한 상태로 지시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데, 직급이 한 단계 높은 남자 사원 즉 '프로'가 와서 나에게 세 번째 단계에서 일하라며 지시를 했다.
그날 해야 했던 상품은 LA갈비여서 넓적한 타일 같은 네모난 고기 덩어리를 1cm 정도씩 일정하고 얇게 잘라내 길쭉한 대로 만들어야 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얼어 있는 고기는 골절기라 불리는 톱날이 빠르게 돌아 절단할 수 있는 기계에서 잘랐는데 그 톱날에 고기 덩어리를 밀면 그 방향대로 잘려 나가면서 앞쪽에 고기가 툭 떨어져 나온다.
널찍한 고기 덩어리를 1cm가량이 되도록 밀면서 자르다 보면 대략 14-18개가량의 대가 모여 있는, 우리가 흔히 아는 길쭉한 대를 가진 LA갈비 모양이 되는데, 이때 남자들은 밀기만 하기 때문에 떨어져 나오는 이 조각들을 다른 사람이 앞에서 받아 모아 주어야만 한다.
바로 그게 내가 지시를 받고 새롭게 해야 하는 세 번째 단계의 일이었다. 기계를 사용하는 '기사'라 불리는 남자 사원이 고기 덩어리가 전부 조각이 되도록 밀어서 자르고 다시 당겨서 또 밀어 자르는 행동을 반복하며 고기를 끝까지 잘라내는 동안 주로 여자 사원은 그 앞에서 잘려 나온 고기를 받아 모아준다. 그렇게 남자 기사와 짝을 지어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갑작스레 안 하던 일을 하려 하니 걱정과 긴장이 엄습했다. 마음에 부담감도 더해지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두 번째 단계의 일은 그냥 혼자서 왔다 갔다 하며 전해주는 게 다이지만, 이건 몇 시간 내내 일대일로 붙어서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일이다 보니 잘 못하면 오랜 시간 동안 앞에 있는 상대를 불편하거나 힘들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해보기 때문에 상대 남자 기사가 어느 정도 감안을 해주는 것이 있다고는 해도, 도마에서의 일이 있었던지 얼마 되지 않아 생생했던 상태였던 터라 너무 못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대놓고 책망하고 지적하는 사람보다 괜찮다며 참고 맞춰주는 사람에게는 배려를 받는 만큼 더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고 폐가 되지 않도록 잘하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사실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에도 잠깐 비슷한 일을 체험해 보긴 했었는데, 말 그대로 잠깐 해보았고 다른 상품이었어서 앞에서 받아주는 역할인 건 동일하면서도 새롭게 하게 된 일과는 또 별개였다. 그리고 또 워낙 잠깐 해서 거의 까먹고 있었기도 했어서 지금 하는 일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다만 잠깐 해보았을 때의 파트너였던 그 남자 사원과 다시 짝을 지어 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만이라도 익숙했기 때문에 그만큼의 안심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남자 기사 사원은 다정하고 친절했기 때문에 고마우면서도 일의 실수를 낳을 수 있는 과한 긴장을 거둬줄 수 있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일부러 같이 하라고 짝을 지어서 지시를 해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설명을 듣고, 기분이 나쁘지 않은 편의 일적인 지적을 받기도 하고 몇 번은 실수하면서 열심히 쫓아가듯이 일을 했고 집중을 했다. 아무래도 첫날이었다 보니 별다른 말 없이 마무리 지어지도 넘어간 느낌이었지만 그래서 내가 얼마나 잘했는지 혹은 못했는지를 알 수 없어 마음에 많이 걸리고 걱정스러웠다.
다음 날이 되자 나는 또 똑같은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처음 맞닥뜨리게 돼서 낯선 사람과 하게 되었다. 어제의 그 기사 하고는 할 수 없어서 아쉽고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어떤 식으로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알았고 약간의 경험과 감이 생기게 되었기 때문에 아주 걱정이 되진 않았다.
그래도 이제 두 번째로 하는 만큼 낯설었던 사람도 내게 하나하나 세심하게 잘 알려 주었고 중간중간 잘 받지 못한 적도 몇 번 있었지만 연습과 훈련을 하는 기분으로 부담을 덜고 할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거의 매일같이 같은 일을 했다. 골절기를 옮겨 다니면서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짝을 지어서 보조적인 역할을 해본 것이다. 그렇게 4,5번 정도 했을 때였을까?
같이 붙어서 일하는 사람들이 잘하네, 잘 받네 같은 칭찬의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이제 막 2주 차에 접어들고 있는 시점의 신입지 고는 나쁘지 않게 한다는 의미의, 좋게 봐주려는 마음과 선의의 거짓말이 섞인 칭찬이라고 생각을 했다. 서툰 아이들이 잘하지 못해도 일부러 잘한다 잘한다 하면서 칭찬을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냥 속으로 일부러 마음을 써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더 잘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집중하고,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잘할 수 있을지, 그래서 애써 좋게 봐줄 필요가 없는 수준의 실력을 갖출 수 있을까만 고민하고 생각하고 몰입하기만 했다. 그 칭찬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서 오로지 나 자신에게 엄격하게, 노력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비슷한 형태의 하루를 보내던 와중에 어느 날 아침, 내게 무얼 하라 지시를 내리는 프로가 오늘도 같이 짝지어 일한 기사를 정해주면서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내가 잘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에 나와 같이 먼저 일했던 다른 기사가 동조하듯 맞아 잘해라는 이야기도 했고 곁에 있던 다른 나이 드신 여자 사원 한 분이 자기는 그런 말 못 들어 봤는데 부럽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때쯤부터 나는 잘한다는 말이 빈말이나 선의의 거짓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적어도 폐를 끼칠 정도는 아니겠다는 생각에 조금 안심을 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잘하기 위한 생각과 일을 해보면서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잘 안 잡힐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등을 터득해 개선해 나아갔다.
한 번 같이 붙어서 일한 파트너와는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도 계속 같이 붙어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무래도 바쁜 시기이다 보니 하던 사람이랑 이어서 해야 물량을 더 잘 그리고 빠르게 소화할 수 있어서 인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번은 원래 같이 붙어서 일하는 파트너가 그날 다른 작업을 하자, 당일에 같이 할 파트너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보통 이럴 때는 대기 차원이든 아예 그날은 그 일에서 빠지든 간에 도마같이 다른 곳으로 가서 다른 일을 하고 있게 되는데, 안경을 쓴 동생 같아 보이는 남자 기사가 오늘 누구랑 같이 하냐고 하는 사람이 있냐고 내게 먼저 다가와 물었다.
일의 특성상 특정 사람과 오랫동안 붙어서 일하면서 자연스레 말도 하면서 친해지게 되는 편인데, 대신 그 외의 사람들과는 말할 기회가 거의 없어지기 쉬워지기도 하다 보니 같이 일한 적이 없어 말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없다고 하고 도마 쪽으로 이동을 하려는데, 한 번도 이야기를 해본 적 없는 것치고는 일적인 부분에 한해서였기는 했지만 굉장히 적극적이다라고 느낄 만큼 "그럼 저랑 같이 해요."라고 말을 했다. 비록 말은 많이 하지 않았어도 그동안 같이 일하면서 본모습으로는 솔선수범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사람들을 잘 도와주며 일을 잘하던 친구였기 때문에 약간의 부담감이 마음에 생기긴 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많이 듣고 어느 정도 인정도 받았긴 하지만, 워낙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좀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집중해서 평소대로 일을 했는데 몇 번 실수하긴 했고 몇 번 지적을 받거나 돌아가는 칼날이 워낙 위험해서 잘 못한 것에 대해 혼나기도 했다. 그래서 이 번에는 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었다. 하지만 또 나에게 직접 말할 때를 빼고 주변에 다른 동료 기사가 지나갈 때 잘한다는 말을 나누기도 했는데 그래서 조금 긴가민가하기도 했다.
거의 매일 그렇게, 8월을 지나 9월 2주 차까지 초반에 도마에 있느라 말할 기회는커녕 마주 볼 기회도 없었던 남자 사원들, 특히나 그중에서도 기사들과 집중적으로 붙어서 일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까워질 수 있었고 어떤 사람인지 또 일할 때 어떤 고충이 있는지까지도 알 수 있던 시간들이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잘한다는 좋은 평가 속에서 초반에 잘하지 못해 생겼던 상처와 위축은 어느새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 그래도 나는 보조적인 이 역할만은 확실히 잘할 수 있다고. 그것이 마음을 굉장히 편안하게 했고 회전하는 톱날에서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톱밥 때문에 옷이 굉장히 더러워져 매일 위생복을 빨래해야 했더라도, 밤 9시까지의 야근이 이어져도 잠이 부족했더라도 그것 빼곤 힘든 것 없이 오히려 굉장히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원래 여자라는 이유로 해야 했던 보편적이 일에서 쫓겨나서 하게 된 일이 오히려 적성에 너무 딱 맞고 의외의 재능의 발견이라 기뻤다. 위기가 기회가 된 신기한 경험이었고 일한 지 얼마 안 되었음에 바쁜 시기에 맞춰 어느 정도는 확실히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 또한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맘 편하고 즐겁게, 안정적으로 일을 해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