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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와 함께 나눈 것.

음료수와 코로나

 일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띄게 잘하는 걸 찾고 그것을 집중적으로 하게 되면서 주변의 인정과 칭찬으로 한결 부담 없이 즐겁게 일을 해 나아가고 있는 나날의 반복이었지만, 추석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업무 강도도와 그에 비례해 신체적 피로도 몹시 높아져만 갔다. 내가 남자들과 붙어서 일을 하는 일은 팔 안쪽에 무리가 많이 가서 매일 아침 파스가 덕지덕지 붙이고 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평일은 당연할 만큼 하루도 빠지지 않고 9시 야근을 했고, 토요일은 물론 심지어 일요일까지도 출근이라는 엄청난 노동에 시달렸다. 일주일에 단 한 번도 쉬지 못하고 주 7일을 출근해 일한 적은 여태까지 일했던 경험을 통틀어 처음이었고 과연 이게 생산직이라는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평일 5일 내내 4시간 정도씩만 겨우 자고 주말만이라도 푹 쉬고 충전하지 못한 상태로 바로 그다음 주의 평일엔 또 9시까지 일을 하게 되면서 하는 일의 마음 편함과 즐거움과는 별개로 몸은 정말로 몹시 피곤했다. 아침에 옷을 갈아입고 나서도 정말 들어가기 싫었고 쓰러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핑핑 돌고 정신이 없으며 서 있는 것조차 너무 힘겹게 느껴졌다. 약간만 움직여도 몸 여기저기에서 근육통이라는 비명을 질러 나왔고 실제로 아픈 사람들도 점점 늘어갔고 병원 가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고 그중엔 면역력이 떨어져서인지 코로나에 걸려 일주일 동안 못 나오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렇게 힘들었지만, 다행인 건 막상 현장에 들어가서는 일에 집중할 수 있을 만큼의 잠은 깨고 피로를 조금 잊는다는 것이었다.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과 함께 붙어서 일을 하는 파트너가 좋아서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앞서 상세하게 이야기했듯이, 아침부터 밤 혹은 최소 석식시간 전까지 한 명의 남자 기사와 붙어서 하루 종일 같이 일을 해오고 있었는데 일요일까지 출근을 하고 난 그다음 주에 짝이 되어 같이 일을 하게 된 사람은 나보다 4살 어린 동생이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누나누나 하면서 굉장히 싹싹하고 예의 바르고 착한 친구라서 며칠 째 연속으로 같이 일을 하는 게 몹시 즐겁고 좋았다. 중간중간 잠시 멈춰야 할 때 말을 붙이며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고된 노동을 잊고 웃고 피로를 덜 수 있어서 같이 오래 일하는 게 오히려 즐거웠을 정도였다.


그런데 같이 일했던 주의 이틀째 날 저녁쯤에, 평상시대로 앞에서 썰어주는 고기를 받고 있는데 자르는 속도가 눈에 띄게 속도가 느려졌다. 위험하다 보니 천천히 해야 할 때가 물론 있긴 한데, 몇 십분 정도 꽤 오랫동안 그러길래 잠깐 천천히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만 바라보다가 살짝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니 눈이 풀려 있는 걸 보고 많이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짬이 났을 때, 계속 반복해서 고기를 자르는 동안에는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으니 동생은 환한 웃음과 상반되는 비속어를 섞어 대답했다.


"무슨 생각하냐고요? '뒤지게 힘들다.' 하하."


 그 말이 너무 웃기면서도 솔직한 고충이자 힘듦이겠구나 싶어서 안쓰러움이 들기도 했다. 더 어리고 더 젊은 친구도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노동에 많이 힘들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이 느려진 상태로 계속하다가 퇴근 한 시간 전쯤에 갑자기 자리를 뜨더니 곧 다른 사람과 교체를 해서 퇴근 전까지 나는 새로운 사람과 같이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물어볼 새가 없었는데, 다음 날에 또 같이 일을 하면서 물어봤더니 너무 졸려서 교대를 했다고 했다. 


 억지로 졸린 거 참고하다가 사고 날 바에는 그렇게 안 되겠으면 교대를 하는 게 현명하게 잘 판단했다고 생각을 했다. 사용하는 골절기라는 기계는 벽돌같이 아주 단단하게 꽝꽝 얼은 고기가 살짝만 닿아도 뼈째로 그냥 잘려 나간다. 

 이 골절기를 다루는 기사들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작은 고리가 많은 쇠사슬망으로 만든 것 같은 흐물흐물한 장갑을 끼긴 하지만 그건 살짝 스쳤을 때 톱날이 걸려 베이지 않게끔 해주는 게 전부이다.

 그래서 살짝 실수로 닿는 정도가 아니라 돌아가고 있는 톱 날 쪽으로 잘 못해서 확 기운다던지, 넘어지기라도 하면 손가락 같은 건 그냥 잘리게 될 정도로 몹시 위험하다. 아무리 숙련자라고 할지라도 한 순간의 실수면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것이다. 

 나는 부디, 힘든 와중에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이 착한 친구가 그런 비극을 겪는 일이 절대로 없었으면 했다. 그래서 조금 더 같이 일하지 못해 아쉬운 것보다 괜히 더 무리하지 않고 교대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주일을 꼬박 일하고 다시 9시까지 야근을 하느라 누적된 피로가 혹시라도 사고를 발생시킬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마음 같아서야 대신해주고 싶을 정도였지만 당연히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3일째 같이 일하는 동안 고민을 했다. 

 보통 피곤할 때는 자거나 쉬는 게 최고지만 그러질 못하고 계속 일을 해 나아가는 상황에선 카페인이나 비타민을 섭취하는 편이 좋은데, 카페인 음료의 경우 몸에 안 받거나 안 마실 수 있도 단 맛이나 쓴 맛이냐와 같은 취향차이도 있어서 모른 상태에 주기에는 부적절한 것 같았다.

 

 고민을 하고 일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었고 귀가를 해서 물이라도 마시려 냉장고를 열어 보니 이온음료가 2개가 있었다. 보자마자 이거라고 생각했다. 이온음료를 써내서 지퍼백에 간단히 포장을 한 뒤 그 안에 쪽지를 넣었다. 피곤해 보이니까 마시라고 정도의 간단한 내용을 담은. 어쩌면 그 말과 함께 잘 대해줘서 고맙다는 감사의 말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서 놓고 가지 않게끔 잘 챙겼다. 근데 가져가면서도 목요일이었기 때문에 아예 평일의 마무리인 금요일에 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피곤해하니까 그런 거 괜히 따지지 말고 미루지 않고 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근 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한 후에 사람들이 적은 틈을 타서 이름이 적혀 있는 사물함 같은 곳에다가 재빠르게 넣고 나는 탈의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 후에 현장에 들어와서 앞치마 같은 걸 피곤한 채로 혼자 주섬주섬 입고 있었는데, 착한 동생이 갑자기 나에게 빠르게 다가와 누나가 음료수 넣어 놨어요?라고 물었다. 내가 맞다고 하니까 웃으면서 고맙다고 했다.


 혹시라도 부담이 되거나 별로 좋아하지 않을까란 걱정도 있었는데 그걸 모두 없애주는 밝은 목소리와 웃음에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7시가 넘으면서 업무 시작 시간이 되었고 오늘도 같이 일하는 줄 알았다. 같이 일하는 중간중간에 음료수에 대한 것이나 피곤해 보여서 준비했다 같은 걸 이야기하려 했는데 오늘은 웬일로 같이 일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붙어서 일하기로 했다. 빼꼼하고 기계 바깥쪽을 보니 저번에 피곤해서 교대하고 하던 다른 일을 하고 있길래, 감사의 말을 전할 때는 밝았지만 오늘도 많이 피곤한가 보구나라는 생각으로 나도 다른 파트너와 집중해 일을 했다.


그리고 두 어시간이 지난 9시쯤 오전 중간 쉬는 시간에 핸드폰을 보다가 회사 단톡방을 봤는데, 9시에 동생이 퇴근했다고 메시지를 올린 상태였다. 벌써 퇴근을 한 것에 좀 놀라기도 하고 의외였다.

 쉬는 시간에 다시 들어가서 일을 하고 시간은 어느덧 점심을 지나 오후 시간이었다. 갑자기 동생이랑 친한 다른 남자사원이 큰 목소리로 조퇴한 동생이 코로나에 걸렸다고 연락이 왔다고 알렸다.


 그걸 들은 그 순간에, 그래서 이틀 전에 그렇게 졸려하고 피곤해했다는 것과 만약에 음료수 주는 걸 미뤘으면 못 줄 뻔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오늘 조퇴했지만 내일을 다시 같이 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최소 며칠간은 갑작스레 못 보게 되어 버리면서 순간적으로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저 번에 코로나에 걸렸던 사람이 한 사람 있었는데, 현장에선 모두 마스크를 쓰고 일하지만 밥 같은 건 식당 한 군데서 다 같이 먹으니까 그때 감염된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동생 없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도 중간중간 그 빈자리와 함께 그림자 같은 아쉬움이 들었다. 이 현장에서 그렇게나 잘 웃고 밝고 누나누나거리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대체하거나 잠시 잊게 만드는 사람도 없어서 하루하루 언제 오지? 많이 아플까? 빨리 오면 좋겠다와 같은 생각을 하며 일을 하고 허전함 속에 기다리듯이 지냈다. 

 사람들이나 나나 3일 동안 내내 붙어서 같이 일했기 때문에 나도 걸릴 수 있거나 걸려서 잠복기가 아닐까라는 생각과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새 다음주가 되고 화요일이 되었다. 동생은 내일이나 모레에 나올 거라는 소식도 들어서 기쁜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화요일 아침에 뭔가 평소보다 몸이 많이 힘든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워낙 9시 야근을 계속해서 야근의 피로라고 한대도 이상할 건 없었고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조회 시간 때 이번 코로나는 근육통이 특징이라는 말을 수석님으로부터 들었는데 마침 아침에 나도 일해서 생긴 근육통이라기엔 이상한 근육경련이 갑자기 일어났다. 

 주로 사용하는 곳은 팔같이 상체인데, 갑자기 허벅지 한쪽이 부르르 떨리면서 바늘로 콕콕콕 빠르게 찌르는 듯한 통증이 생겨서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화요일에는 아침에 잠깐 초반에 같이 파트너를 자주 했던 다정한 오빠와 30분 정도만 같이 하고 도마로 가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콧물도 훌쩍훌쩍 나올 정도로 추웠다. 오늘이 유독 팬을 많이 돌려 온도를 낮추는 날이라서 그런가라고 생각을 하면서 추위에 떨면서 일을 했다.


그러다가 저녁 시간쯤 나열을 계속하는데 머리가 너무 지끈 거리면서 아프기 시작했다. 그때가 7-8시 정도로 업무시간은 한 시간가량 밖에 남지 않아 조퇴하기에도 애매해서 그냥 계속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옆에서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힘드냐고 물으면서 조금만 힘내자라는 말을 계속하는 호칭을 언니라고 하는 나이 드신 여자 사원분이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걱정해서 해주는 말이라는 걸 알아서 오히려 감사한데, 몸이 아파서 예민해져서인지 전혀 짜증이 날 게 아닌데도 듣는 것 자체가 몹시 짜증 나고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래도 내색은 하진 않았지만 많이 버거웠다. 그리고 작업시간이 끝나고 이어진 청소까지 끝내고 종례를 할 때 너무 힘들어서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건 정말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일 아침에 병원에 다녀오겠다며 늦게 출근하겠다는 말을 수석님과 남자 프로에게 이야기를 한 뒤 통근 버스를 타고 퇴근했다. 


 다음 날 아침에 병원에 들르기로 했으므로 평소에 출근할 때처럼 4시 반이 아니라 7시 정도 일어나게 되었다. 워낙 잠이 부족했다 보니 몇 시간 더 잔 것만으로도 컨디션이 조금은 괜찮게 느껴졌다. 하지만 걸어가는 동안에 자잘하게 들러붙는듯한 아픈 상태가 계속되어서, 바로 출근 안 하고 병원이라도 먼저 들르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날에 현장이 많이 추웠기 때문에 가뜩이나 힘들고 피곤해 면역력도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감기에 걸렸겠구나 생각을 하고 아예 처음부터 병원에 감기에 대한 약을 타러 갔다. 증상 자체가 딱 감기였기 때문이다.

 병원에 도착하니 데스크 앞에 코로나 검사에 대한 안내가 나와 있었는데, 이제 대유행의 시기도 많이 지나서 기존의 몇 천 원가량이었던 검사비가 2-3만 원으로 올라 있었다. 

 조금 비쌌지만 그냥 온 김에 받는 게 나을까란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전 날에 병원에 갔다가 출근한다고 했을 때 수석님이 혹시 모르니까 코로나 검사도 해보라는 말이 떠올라서 온 김에 받기로 했다. 

 사실 내가 들른 내과에 코로나 검사도 정말 많이 받으러 왔는데 전부 음성만 나왔다 보니까, 이번에 받아 봤자 음성이지 않을 생각을 하고 별 걱정도 없이 코를 찌르고 15분가량을 밖에 앉아 대기했다.


 15분이라는 시간이 지나 알람이 울리고 검사를 해주었던 간호사분이 알람을 끄면서 검사를 확인했다. 그래서 이제 곧 고개를 문 밖으로 빼꼼 내밀고 음성이라고 하겠지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어와 보라는 것이었다. 그건 확실히 평소에 알고 있던 것과는 달라서 느낌도 이상 했는데, 부른 데로 들어가자마자 진단 키트를 보여줌과 동시에 양성입니다라는 말을 했다. 살짝 충격적일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절차를 거쳐 증상을 호전해 줄 약을 받고 회사에 제출할 양성확인서를 받아서 사무실 직원에게 양성이 나왔다고 서류를 보냈다. 그리고 원래 지각 정도로 처리될 오늘 출근은 아예 결근이 되었다. 회사에 말을 하고 몇 차례의 통화를 나누며 언제 나올 건지 등을 미리 정해야 했는데, 이제 일주일 동안 격리를 안 해도 되지만 얼마나 아플지 몰라서 그냥 넉넉잡아 주말을 포함해 5일 정도 후에 나간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되면 평일은 수, 목, 금을 쉬고 토일 쉰 다음에 다음 주 월요일 출근 하는 것이었다.


 집에 오고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참 타이밍 좋게 몸이 달아오르듯 아프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굉장히 확 아팠다. 검사 안 하고 출근했으면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생각과 검사하고 출근을 안 한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열이 심하게 나고 머리가 아파서 약을 먹고 바로 잘 수밖에 없었다.


이제 곧 이틀 뒤면 동생을 보겠구나 하고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동생한테 옮은 것인지 이번에는 내가 걸리게 되어 버렸다. 서로 마스크를 쓰고 일했는데도 하루에 열 시간 넘게 밀접해서 3일 동안 일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잠시 마스크를 벗는 다른 공간에서 옮은 것일까. 아무튼 동생이 코로나에 걸려서 출근 못 하고 그래서 못 봐서 아쉬웠는데 상황이 반대가 되어 버렸다. 3일 동안 일하면서 동생이 먼저 걸리고 며칠 뒤 나도 걸리게 됐다.

 그리고 양성 확진 된 날이 6일이었는데 입사일이 11일이라 한 달이 되기까지 단 5일이 남은 상태였다. 조금만 더 출근을 했으면 연차가 생기는 거였는데, 그냥 날아가 버리게 된 것은 꽤 아깝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몸이 워낙 아프고 집에서 쉬게 되었으므로 어쩌지 못하는 회사 일은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귀찮고 쉬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동생과 음료수와 마음을 나누고 코로나를 받은 것과 같은 형태가 되어서 조금 우습게 느껴지도 했고, 너무 연속으로 강도 높은 일을 해서 힘든 상태에서 코로나가 얹어지는 바람에 결과적으론 야근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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