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야.”
예전에 회사 동료와 대판 싸우고 난 뒤, 싸운 동료와 친하면서 나와도 가까웠던 회사 동료가
내게 위로인지, 아니면 내가 잘못했다고 하는 것인지 모를 듯한 말을 건넸다.
“좋은 놈이 왜 그 따위로 말을 하고 자빠져 있어.”
“그렇게 말이야. 원래 좋은 녀석인데...”
그날, 분쟁은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게 함부로 말을 마구 지껄이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이후로 싸웠던 동료와는 내가 퇴사할 때까지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싸웠던 녀석과 친했던 녀석은 가끔씩 내게 싸웠던 녀석이 좋은 녀석인데, 왜 잘 지내지
않냐고 가끔씩 말을 해 내 화를 돋우기도 했다.
아무리 나쁜 놈들도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과는 잘 지내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자기와 우호적인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하면서, 자기 주변을 지뢰밭으로 만들 인간은 없다.
그런 인간들이 자기와 친하지 않은 이와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
더욱 확실한 것은 그 사람이 어렵거나, 감정적으로 바닥을 칠 때, 더욱 확실하다.
그 사람의 진짜 본성이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렵고, 힘들고, 감정적으로 악화되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바닥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어려운 상황에서 천사처럼 행동하기는 어렵다.
어려운 여건을 감안해서 그 사람이 그 와중에도 타인에게 함부로 하지 않거나, 자신의 분노를
자제하고, 때로는 이타심을 발휘할 때, 그 사람의 진가는 빛난다. 반면에,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기심과 악감정을 날릴 때는 사실상 그런 사람과 가까이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인간관계가 늘 평탄할 수 없고, 때로는 위기가 오는데, 자신의 바닥을 금세 드러내고 그 바닥이
추악하다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있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만 그럴까?
지도자나 한 조직이 어려움에 닥쳤을 때, 그 본모습이 바로 드러나는 것이다.
특히나 지도자나 조직이 위기에 닥쳤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바닥을 드러낼 때,
그 사회는 언제든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한 대회가 연일 구설수에다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의 바닥이 원래 이것밖에 안 되었나 하는 자괴감도 가끔 든다.
부디 막바지라도 제대로 잘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