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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Aug 16. 2023

작은 바닷마을 여행

23-01-23

 



남자친구와 집 근처 개천을 따라 걷기로 했다. 이동 중 갑자기 계획에 없던 A로 가자고 한다. 그렇게 기차를 타러 갔다. 열차를 기다리다 우리의 목적지를 지나 위치한, 처음 듣는 역 이름 여러 개가 눈에 띄었다. 그 중 하나를 골라 가보기로 했다. 책을 볼 수 있는 카페 정도만 있으면 된다며 한 곳을 콕 짚었다. A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B에 내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도착한 작은 어촌 마을은 눈이 부시게 고요했으며 적막했다. 입김을 호호 불지 않아도 될 만큼의 적당히 추운 겨울이었다.


예상보다 식당이나 가게가 많다. 명절이라 모두 문을 닫았다. 불 꺼진 찐빵집을 아쉽게 지나며 다음에 꼭 다시 와서 뷔페처럼 하나 하나 들러 먹부림을 부려보겠노라 다짐했다.  


카페에 들어왔다. 바다를 한 눈에 내다 볼 수 있는 2인석 창가자리가 탐이 났지만,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한 빛이 내리쬐었다. 관망할 수 있는 적당한 안쪽 자리에 앉아 책을 펼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명절맞이 대가족 손님들이 우리 바로 뒤에 자리를 잡았다. 조심스레 창가 가까운 어느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점점 큰 단위의 손님들이 많아져 자리도 내어 줄겸 약간의 거리감을 두기 위해 처음 마주했던 그 창가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해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리 거슬릴 정돈 아니었다. 오히려 바다의 윤슬을 바라보기 좋은 때가 되어 좋았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읽고 보고 쓰며 꽤 긴 시간을 보냈다. 지는 해와 함께 찬란히 빛나던 바다의 잔물결도 서서히 잦아 들었다.  


카페를 나와 돌아갈 기차 시간까지 방파제 근처를 걸었다. 늦은 오후가 되니 바닷바람이 쌀쌀하다. 낚시하는 사람들을 슬쩍 들여다 보았다. 어떤 아주머니는 뜰채를 빠뜨려 건지는데 애를 먹고 있고, 팔에 힘을 잔뜩 준 어떤 아저씨는 통통배에 바늘이 걸린 것 같다. 바람 소리에 섞인 갈매기 우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본다. 생각보다 갈매기 끼룩거리는 소리가 작구나. 날이 따뜻해지면 바다를 마주하고 앉아 회 한 접시에 소주 한 잔하면 참 좋을 것 같다며 추운 바람에 종종 걸음으로 돌아간다.


또 다시 기차를 기다리며 노선도를 살폈다. 다음엔 우리 여기, 여기를 가보자고 꽁꽁 언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집으로 가는 기차 안, A역에 기차가 잠시 정차했다. 여름의 계절을 앞둔 어느 더운 날, 이곳 백사장에 돗자리를 깔고 먹던 밀면이 참 맛있었지 하며 소리 죽여 낄낄 웃었다.  


집에 돌아와 으슬해진 몸을 장판 위에서 녹인다. 오늘의 여정을 되감아 본다. 겨울의 한 가운데, 아기자기한 기억의 한 마디를 남겼구나. 또 다시 찾아 올 겨울을 미리 그려본다. 코 끝에 닿는 시린 공기가 좋은 계절, 찬 두 뺨을 톡톡 두들기며 오늘의 작은 바닷 마을의 바람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선 또 계획없는 짧은 여행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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