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노아 Oct 30. 2024

결국은 무능하니까(上)

죄와 벌

나는 철제로 된 교량 위에서 서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칼바람에 살점이 뜯기는 듯 하다. 차가운 바람이 골수 깊숙히 스민다. 심장은 더 이상 두근거리지도 않았다. 나는 조용히 머리속으로 내가 이 교량 위에 서게 된 이유를 되짚었다. 절대적인 무가치감. 그게 이유였다. 그리고 교도소에 십여년간 복역하며 결론내린 결과였다. 나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먹고 살 만큼 가치있는 사람도 아닐 뿐더러, 세상의 그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내려오십시오. 경고했습니다."


다리 밑에서 확성기 소리가 고막을 강타한다. 순간 번쩍하며 정신이 들었다. 철제로 된 구조물에 소방관 둘이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다리 아래에서는 여전히 확성기를 든 여자가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높은 곳에 계속 올라와있어서인지, 정신이 어질어질해 뭐라 말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순간 다리가 비틀거리더니 중심을 잃었다.





지구를 깎아지르듯 선회하는 섬광이 내 망막에 닿는 느낌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흉곽의 펌프가 진홍빛으로 고동한다. 눅진한 액체가 온몸을 타고 기어오른다. 뻐근한 근육의 섬유 하나하나가 움찔댄다.

나는 적당한 밝기의 전등이 들어온 공간에서 일어났다.


"윽"


오른 다리가 쿡쿡 쑤시는 느낌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내려보니 두꺼운 붕대가 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아무래도 교량에서 떨어진 모양이다. 창문에는 창살이 빽빽하게 자리해있다. 아무래도 교도소 내부의 의무실인 모양이다.

나는 침상에서 느적거리며 일어났다. 심장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급하게 박동한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박차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이곳이 의무실이라면 필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터인데, 이곳은 아무 소리 없이 조용했기 때문이다. 아드레날린이 근섬유 한가닥 한가닥에 스민다. 알지못할 위기감이 호랑가시나무 덩쿨처럼 내 모가지를 휘감는 듯 하다.

반쯤 쓰러지듯 비틀대며 불시착한 순백의 커튼 뒤에는 어지러진 책상과 그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같던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나같은 악몽과는 거리가 먼듯한 순백의 가운을 입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저기요..?"


반사적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나를 그리도 혐오할 그녀에게 말을 꺼낸 까닭은 내가 어떠한 방식의 도움이든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지막이 꺼낸 말에, 그녀의 가볍고도 육중한 눈꺼풀이 조금씩 뜨이기 시작했다.


"으음...?"


***


얼마전에 자살소동이 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이 교도소에서 근무하면서 처음 보는 사건이다.

자살소동이라면 몇 번 있었지만, 이번 케이스는 특이한 것이 말 그대로 자살만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때문에 탈옥까지 감행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흥미로웠다.



어제는 그 사건의 주인공이 병실에 들어왔다. 생각보다는 평범한 인상이었다. 말로만 들었을 때에는 '조커'가 연상되는 인간이긴 했다마는, 그의 얼굴에는 그런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는 커녕 평범한 청년같은 인상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여튼, 그가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벌일 인물이라는 사실 외에도 그가 모범수였다는 사실과 12년형을 선고받은 살인자였다는 사실을 전달받았다. 그리고 내가 그의 정신감정사로 배정받게 되었다. 교도관들에 의하면 그는 재판 당시에 제대로 된 정신감정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 나는 그에 대한 무수히 많은 고찰 사이에 헤매이다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


그녀는 잠시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가치한 나에게 오래 두기에는 아까운 시선이었다.


"아아, 혹시 1866번..."


내 죄수번호였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당신의 정신감정을 담당할 것 같아요."


"그렇군요."


교도소에소 오래 일해서일까. 그녀는 살인자를 마주한 사람 치고는 아주 평화로웠다. 나는 침상에 다시 몸을 묻으며, 그녀의 말을 머릿속에서 되새겼다. 정신감정이라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하려던 나에게 이제 정신감정까지 해보겠다는 건가? 내게 남은 정신이라는 것이 남아있기나 할까, 아니, 남아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정신감정..."


내가 힘없이 내뱉었다. 마치 내 생각의 파편이 소리로 흩어진 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차분했다. 얼굴에 그늘 하나 없는 사람처럼, 교도소라는 삭막한 공간에서도 무언가 신성한 것을 간직한 듯 보였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파일을 들추며, 잠시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어떤 이유로 그런 선택을 하셨나요?"


그녀는 부드럽게 물었다. 생각만큼 형식적인 발언은 아니었다.

순간, 나는 무언가 목에 걸린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질문은 나를 과거로 되돌려놓았다. 교도소의 차가운 벽, 지겨운 시간의 흐름, 사람들과의 단절. 모든 것이 나를 절망 속으로 밀어 넣은 이유였다. 하지만 이유를 말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니, 굳이 말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말해봤자, 달라질 것이 있을까?


"이유 같은 건 없어요"


내가 말했다.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그녀는 잠시 내 말을 곱씹는 듯했다. 그리고는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정말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끼셨나요? 아니면,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으려 스스로를 설득하신 건가요?"


그녀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마치 내 안에 감춰져 있던 미세한 진실을 꿰뚫어보려는 듯한 질문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말은 마치 내 안에 아직 기대감이 있다는 걸 전제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린 것이 아니던가? 희망 따위는 나를 배신하고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기대할 건 아무것도 없을지도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무의미할 뿐이야. 모든 것이."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어떤 온기를 느꼈다. 마치 그 침묵이 나의 상처를 쓰다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비난도, 연민도 없었다. 그저 이해하려는, 그리고 받아들이려는 차분한 눈빛이었다.


"만약, 정말 아무 의미가 없다고 느끼신다면, 지금 이 대화도 당신에게는 무의미하겠군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이렇게 내 앞에 앉아있고, 우리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어요. 이 순간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말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생각해본 적이 없는 문제였다. 이 순간이 무의미하냐고?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이 여자의 말에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글쎄요..."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모르겠어요. 하나도."


"그럼 그걸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그녀는 부드럽게 웃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대화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를 의미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그것이 첫걸음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은 마치 내 안의 어두운 감정을 녹여내는 작은 불꽃 같았다. 의미란 무엇일까? 나는 그동안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절망의 틀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답은 보이지 않았다. 의미를 찾는 것은 더 이상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나의 마음에 작은 울림을 남겼다. 무언가, 아주 미약하게나마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내게 시간을 주려는 듯, 다시 조용히 파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침묵 속에서 머리를 기댄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쇠창살 너머로 어렴풋이 새어나오는 희미한 빛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결국 석 달 뒤에 세상에 풀려날 막대한 무가치함을 제거하는 데에 실패했다.


***


그와 독대하기로 한 것은 순전히 내 결정이었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살인자를 독대할 일은 없다. 교도관을 동행하며, 상대를 속박한 채로 취조실과 비슷한 곳에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나는 그에게 공격성이 없음을 확신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를 공격적이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둘이 독대하지 않는다면 그에.대해 자세히 알아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는 예상 그대로의 인간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인간이라는 사실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확실한 것은, 그가 극심한 우울증과 편집증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의 인격은 내가 가졌던 모든 생각을 정면적으로 깨부쉈다. 그의 선량한 인품은 그를 지켜보던 나를 고통스럽게 할 지경이었다.

그는 마치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키는 중간 정도였지만, 늘어진 어깨와 움츠린 자세 때문에 더 작아 보였고,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그는 깡마르고 창백한 얼굴을 가졌는데, 그 피부는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사람처럼 칙칙하고, 혈색이 거의 없었다. 윤기 없는 갈색 머리칼은 헝클어져 그의 이마에 흐트러져 있었고, 그 아래로 깊게 패인 눈동자가 있었다. 그 눈은 마치 끝없는 혼란과 고뇌에 빠져 있는 듯한, 꺼져가는 빛을 품고 있었다.

그의 볼은 홀쭉해져 있었고, 턱은 날카로웠다. 마치 굶주림과 극심한 긴장이 그의 육신을 잠식한 듯 보였다. 입가에는 언제나 무거운 생각에 빠진 사람들 특유의 쓴웃음이 머물러 있었으며, 말할 때도 목소리는 낮고 불안정했다. 손은 늘 떨리고 있었고, 그가 움직일 때면 어떤 결단력보다는 망설임과 불안함이 드러났다. 그의 전체적인 모습은 방탕하지 않으나, 한때 스스로에게 엄격했을 인물이 이제는 모든 신경이 닳아버린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가 어째서 살인범이 된 것인가. 그는 결국 이중인격인 것인가. 그는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었다. 연구원으로써의 나의 호기십을 자극하는 인물이었다.


"반사회적 성향, 망상적 사고, 극단적인 염세주의"


내가 노트에 적어내린 단어들이었다. 정확한 진단이다. 나의 의무는 분명 정신감정에서 끝날 일이었지만, 나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안그래도 교도소측에서부터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진행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었음에 분명했다. 그 말은 즉, 나에겐 그를 볼 기회가 더 있었다는 것이다.


***


오늘의 정신감정은 상당히 이상했다. 10여년 전, 재판 당시에 받았던 정신감정은 밀실에서 진행되었음에 반해, 작금의 감정은 그러하지 않았다. 내가 공격성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10여년간 모범수로 지내온 탓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저 의사와 나 둘 중 하나에 원인이 있음은 분명했다.

나는 정신감정이 끝난 이후에도 감방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일어났던 의무실 침대에 그대로 돌아갔다. 과거에 교도관에게서 죄수들을 위한 정신병원이 존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무래도 그곳으로 이감되는것이 아닐까 했다.

 형량이 거진 다 끝나갈 시점이긴 했지만, 탈옥이라는 중죄를 지은 나는 아무래도 몇 년 정도 형기가 연장될 터였다.

일전에 읽은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처럼, 나는 감방에 썩다 다 늙어서야 나올 수 있으려나.


"그러고 싶진 않은데"


"뭐라고요?"


부스럭거리던 소리가 멈췄다. 그녀가 침상 근처에 있던 모양이다.


"아닙니다. 그냥 혼잣말이었어요."


그제야 그녀는 다시 분주하게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났다.


credit

참고한 작품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

빅토르 위고 - 레 미제라블

루루 - 살인이 아니고 사랑인데요? (ft. $ATSUKI & 백노루양 of 나노말)

DC 코믹스 - 조커와 할리퀸

이우 - 페르소나를 위하여

나노말 - NotNormal

이전 04화 모두에게 사랑받는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