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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노아 Oct 02. 2024

나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여

파리의 노트르담

연인관계에서 헤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최근 나를 가장 괴롭힌 질문이다. 헤어짐이란, 한쪽의 일방적인 통보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양쪽의 합의 아래 이뤄지는 것인가? 나는 이십여 년 동안 전자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리 살아온 연유는, 대부분의 이별이 그러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내 연애사 덕분에 이 명제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되었다.

며칠 전, 하늘에 육중한 눈송이가 잿빛으로 흩날리던 날이었다. 불길하게도 칙칙한 하늘 아래, 달동네는 냉혹한 빛을 발하며 그 모든 것을 고요하게 삼키고 있었다. 그 눈송이는 땅에 닿자마자 축축한 물방울로 변해버렸고, 이곳의 도로는 진흙투성이로 변했다. 그 길 위, 낡고 기울어진 집들이 아무렇게나 늘어서 있었으며, 그 사이로 얽히고설킨 덩굴들은 오래전부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그들의 원래 모습을 감춰버렸다. 이곳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했다. 집들의 벽돌은 금이 가고 부서져, 더 이상 고풍스러움이 아닌, 마치 악몽 속에나 나올 법한 폐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깨진 창문들은 그들의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고, 그 틈새로는 바람이 소름 끼치게 휘몰아쳤다. 도로는 이미 오래전에 포장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흙과 돌멩이들로 덮여 더 이상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희미하게 깜빡이는 가로등 아래에서는 파리들이 윙윙대고 있었고, 그들 곁에는 한때 삶의 잔해였던 쓰레기봉투가 널려 있었다. 이런 암울한 풍경 속에서, 단 하나의 빛은 언덕 꼭대기에 자리한 편의점의 불빛뿐이었다.

나는 그 편의점 앞에서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내가 그녀와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능력이 뛰어났기에, 나 같은 초라한 인간이 그녀에게 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기에, 그녀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을 뿐, 그 당혹스러움은 이내 미소로 바뀌었다.


"좀 더 생각할 시간을 줄게. 다음 주에 다시 이야기하자."


그녀는 내게 입을 맞추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그녀의 반응은 나에게 있어 충격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이별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으며, 그녀는 그저 밝고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미소에는 일말의 슬픔도 없었으며,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만들 만큼 맑고 순수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는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내가 무겁게 느껴지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골목길은 마치 내 내면의 어둠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맞이한 것은, 곰팡이 냄새와 적막이었다. 문은 삐걱거리며 나를 반기듯 열렸고, 그 소리는 마치 오래된 성문의 비명 같았다. 나는 낡은 외투를 벗어던지며 어둠 속으로 몸을 내맡겼다. 전등은 그제서야 불을 밝혔다. 그 빛은 마치 나의 존재를 비웃듯 희미하게 깜빡이며, 나를 괴롭혔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깊은 혐오감에 휩싸였다.
거울 앞에 서서 그 금이 간 유리를 통해 본 것은, 나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하고 혐오스러웠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거울에 주먹을 내리치자,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나의 손을 베었다. 그러나 그 상처에서 느껴지는 고통조차 무뎌져 있었다. 나는 그저 거울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었다.

침대에 몸을 던져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을 때, 꿈에서 나는 한없이 추악한 존재로 변해 있었다. 높다란 첨탑 위에 서 있던 나는, 머리 위를 덮친 검은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 구름은 마치 하늘을 삼킬 듯이 어두웠고, 꿈틀거리며 내 위로 덮쳐왔다. 나는 그 검은 그림자 속에서 하늘이 아닌, 끝없는 심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끝없는 심연은 서서히 첨탑을 타고 기어오르며, 나를 삼키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들려오는 비난의 소리들, 수많은 군중들이 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비난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두려움에 휩싸여 뒤로 물러섰다.

갑작스러운 종소리가 울리며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방은 이상하리만치 밝았고, 나는 낯선 곳에서 잠이 깬 것을 깨달았다. 어젯밤의 어둠은 사라지고, 그녀의 집에 누워 있었다. 그곳의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고, 침대는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나는 잠시 혼란에 빠졌지만, 그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몸을 일으켜, 아무렇지 않게 집을 향해 걸어갔다.

길을 걷던 중, 나는 길가에 서 있던 학생들이 내게 수군거리는 것을 들었다. 그들의 수군거림은 익숙한 것이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내 신경을 자극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낡은 현관을 밀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침대 위에서 또 다른 내가 자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나는 욕실로 도망쳐가 금이 간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거울 속에는 내가 아닌, 그녀가 서 있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는 나조차도 놀라울 만큼 날카로웠다. 내가 놀라며 뒤를 돌아보자, 또 다른 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나의 눈빛에는 깊은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공포에 질려 다시 도망쳤다.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 밤거리로 뛰쳐나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나는 어느새 낯선 곳에 와 있었다.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도망친 거리는 너무도 멀었고, 나는 더 이상 무엇이 나를 쫓아오는지 알 수 없었다. 내 발은 벌겋게 피가 맺혀 있었지만, 나는 그저 무기력하게 앉아 멀리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별을 원한 것은 나였으나, 이제 그녀와 나는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그녀와 헤어질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나와도, 아니 그녀와도 결별할 수 있을까? 나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순간, 뒤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나는 몸이 얼어붙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그것은 나에게 낯설면서도 익숙한 음성이었다. 나는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가 떠올랐다. 그날의 대화는 간단했지만, 그것이 내게 준 충격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그 음성은 마치 사후의 세계에서 울려 퍼지는 망자의 속삭임처럼 나를 두렵게 했다. 나는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고, 어둠에 잠긴 눈동자는 나를 꿰뚫고 있었다. 마치 나의 영혼을 파헤치려는 듯한 그 시선은, 나를 더욱 깊은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무언가 다른 것을, 내가 알지 못했던 무서운 진실을 보았다. 그녀는 변해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그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한 걸음 다가섰다. 나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내 뒤에는 더 이상 길이 없었다. 벽에 다다른 나는, 마치 함정에 빠진 동물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차갑고 무표정한 것이었으며,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존재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저편에서 온 존재처럼 느껴졌다.


"왜 도망치려 해?"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것은 나의 모든 두려움을 무시한 채, 아무렇지 않게 던져졌다.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도망친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나를 쫓아온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그 발걸음은 도리어 나를 더욱 깊은 늪으로 이끌고 있었다.


"제발. 너도 혼란스러울 거 알아. 그래도 진정하고 잠깐만 얘기해 보자. 응?"


그녀는 처량하고도 추악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의 발걸음은 느렸지만, 그 무게는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했다.

나는 두려움에 떨며 그녀에게 말했다.


"제발... 그만해. 나는 더 이상... 너를 감당할 수 없어."


그러나 그녀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내 얼굴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우리는 이미 하나가 되었어. 이제 너도 나를 이해하게 될 거고 나도 널 이해하게 될거야."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죽음의 손길처럼 나의 온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나는 저항할 수 없었다.

그때, 저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나를 놓고 뒤돌아보았다. 경찰관 두 명이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신고한 것이다. 그녀의 손이 조금 느슨해진 틈을 타 나는 또다시 달아났다. 그녀는 멈춰 섰고, 나는 필사적으로 달리며 그녀와의 거리를 벌렸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녀가 경찰들에게 붙잡히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비탄에 젖어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조차도 불길한 기운으로 다가왔다.

몇 시간 후, 나는 한적한 카페의 발코니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내 머릿속은 어제부터 오늘까지 벌어진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별을 고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경험한 신체와 정신의 뒤바뀜은 내 정신을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들었다. 나는 담배연기처럼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다시금 고독 속에 잠겼다. 창밖의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고, 나는 이 순간만큼은 평화를 느꼈다.

그러나 그 적막을 깬 것은 또다시 들려오는 파열음이었다. 아래층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그녀였다. 아니, 나였다. 피로 얼룩진 내 모습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내게 다가왔고, 나는 뒤로 물러설 곳이 없었다. 공포에 사로잡힌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일한 탈출구는 그 창문뿐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뼈가 부서지는 차가운 고통이 밀려왔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스며들었다. 머리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쳤고, 내 시야는 점점 흐려져갔다.

서서히 닫히는 눈 너머로, 그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 이렇게 끝나는구나."



『유명 연예인 A 씨, 충격적인 추락사. 막장 팬덤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날의 헤드라인이었다.






간단한 설명

한국에서 노트르담의 꼽추로 잘 알려진 『파리의 노트르담』의 캐릭터를 모티브로 창작한 단편소설입니다.

주인공은 콰지모도와 프롤로에서, 주인공의 애인은 에스메랄다의 콘셉트를 차용하였습니다.

원작에서는 프롤로 위주의 스토리가 진행되지만, 콰지모도가 다양한 2차 창작물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큼,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인 콰지모도를 주인공을 설정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파리의 노트르담을 읽을 때마다, 에스메랄다는 불쌍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당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지만, 모순적이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인물이기 때문이죠. 프롤로는 신부로써의 위상을 에스메랄다의 사랑과 바꿀 수 없었기에, 그녀를 감금하고, 끝끝내 목매달아 죽이게 됩니다. 페뷔스 역시 에스메랄다를 끔찍이도 사랑했지만, 그는 그의 사촌이자 약혼녀였던 플뢰르 드 리스가 있었고, 그녀는 페뷔스에게 자산을 향한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에스메랄다를 살해할 것을 지시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콰지모도는, 우연한 계기로 에스메랄다를 만나며 사랑에 빠지지만, 그의 괴물 같은 생김새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고, 심지어 몇몇에게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기도 하죠. 결론적으로 에스메랄다와 엮인 인물들은 모두 불행한 결말을 맞고, 심지어 에스메랄다마저 사망하죠. 그녀는 작중 내내 불행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죠. 그렇기에, 저는 이 작품에서 에스메랄다를 언제나 긍정적인 인물로 설정하였습니다. 원작과 가장 모순된 부분이죠. 그리고 그녀는 만인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은 변치 않으나, 그 누구도 그녀를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설정한 인물은 콰지모도처럼 괴물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능력, 외모, 재력, 열정. 이 중 가진 것이 단 하나도 없는, 인간 이하로 여겨지는 현대판 괴물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모든 것을 파괴합니다. 초반부의 거울부터, 스스로의 정신, 신체, 그리고 사랑하던 애인의 신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살해하기도 합니다.

이 단편의 주제는, '권력을 얻은 인간은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가'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처음엔 아무것도 없는 불행한 인간입니다. 하지만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애인에게 사랑을 받고 있죠. 그런 그는 우연히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그녀가 됩니다. 양심밖에 가진 것이 없던 사람이 모든 걸 얻게 된 것이죠. 그런 그는 자기 자신이었던 그녀에게 끔찍한 혐오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뿌리치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하죠. 모든 걸 얻었지만 양심은 잃은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자기혐오로는 설명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결국 에스메랄다는 여기서도 불행했군요.

그리고 사랑할 때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남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죠. 자신을 혐오하는 상태에서의 사랑은 그저 어줍잖은 사랑놀이 - 내지는 사랑에 목마른 자의 발버둥일 뿐이죠. 누군가를 사랑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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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텍스트

빅토르 위고 - 파리의 노트르담

장은진 -날짜 없음

윤마치(MRCH) -나쁜 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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