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완벽한 타인이다!?

by 빛의투영

" 착각들 하지 내가 낳았다고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야. 거쳐서 왔을 뿐 독립된 인격체야. 타인이다. 이 말이야."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아동학대를 한 부모에게 하는 말이다.


쳇지피티에게 '자식은 완전한 타인이다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질문을 해봤다.


"자식은 완벽한 타인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깊은 정서적 유대감에도 불구하고, 자식은 부모와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 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부모가 자식을 소유하거나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해요.

주요 이유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식은 독자적인 인격체다.

아이는 부모의 가치관, 성격, 꿈을 그대로 이어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사고, 감정, 선택권을 가진 존재입니다. 자식에게도 부모와는 다른 삶의 방향과 욕구가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타인으로 볼 필요가

있어요.


2.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인정하기 위해

부모는 자식에게 기대를 걸게 되지만, 자식이 그 기대에 부합하지 않을 때 실망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많습니다. 자식을 '타인'이라 고 인정하면, 기대를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의 자녀를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3. 심리적 독립적 건강한 관계를 위해

자식을 타인으로 인정하면, 과도한 간섭이나 통제를 피하고, 더 성숙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요.

이는 자녀의 자율성과 자존감을 키우는 데도 긍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4. 사랑과 소유의 차이를 구분하기 위해

사랑한다고 해서 자식이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사랑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지지하고 지켜보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타인'이라는 인식은 경계를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표현은 부모가 자식을 냉정하게 대하라는 말이 아니라, 건강한 거리감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사랑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입니다.


이 말을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 간다. 작은 일 하나에도 감사하게 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상담이라는 걸 하게 되면 무심코 내 생각을 맞는 말처럼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늘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번에 지인이 나를 한계치까지 끌고 가는 일이 생겼다.

나는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같이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고민을 잘 들어주려고 노력을 해봤다.

얼마나 힘이 들면 거의 1년 동안 연락을 안 하고 지냈는데 연락을 했을까 싶었다.


사람의 소중함을 잘 알기에 웬만하면 거리를 잘 두지 않는데 만나면 좀 불편했던 것 같다.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야 되는 것이 힘들었고 알아 들었다고 생각했을 때

"네가 그리 생각한다면 그런 거겠지? 하지만 나는 말이야.."

자기 회피성 변명에 거리를 좁히지 못했었다.


자식을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 가?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기주장이 시작될 때는 뭐든 하는 것이 귀여워서 잘 지켜봐 주고 안다 치게

보호하고 있었으면서 스스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나이가 되었는데 부모의 생각 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

한다는 게 너무 답답하다.

"잘해 오다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나에게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고 내게 던져진 말

"너도 나처럼 아이들을 위해서 공부도 많이 하고 뭔가를 많이 배웠잖아. 그런데 너는 어떻게 아이를 그렇게 포기할 수 있었던 거야?"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종료 버튼을 누를 뻔했다.

부모는 한순간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닐 텐데.

각자의 아이를 대하는 아니 사랑하는 방식이 다른 것뿐이지 어떻게 포기라는 단어가 쉽게 나오는 것일까?


아이가 즐거워하고, 하고 싶어 하는 자기만의 재능을 찾아 봐주고 알아 봐주는 역할을 나는 충실히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고 아직도 노력 중이다.

꼭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의 능력껏 습득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배운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생기면 스스로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한다. 큰 아이에게 학교 수업시간에 집중에서 열심히 듣고 참여하고 즐기라고 자주 말해 줬었다.


큰 아이 중학교 2학년 때 일이 생각났다.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oo이 담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oo이가 방과 후 보충 수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어머니께서도 알고 계신가요?

"네. 알고 있습니다.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하지 말라고 했는데요."

"oo이 조금만 노력하면 성적이 좋아질 것 같은데 왜 그러 셨나요?" 기가 막힌다는 듯한 말투였다.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굳이 학교 교실에 앉아 있다고 공부가 잘 될까요?"

"다른 아이들도 다 하는데 안 하는 사람이 생기면.." 말끝을 흐리는 걸 보면 면학분위기 조성이 깨진다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조용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또박또박 말해줬다.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가고 싶은 학교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이의 시간은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내는데 오래 학교에 있다고 해서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배고 싶은 곳에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르고 포기한 듯한 말투로 "알겠습니다. 어머니"

나는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로로 책임지는 멋진 어른이 되어 주길 바란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한들 그건 부모의 것이 아니다.

자식은 부모의 트로피가 아니다. 자식은 부모를 보고 알게 모르게 그 부모를 닮아 간다.

그저 최선을 다해서 오늘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좋은 교과서가 되어 줄 것이다.


자식만 보고 산 사람들을 종종 대할 때면 내 미래가 아니었으면 한다.

품 안의 자식들이 떠나고 나면 자기를 돌보아 줄 거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지를 어떻게 키웠는데?' 서운함을 토해 낼 때면 안쓰럽게 느껴진다. 남은 시간 자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삶. 무기력함에 우울증이 온다고 했다.

치유농업사 교육 과정 중에 사회복지, 상담 이런 분야들도 있는데 고령화 문제, 청소년 문제 등 여러 문제를

접 할 때마다 나는 잘하고 있구나 느낀다. 자식을 키워 낸다는 큰 인내와 노고가 필요한 일이다.

그와 동시에 자기도 잘 성장시켜야 한다. 노후를 준비하고 취미를 가지고 즐겁게 사는 것.


지인이 처해 있는 문제를 함부로 이야기할 수가 없지만 답답한 마음을 글로 적어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이다. 언제든 전화를 하라고 했지만 답답함에 또 화가 나겠지만 말이다. 가족 상담을 받아 보라고 권했다. 아는 지인을 통해 상담센터 전화번호도 알려줬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자식을 향한 내 사랑이 집착이 아니길 바라는 나를 만나러 와줘서 고마워.

내가 낳았더라도 내 자식의 속 마음은 다 알 수는 없는 거잖아.

그저 행복해지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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