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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는 말이 아니라 경험이다.

by 한희정 Mar 24. 2025

큰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의 일이다. 유치원을 다녀와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말한다.    

 

“오늘 선생님한테 혼났어.”

“(혼났다고?) 선생님 말 잘 들어야지.”     


짧게 대답하고 더 묻지 않았다. 괜히 심각하게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도 더 이상 설명하거나 말하지 않았다. 다음날 유치원에서 돌아와 어제와 같은 말을 한다.  

   

“선생님한테 혼났어.”

“찬영아,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니까, 뭣 때문에 혼....(났냐고 물으려다), 근데 찬영아, 선생님이 어떻게 하실 때 혼났다는 느낌이 들어? “

”선생님이, ‘김찬영~~!! “이라고 할 때”    

 

그게 다라고? 주의 줄 때 하는 호명이었다. 그러나 아이 입장에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혼났어”였나 보다. 나에게 ’ 혼났다 ‘는 하지 말라고 한 행동을 반복적으로 해서 크게 꾸지람을 듣는 거였다. 그러니 아이가 혼났다고 표현했을 때 나의 “혼났다”라는 경험과 이미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거다. 아이와 “혼났다”라는 말로 대화를 하는 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각자의 경험에서 내린 단어의 정의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난 내 경험에 빗대서, ’도대체 얼마나 잘못했길래 애를 혼냈다는 거야.‘ 그리고 이 아들은 ’하지 말라면 하지 말지 뭔 말썽을 부린 거야?‘라고 혼자 생각하며 잔소리를 장전하고 쐈다면, 주의를 받았을 뿐인 아들에게 내 기억을 심어주게 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말이란, 사전적 의미만이 아니라 그 단어, 말속에 각자의 기억과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단어의 정의가 달랐던 기억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식탁에 앉아서 남편이 큰아이를 등에 태우고 말타기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한참을 지켜보다 내가 한마디 던진다.     


“우리 너무 대화가 없는 거 아니야?”

“대화가 왜 없어.”

“아니 우리가 언제 대화를 했다는 거야?”

“계속하고 있잖아.”   

  

’ 뭐라고? 장난해?‘라는 생각과 함께 큰아이의 ”혼났다 “ 가 생각났다. 

그래서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오빠는 대화가 뭐라고 생각해? “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 대화지. “

”오빠, 나는 단 5분이라도 서로 마주 보고 앉아서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걸 대화했다고 생각해. “  

   

그날 이후 대화가 있네, 없네로 더 이상 언쟁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쓴 단어는 ’ 대화‘라는 단어였지만 서로 정의가 다르기에 일어나는 마찰이었다는 걸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나는 누군가와 대화가 매끄럽지 않고 소통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면, 단어나 말에 대한 상대방의 생각이나 의미를 물어본다.     


그리고 가끔은 상대방의 기준과 나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체크하기도 한다. 

한 번은 친한 언니와 함께 식사를 하러 가는데 나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언니가 길을 안다고 해서 내비게이션도 켜지 않고 출발했다.    

 

”언니 얼마나 걸려요? “

”가까워. “

”언니한테 가까운 건 어느 정도 거리를 말하는 거예요? “

”차로 15분?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

”그렇구나, 난 10분 정도를 가깝다고 하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도 나랑 같은 기준, 같은 의미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 더 믿는 경향이 있다. 살아온 환경과 과정에 따라 우리 모두 해결하고 대처하는 방법들이 다양하고 다른데 말이다.     


단어가 아닌 경험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소소한 다툼이나 오해들이 줄어든다. 아이에게도 정확하게 나의 의도를 설명하거나 전달하게 된다.. 


이런 나를 보고 피곤하게 산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난 이것이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받으며 대화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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