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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메루 Nov 20. 2022

버킷리스트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버킷리스트의 뜻이다. 동명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괴팍한 성격 탓에 주변에 아무도 없는 자수성가한 백만장자와 가난하지만 한평생 가정을 위해 헌신한 정비사가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삶에 맞닥치자 의기투합해서 자신들의 버킷리스트를 이루어 가는 이야기.

죽음 앞에서는 돈이 많건 적건 모두 평등하다. 삶도 잘 모르는데 죽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산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라.


대학교 과 커플인 우리는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다. 옆지기는 대학원생이고 나는 직장에 다녔다. 갓 태어난 아들은 시어머님이 봐주셨다. 그날은 어머님이 시누이 산후 뒤바라지로 집에 안 계셨다.


“자기야, 나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너무 힘들어 죽을 거 같아”


갑자기 걸려온 전화 너머 목소리가 떨렸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 바로 집에 가서 동네병원에 갔다. 내과의사는 차분히 말했다.


“잘 들으세요, 곧바로 나가서 택시 잡아타고 세브란스 응급실로 가세요”


우리는 의사가 하라는 대로 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담당의사가 와서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워주었다. 옆지기는 부정맥이었다.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엄청 빨리 뛰어서 정상 맥으로 돌려놓으려면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 했다. 다음날 시술을 했다. 옛날이면 개복수술을 해야 하지만 요새는 기술이 발전해 대퇴부 대동맥에 선을 넣어서 한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알기 쉽게 옆지기의 상태를 설명해주었다.


“부정맥은 말하자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거예요. 심장은 중앙에서 신호를 보내면 일정하게 뛰어야 하는데 지방방송이 자기 마음대로 신호를 보내서 심장이 헛갈리게 해요. 그래서 지방방송을 찾아내서 그걸 없애주는 시술이에요. 시술하고 다음날 퇴원하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처음 겪는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마치 남의 일 같았다. 심장을 정상적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전기 충격기를 이용했다. 부분 마취를 해서 대퇴부에 전기선이 들어오는 그 느낌까지 옆지기는 생생히 기억했다.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시술을 하더라 했다. 다행히 퇴원하고 바로 정상생활에 복귀하는 듯했다. 그런데 모두 제거해야 할 지방방송이 아직 남아있었다. 


일 년 후 학회 참석하러 중국에 갔다가 또다시 발병하고 말았다. 이번엔 지난번처럼 급성이 아니라 좀처럼 증상을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심장이 제멋대로 뛰어 119를 타고 병원에 가면 정상 맥이었다. 여러 번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본인은 힘든데 정작 문제의 핵심을 찾을 수 없었다. 만성되어갔다. 점점 힘들어했다. 


온종일 심전도를 기록하는 ‘홀터’를 달았다. 또 한 번 시술을 했다. 심장은 정상이 되었지만 그동안 겪은 마음고생 때문에 공황장애가 생겼다.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못 나갔다. 시어머님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해서 어머님도 꼼짝 못 하게 했다. 퉁퉁했던 살집은 점점 사라졌다. 먹지를 못하니 말라갔다. 위와 심장은 연결되어 있어 음식을 먹으면 심장이 더 부담스러워했다. 힘든 시간이었다. 의지가 강한 사람이라 반드시 극복해낼 거라 믿었다. 그 당시에는 공황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다행히 좋은 주치의를 만나서 거의 완치되었다.


옆지기는 큰일을 겪은 후 인생관이 바뀐 듯했다. 소심해진 옆지기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표현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금은 잠시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거다. 저 앞에는 찬란한 태양이 빛나고 있다. 옆지기에게 닥친 일이 꼭 내 잘못 같았다. 나랑 만나지 말아야 했는데 그랬나. 결혼 후 벌어진 일이라 한참 동안 자책감에 시달렸다. 고모님도 똑같은 병명으로 입원하신 후 가족력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옆지기가 다행히 자리를 잡고 직장 생활을 잘해 나갔다. 한 동안은 비행기 타고 출장 가는 것을 엄청 힘들어했다.  또 조그만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아도 심장이 빨리 뛴다면서 드러누웠다.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잘 버텼다. 친한 친구가 순환기 내과 전문의로 있어서 의사 소견을 들어보려 진찰을 받았다. 심장에서 피가 많이 새기는 하지만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또 이 정도로 빨리 뛰는 것으로 죽지는 않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인생은 참 만만하지 않다. 그래서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기에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 매일매일 별 탈 없이 무사히 지나가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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