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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밍 Oct 06. 2023

남들을 이해하는 그 시선으로

‘쫌 이상한 사람들’ by 미켈 탕코

앞서 정리한 모든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나의 육아일 테지만 이미 너무 길어진 듯하여 일단은 여기에서 자를까 한다.

나에게 주어졌던 가족과 내가 만들어낸 가족.

나의 아빠와 나의 남편은 상당히 닮아 있고, 나는 여기에서 나의 엄마 같지 않고자 무던히 애를 쓴 것 같다.

이건 진짜 아니야. 내 아이는 행복해야 해.

부모님의 모습이 나오는 것도, 반대인 모습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모두 부모님의 영향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지나치면 강박.


결혼 생활의 초반에는 연애를 안 해봐서, 몰라서 그렇겠지 생각하며 나 혼자 많이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년 간 생일도 혼자 챙기고(심지어 우리는 생일이 8일 차이), 같이 즐길 거리를 찾고(그는 마지못해...), 애 같아도(결혼하고 여유가 생기니 더 마음 놓고 키덜트) 나름 귀여워하며 지냈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거나, 남편이 게임을 좋아하는 거나 똑같은 덕후인 건데 사회의 가치로 좋고 나쁨이 정해지는 거라고 이해하고자 하며...

어쩌다 보니 나는 같이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는 혼자 하는 것을 좋아해서 마음이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취향의 차이려니 했다.

원하는 것을 못 하거나 뭐든 뜻대로 안 되면 굉장히 화를 내고 못 참았지만 욱하는구나... 학창 시절 공부를 안 해본 것=참을성이 부족한 건가? 이런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말이 안 통하는 것! 지금 생각하면 진짜 소모적인 논쟁을 많이 했고, 내 의도가 전달이 안 되고 이상한 단어나 문장에 꽂혀서 말꼬투리를 잡히는 건 좀 환장하는 느낌이었다.


그와 함께 살며 나의 가설은 자기애성 성격장애(나르시시트), ADHD, 완전체남편,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를 돌아 아스퍼거로 왔다.

욕하느라 갖다 붙인 것이 아니라 나부터도 이상심리학을 배우고 임상심리사 수련을 받았고, 나와 아들을 맡으셨던 상담샘, 임상심리사, 발달센터 센터장... 이런 분들과 케이스 스터디하듯 나누고 남편에게도 순화해서 공유를 했다.

그도 아스퍼거의 대화 패턴을 보고는 다른 거 안 봐도 자기 맞다며 이걸로 하겠(?)다고 했다가 자폐 스펙트럼이란 말을 보고는 자폐는 어감이 너무 안 좋아서 아니라며... (브런치에는 자기를 모르는 사람들이니 써도 된다고 허락받았다.)


사람에게 라벨링을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하지만, 진단의 장점은 분명했다.


순식간에 그간 도통 이해가 안 가던,


비극적인 사고 뉴스를 보며 재밌다고 표현하며 웃었던 그의 모습...

아이처럼 자기중심적이라 모든 걸 자기 위주로 생각하던 모습(자기가 배가 안 고프면 애들 먹을 걸 줄 생각을 안 한다거나, 자기가 휴가 내면 우리도 당연히 쉬는 줄 착각한다거나)...

대화만 하면 답답해 죽을 것 같은데 오히려 말이 안 통한다고 공격당하는.. 그렇지만 카톡으로 남기면 훨씬 나아서 할 말 있음 참아뒀다 출퇴근 사이 카톡으로 남기던 거...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하면 안 되는, 이런 류의 민감한 농담을 던지고 웃자고 말한 건데 죽자고 덤빈다고 하던 거...

내로남불에 모순이 너무 심했던 이상하게 우기던 말들...

아무튼 주로 감정, 소통과 관련해서 싸하던 것들이 싹 다 해결이 되었다.

어차피 이미 경험적으로 이 사람은 인지 왜곡(으로 보였었는데 그냥 사고가 다른 거겠네)이 심하고 공감능력과 타인 조망 수용 능력은 기능이 떨어진다고 봐야 하며(장애가 있다고 종사자들도 느끼는 수준) 깊은 대화가 불가하니 그냥 소통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최대한 덜 부딪히라는 그 솔루션이 맞음을 검증한 순간이었다.

더 힘들었던 것은 이 모든 것이 나! 배우자! 가족! 에게만..이라는 점. (욱하고 화내는 것 포함)

사회화가 잘 된 이 분은 그렇게 우리에게 카산드라 증후군(주로 이런 류의 아내들이 나를 알아달라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우울 등을 겪게 된다는)을 선물했었다.


아이들부터가 어른들이 아빠를 칭찬하면(밖에서는 너무나도 훌륭) "우리 아빠는요, 누구 있으면 친절하고 가족끼리 있으면 맨날 화만 내고 혼내요."라고 했지만 아무도 안 믿었다는...

이쯤에서 오늘의 그림책을 소개한다.

이 책에는 다양한 이상한 사람들이 나온다. 개미를 밟지 않기 위해 온 에너지를 쏟으며 살금살금 걷는 사람, 문신에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소외되는 강아지가 눈에 밟혀 챙겨주는 아저씨, 아무도 없지만 신나게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상대 팀이 이겼는데 환호하는 사람, 점잖게 차려입고 지나가는 아이에게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 웃겨주는 사람... 하나같이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다.

나는 그림책으로 내담자들을 만나는 독서 심리상담사다. 내 내담자들의 갖은 사연들을 듣다 보면 이 그림책을 아주 따스운 마음으로 들고 가게 된다.

그런데 내 남편에게는? 그런 시각으로 비교적 바라보는 편이기는 하지만 내가 내담자들에게 하는 말과 모순된 언행을 보일 때가 분명 있다.


대학원에서 이상심리학을 배울 때 과제가 각각의 진단에 해당하는 면을 내 안에서 찾아 페이퍼를 매 시간 내는 것이었다. 정도의 차이이지, 우리 모두는 어딘가 이상하다. 남들과 다른 점이 있고, 성숙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며, 그래서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요즘 많이 시행하고 해석해주고 있는 TCI 기질성격검사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 사람은 각각 타고난 기질이 다른데, 그 기질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 기질에 맞게, 그러나 성숙한 모습으로 기질의 단점을 보완하며 살 수 있도록 지지해 주자는 입장.

만약 남편이 나의 내담자, 혹은 내담자의 배우자였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스퍼거가 맞다면 많이 노력하고 계시네요.


흔히들 하는 그 농담과 결이 닿아 있다.

모자란 큰아들이 돈도 벌어오고 기특하지 않냐고...

여전히 집에 오면 부모의 역할을 함께 질 생각보다 널브러져 쉬거나 취미의 세계로 빠지려는 그를 보며...

그래, 오늘도 가면을 쓰고 애쓰며 사회 생활하고 오느라 고생했노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만난 걸 보니 정말 운이 더럽게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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