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나는 남편을 날티 난다고 봤고, 남편은 나를 까칠하다고 봤다. 그런데 월화수목금토일 교회를 가다 보니 매일 보게 되었고, 나는 논문이 자꾸 엎어져 시간이 많았고 남편은 일을 그만두고 카페 알바를 하기 시작해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나고 우리는 정이 들어 사귀게 되었다. 남편은 그 연애하기 좋은 여초집단에서 모쏠이던 신기한 사람이었어서 특이한 점이 많았지만 몰라서 그러려니 했다. 나도 뭐 그리 연애를 많이 해보거나 익숙하진 않았으니. 그리고 매일 교회를 나가다 보니 단 둘이 데이트를 하거나 여행을 가거나 할 일이 거의 없었다. 진짜 홀리한 교제였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1년도 안 만나고 결혼을 하게 된다. 내가 주로 1년을 고비로 남자 친구들과 헤어지거나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볼 때 사계절을 겪어 봐야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은 진리였는데... 엄마가 퇴직을 하시며 집을 통제하기 시작하셨고(엄마는 딱교장선생님) 언니가 바로 도망쳤다. 결혼으로...
자연스레그 간섭과 통제는 나에게 온전히 내려왔고 석사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자마자 나도 도망쳤다. 엄마는 원래 여자나이 서른 넘으면 노처녀라고 선을 보게 하시려다 남자 친구 있음을 처음 밝히니 신상을 묻더니 결혼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소위 말하는 배경 차이가 많이 난다). 그런데 시어머님이 서울 올라오실 일이 있어 같이 만나고는 마음에 든다고 여자 친구 있을 때 빨리 결혼하라고, 남편 반지하 원룸 전세 만기이니 신혼집 얻어서 이사하면 돈 아끼지 않겠냐고 훅 들어오셨다. 나는 모르겠는데 남편은 나랑 결혼해서 사는 게 그려진다고 했다. 한 명이라도 확신이 있으면 맞나 보다~ 생각했다.
우리 집은 내놓은 자식으로 키웠다 보니 강하게 반대는 못하고 "너 외국 좋아하니까 외국인은 어떠니.." 정도의 반대?
남편은 부모님 뿐만 아니라 모두가 반대하던 사람이었다. 같은 교회 청년부이고 남편이 먼저 다녔는데 청년부 목사님도 반대했다. 남편은 교회가 조건을 따지냐며 분노했지만 생각해 보면 목사님은 성격을 보고 딸이면 말리겠다고 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당시 속물 알레르기가 있던 나는 반대할수록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차피 대학교 동기들도 대기업 가서 부품처럼 사는데, 이 남자는 전문대 나왔지만 자기 일(게임?!)을 좋아하는데 뭐라도 좋아하는 사람은 못 이기지 않겠냐고(에휴).
나는 29살에 결혼했고, 대학 동기들 중에는 1번이었으며 서울 토박이임에도 원래 결혼은 다 경기도 주공 아파트 전세로 하는 거지...라고 별 생각도 계산도 없었던 것 같다. 이때는 정말 싫어했던 그런 류의 책에 나오던 '30대에 속물이면 40대에 순수하게 살 수 있고, 30대에 순수하면 40대에 속물이 된다'는 것을 이때의 나를 만난다면 전해주고 싶네. 검증은커녕 파악도 덜 된 미지의 남자와 나는 이렇게 덜컥 결혼하고 서른을 맞는다.
그리하여나의 30대는 새롭고 거대한 빌런과 함께 시작된다. 나름 원가족에 대한 상처가 큰 만큼 내가 꾸려나갈 가정에 대한 기대도 컸을 텐데... 빌런도 나름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일 테니 남편을 탓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고민하지 못하고 결혼을 했던 것이 문제이지 싶다. 그래도 선택을 후회하기보다는 선택한 길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고자 노력하는 편이어서 괜찮다고 합리화를 했었다. 사실 원가족에서 도망치는 느낌이어서 어디로든 탈출하면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성격도 성향도 취향도 이렇게 안 맞는데 그렇게 무난하게 결혼한 걸 보면 이것도 인연이긴 할 테지. 결혼 준비할 때는 그다지 내 기호랄 것도 없었고, 세상 물정에 밝지 않다 보니 욕심도 없었다. 연애 때는 서로의 안전한 공간이 있다 보니 볼 꼴만 보여줄 수 있었고 만난 기간도 길지 않다 보니(워낙단둘이 있었던 시간도 적었다. 교회의 자녀들이었어서...) 그다지 싸울 일이 없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사람 밑바닥(화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좀 보고 결혼하라는 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그렇게 파보고 결혼해도 양파 껍질 벗겨지듯 계속 새로운 사람을 발견하는 게 결혼생활이겠지만.
부부에 대한 책을 고르라면 이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함께여서 쉽고, 또 함께여서 어려운 부부... 같은 창문으로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자꾸 잊게 되는...
가족에게서 받는 영향이 일방적이었다면, 부부는 쌍방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맞는 거 같다. 그러다 보니 참, 맞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은.... (앞으로 남편 파트를 읽을 때 오해가 없도록 미리 밝히자면 이 분은 아스퍼거일 확률이 상당하다)
서로 성향이 다르다 보니 치열함이라고는 없는 남편이 주로 내 기준에 차지는 않았지만, 물 흐르듯 사는 남편의 삶에서도 배울 점은 많았다. 원가족에서 생존하기 위해 너무나도 치열하게 노력하는 삶을 배웠다면, 남편과의 가정에서는 하고 싶은 걸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받는 듯하였으나 ㅎㅎ 가정이라는 팀에서 한 명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걱정 없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한 명이 그만큼의 의무와 걱정을 등에 업고 백업을 해줘야 하는 것도 같고...
신혼 때부터 힘든 점도 많았지만 뭐 그냥 다 이렇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시간이 나면 게임, 프라모델, 레고... 내 자리라곤 1도 없는 취미 만을 하고 싶어 할 때도...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 락페, 공연, 여행 등등을 같이 가자고 구걸하고 있을 때도 세상이 취미도 좋은 것/나쁜 것 나누고 있을 뿐... 따지고 보면 남편은 혼자 하는 취미파, 나는 함께 하는 취미파.. 그저 다른 거라고 괜찮다고 마음을 달랬다.
나는 선물 주는 걸 좋아했는데 정말 생일이니 크리스마스니 받기만 하고 줄 생각은 하지도 않아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주겠지~ 생각했다. 거짓말을 하고 네가 이렇게 싫어할 테니 너를 배려해서 말 안 한 거라며 화를 내도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넘어갔던 거 같다. 정말 아이를 낳기 전에는 힘든 상대이긴 했으나 큰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그런데 왜 첫 명절에 대판 싸우고 친구집 가서 잤니?).
주변에서 나에게 대단하다고, 해탈에 이르렀다고 하긴 했다. 나도 약간은 우쭐해서 자기중심적인 남편과 잘 사는 법 강의를 하겠다고 농을 던지곤 했던 거 같다. 그런데 빌런이 이렇게 쉽게 해결되고, 해탈이 그렇게 쉽게 일어난다면 그건 뭔가 본게임 전 연습게임이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봤어야 했다. 어쨌건 계속 내 목소리를 못 내던 원가족과는 달리 싸울 일이 있으면 싸울 수 있었고 나에 대해서도 더 알게 되었으니 성장의 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남편의 자기중심적인 면도 적당히 보듬으며 갈 여유가 있었고 내면의 평화를 지킬 수 있었다. 이제 한 단계, 도약이다! 이 모든 판은 출산과 함께 다시 엎어진다.
사랑이라기보다 인류애가 있다고 주장해 왔었는데 그냥 나는 모험심이 있는 것 같다. 너무 쉬운 과제보다 어려운 과제를 해내고 싶어 하는? 이게 인간에 대해 도전 정신을 발휘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바꾸겠다는 의미일 것이고 그것은 매우 폭력적이고 그릇된 시각임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