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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밍 Oct 03. 2023

이제는 즐길 수 있을까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by 맥 바넷/존 클라센

모든 것에서 의미를 찾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문화생활에 빠져 있을 때도 '오락'의 기능은 전혀 없었다. 예술영화를 보며 인생을 탐구하고, 인디음악을 들으며 유행가는 사랑 노래 천지라고... 삶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데 참 상업적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혹은 생즉고이나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 위해서 경주마처럼 달려오다 쉼표를 찍으며 '여유'라는 가치에 대해 생각을 해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의 미국 생활은 가치가 있었다고 본다. (의미를 찾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기술하며 또 의미를 찾았다.)


미국에서 돌아온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러려면 대학원을 가야 했다. 그래서 취직하라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등록금 알아서 한다고 큰소리치고(대학원은 다 장학금 나오는 줄 알았다) 동대학교 일반대학원에 진학을 한다. 한동안 살면서 가장 후회했던 선택 중 하나였다(한동안이라니 이다음 후회는 무엇일까요?).


일반대학원은 나에게는 감옥이었다. 강점 검사를 해도 호기심이 1위, 학구열이 2위가 나오는지라....(이 둘은 매우 결이 다르다... 호기심이 더 많으면 한 우물만 깊이 파기가 힘든 듯) 정해진 공부만 허용되는 분위기가 일단 너무 힘들었다. 소설책 한 권 읽을 시간이 없는 삶이라니... 처음에 대학원을 간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은 내가 문화예술 분야로 가는 줄 알았을 정도로 문화생활을 좋아했었는데 진짜 주말도 없이(교수님이 입학 때 말씀하셨다. 너네는 연구자고 공부가 직업이야. 맨날 야근이었지...)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학문을 한다는 것이 정말 안 맞았다.


평소 황희 정승 스타일로,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는구나 정신이 탑재되어 있다 보니 서로 다른 의견이 각각 다 이해가 가고 그럴 수 있겠다 싶은데 그걸 몇 시간씩 논쟁을 하고 토론을 하는 것이, 그래도 답은 나올 수 없는 문제다 보니 제자리인 것이 너무 소모적으로 느껴졌고 무엇을 위해 날을 세워야 하나 싶었다. 쓰다 보니 변명이 길다. 그냥 나는 또 부적응했다. 그래서 모두가 당연히 이어가던 박사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다들 죽자고 공부하는데 생각해 보면 에너지가 분산되는 나는 우수한 학생이 될 수 없었고 심지어 이때 착하지만 심심한 연애를 정리하고 휘둘리는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처럼 조교나 장학금의 기회가 많지는 않아서 알바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논문도 쉽지가 않았다. 석사인데... 논문 주제가 자꾸 엎어져 논문을 무려 세 학기 동안 썼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는데 저 때는 내가 세상 루저가 된 것 같았다. 실패자. 그렇게 이별도 겹치며 멘털이 바스러진 나는 독서치료와 교회로 도망친다.


여기서 내 신앙 스토리를 잠깐 풀자면 아버지가 불교대학까지 다녔을 정도의 불교 집안에서 나 혼자 기독교라(엄마가 우리 3남매를 선교원에 보냈었는데 나만 교회가 좋아서 남았다) 교회를 다니다가 뭐 좀만 잘못하면 할머니가 교회 못 가게 해서 못 가다가를 반복한 마음만 크리스천이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는 술 마시고 싶은데 맘이 불편해 개종해 보겠다고 성당에 가본 적도 있으나 나에겐 교회가 맞다고 느껴졌다. 대학생 때 교회에 다니고 싶어 몇 군데 가봤는데 적응이 쉽지 않았고, 그러다 빠져있던 봉사단체가 일요일에 활동을 했어서 안 다녔었다. 그렇게 밑바닥이라 생각할 때 간 교회에서 나는 화르르 불타올랐고 40일 새벽기도를 하려고 엄마와 싸워가며 교회에서 자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나란 사람 왜 이리 극단적인가). 사이비 종교에 안 빠진 것만으로도 진짜 보호하심이다.


그리고 사람이 궁지에 몰렸을 때 중요한 선택을 하면 안 되는 건데, 나는 교회에서 만난 모태솔로 오빠와 곧 결혼을 한다. 이제 내 인생 수난기 2부, 새로운 빌런 편이 시작될 터.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논문으로 멘털이 바스러지며 바닥을 찍던 나는 나의 문제를 배워보고 싶어서 독서치료를 배운다. 그렇게 2년짜리 학회 수업으로 심리학을 배운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원가족과는 다르게 빌런과 싸우며 같이 성장한다.

기대하시라. 나의 ing 빌런이자 심리학적으로는 나의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뮤즈, 그분이 곧 등장한다.

그리고 삶의 축이, 의미보다는 재미로 기울어진다. 너무 재미없고 힘든 시간을 지나며 얻게 된 방향 전환이다.

벌써 여기에서 이 그림책이 등장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월요일 샘과 데이브가 함께 삽질을 하는 이 그림책을 꺼내 본다.

우리는 전지적인 시선에서 보석이 보이지만 깊은 땅속 여기저기에 묻힌 보석이 보일리가 없는 샘과 데이브는 귀신같이 보석만 피해 다닌다. 파도파도 안 나오네.. 하고 옆으로 틀면 그 바로 밑이 보석이고, 옆으로 나눠서 파보자.. 하면 서로 보석만 피해서 파내려 간다. 이 상황에서 강아지 만은 보석이 어딨는지 아는 것 같지만 그들은 눈여겨보지 않는다. 결국 너무 지쳐 까무룩 잠이 든 샘과 데이브, 그리고 뼈다귀를 파내려 간 강아지. 그 순간 아래가 뚫리며 이 셋은 어디론가 떨어진다. 그곳은 다시 집인 것처럼 보이지만 묘하게 디테일이 다르다. 어떻게 된 것일까? 그건 모르겠지만 "정말 어마어마하게 멋지다."라고 동시에 말하며 두 친구는 집으로 들어간다.


삶의 구간구간에서 삽질을 많이 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의미에만 집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그림책은 가볍게 쓱 보면, 별일 없는? 허무한 내용이지만 깊숙하게 들여다보면 볼수록 뭔가 있다.


도대체 아마 어마 하게 멋진 것은 무엇인지...

이 둘의 불균형한 관계는 왜 설정한 것인지...(한 명이 계속 의견을 내고 한 명은 따른다.)

보석만 쏙쏙 피해 다니는 이 친구들의 모습과 대비되게 강아지는 어떻게 보석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는 건지...


이렇게 열려 있는 이야기를 곱씹다 보면 내 삶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들이 찾고 있던 건 과연 보석이었을지, 보석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를 상상해 보게 된다.


아니, 이 둘이 애초에 찾으러 나선 어마어마하게 멋진 것은 보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보석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가 그렇게 단정 짓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결혼 전에, 내가 찾아 나섰던 것은 뭐더라?

나를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요즘 새삼 느끼고 있다.


그렇다. 나는 배우자로,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바랐었다. (내 탓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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