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을 분석할 때 큰 비중을 차지하는 특징이 양가감정이다. 뭐 거의 매사에 양가감정을 느끼고, 모든 것에서 동전의 양면을 찾아낸다고 보면 된다.
기질 검사에를 해도,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은 마음과 스트레스 없이 쉬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번쩍번쩍 솟구치는!
그러다 보니 힘들기도 했지만 어쩌면 마인드셋에 참 좋은 성향일지도 모른다. 내 안에 없는 사고를 만들 것이 아니라 이 인디언 명언처럼 내 안에 있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니.
우리의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단다, 그리고 이 두 마리는 항상 싸우고 있지. 한 마리는 늘 화가 나있고 불만과 욕심이 많고 오만하단다. 다른 한 마리는 늘 기쁨에 차있고 친절하지.
어느 늑대가 이길 것 같니?
네가 먹이를 주는 늑대가 이긴다.
어느새 4학년이 된 나는 대학 생활, 동아리 활동, 알바 및 과외, 봉사활동, 각종 문화생활(주로 영화제나 락페 자봉, 연극 리뷰어 활동....) 등을 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여전히 뭔가 목말랐다. 당장의 취업보다도 더 크고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근질거리던 참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고등학교 때 나갔던 민간외교단체를 통해 다시 미국 시골 community college 교환학생을 나가게 된다. 곱게 나갔어야 했는데... 가는 게 확정이 되고 온갖 사람들과 송별회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마음이 말랑하던 참에 할머니와 단 둘이 대화를 하게 된다.
할머니는 또 남동생이 불쌍하다고 풀어놓기 시작하셨고 (당시 중학교 중퇴하고 히키코모리로 3년 정도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했었다) 내가 너무 쟤만 오냐오냐 다 받아주고 키워서 그렇지 않냐며 차별에 대한 썰을 풀게 되었다. 어쩐 일로 웃으시면서 뭐가 그렇게 차별이었는지 이야기해 보라는, 재밌다며 또 없냐고 더더 말해보라는 할머니의 부추김에 하나, 둘 썰을 풀다가 나는 그만 선을 넘고 말았다.
"할머니가 나 딸이라고 지우랬었다면서요."
그러자 할머니는 아니라면서 마침 엄마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서... 엄마가 들으면 속상하니까 우리끼리 비밀~이라며 눈까지 찡긋하셨다. 그렇게 하하 호호 오래간만에 가족이랑 기분 좋게 이야기를 했네~ 생각하며 그날도 봉사단체 사람들을 만나러 갔던 거 같다. 갑자기 엄마한테 전화가 오더니 너 도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할머니가 울고불고 쓰러지고 난리가 났냐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황망하게 집으로 후다닥 들어가니 할머니가... 내가 키우준 은혜도 모르고 배은망덕하게 자기 지우라고 하지 않았냐며 눈에 독기를 품고 삿대질을 해가며 죽일 듯이 대들었다며 노해 계셨다. 나는 졸지에 가해자가 되었고, 중학생 때부터 품고 있던 상처를 처음 꺼내놓았던 이 경험은 나에게 몇 배나 큰 상처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자기가 지우라고 한 게 아니라 엄마가 와서 딸인데 지울까요? 묻길래 지우지 말라고 했다고 엄마한테 떠넘겼고 엄마는 자기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며 니가 잘못 듣고 지어낸 거라고 나한테 떠넘겼다. 그리고 미국에 나갈 때까지 내내 나는 죄인이었고, 할머니는 외할머니를 비롯해 친척들이 집에 올 때마다 저년이.. 거리며 나를 비난하셨다. 마음이 가장 지옥 같았던 부분은 내가 너무 오랫동안 혼자 아파했던 상처에 대해 사과는커녕 가해자의 포지션이 돌아오는 지점에 대한 절망감?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마음으로 진짜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났고 노트북도 차도 없던 20대의 동양인은 그곳에서 더 큰 세상은커녕 심심한 시골 라이프를 맞이하게 된다.
취업에 도움 되는 과목을 들으라는 엄마의 당부를 뒤로 하고(그래도 나도 성취가 중요한 사람이라 한 학기 연장해서 1년 반 있으며 졸업장을 따고 왔는데 그 졸업장은 평생 어디에도 써본 적이 없다 ㅎ) 졸업용 필수 과목 외에는 기타, 피아노, 연극, 심지어 사진 수업까지 들었다. 암실에서 흑백 필름 인화해 본 경험, 지금 생각해도 소중하다.예술을 향유하는 걸 좋아할 뿐, 창조엔 재능이 없음을 빠르고 확실히 알게 해 줘서.
도서관에서 근로 장학생처럼 일하면서(학생 비자로 할 수 있던 유일한 알바) 모은 돈으로 방학 때 유럽여행도 갔다 왔다. 그때가 원래 계획한 1년이 끝나서 (학점이 좋아서 계절학기와 추가 학점 수강신청을 허락받아한 학기만 더하면 졸업이 가능했던 건데 지금 돌이켜보면 왜 거기까지 가서 공부를 했는지... 바보다) 홈스테이 가정을 옮겨야 했어서 미국에 남아 있기는 눈치 보이는 상황이라 한국에 잠깐이라도 다녀오고 싶었는데 (친구들과 음식이 너무 그립고 향수병이 있었다) 한국 비행기표가 유럽보다 더더더 비싸서 약간 아쉽게 가서 제대로 즐기지 못해 아쉽긴 하다. 그 유럽에서! 한국 음식과 한국을 그리워하다니ㅠ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데 그땐 그랬고 와중에 계절학기 듣느라 영국에서도 과제를.... 그래도 뭐 미국에서도 차 있는 일본 친구(같은 프로그램 교환학생)랑 친해서 같이 쇼핑도 다니고 (미국 시골은 정말 차 없으면 아무 데도 못 간다...) 물처럼 싼 와인도 열심히 마셨다. 미국 현지 친구들 파티에 어쩌다 초대받아 가면 화장실에 마리화나 있고 그래서 막상 미국 친구들과는 안 어울렸던 거 같다. 시골이 도시보다 순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이문화가 없는 시골에서 무료함에 젖은 청년들이 무얼 하고 노는지 살펴본 결과 20대 청춘들은 도시로 보내는 것을 추천합니다.
뭐 어쨌건 좋은 경험이었다만 당시엔 한국에서보다 더 퇴보되는 느낌이 있어서 뭔가 하고 들어가야겠다 싶어 알아보다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 메일을 보내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영화도 실컷 보고 갔다. 워낙 인디영화를 좋아하기도 했는데, 그때 유타의 눈 덮인 길을 mp3 꽂고(bgm: 밸앤세바스챤) 걸어가던 나... 한국 사람 한 명도 없고 대부분 영화 관계자들이던 그곳에서 약간 위축되고 외롭던 느낌... 돈이 없어서 노숙자들이 장기체류하는 1박에 12달러짜리 호스텔에서 사과 하나... 1달러짜리 티브이 디너 하나 먹으면서도 근무 시간 외에는 보고 싶은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어 행복했던 이 시절이 아마 내 인생 가장 열정적인 순간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아, 지금 내 열정은 다 어디로 증발했을까?
퇴보라고 생각했던 이 시절이 크나큰 인정욕구 뒤에 숨어있던 여유라는 이상향을 조금은 꺼내주지 않았나 돌아본다. 이후의 삶은 내가 여태껏 살아남은 생존방식인 열심이, 노력이 와 내 본성이가 필요로 하는 여유와 쉼(지금도 이런 개념을 생각하면 게으름, 귀찮음 같은 부정적인 개념들이 떠올라 열심히 떠올렸다) 같은 것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돌아보면 힘든 순간에 주저앉고 걸어간 그 한 걸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임을,
그래서 빌런을 만나고 고난을 겪으며 내가 레벨 업했음을 인정한다.
집에서 멀어질 때마다 나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지만, 누워서 울기보다는 어디든 여기보다 안 좋을까, 하는 심정으로 나가보고 찾아봤던 것 같다. 마음을 나눌 사람을...
이 그림책은 출간되자마자 구입하고 널리 홍보했던 완벽한 마인드셋 그림책이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사자가(뒷 속지에서 표현했듯 누군가에게는 독수리, 곰, 뱀....) 있다.
이 책에는 각각 방 안에 있는 노랑이랑 파랑이가 나온다. 똑같이 문 밖에는 사자가 있고 무섭다. 그런데 노랑이는 '그래서 나는 나갈 수 없어.'라고, 파랑이는 '그래도 나는 나가고 싶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부터 둘의 행보는 갈린다. 계속 무서워만 하는 노랑이, 무서우니 사자의 이빨과 발톱 같은 특성을 공부하는 파랑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을 여는 건 용기가 아니지. 무모함이지요.
이 부분도 너무 좋았다.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기회를 봐서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진짜 용기 있는, 그리고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공감이 가서. 섣불리 문부터 열었다가 더 큰 상처를 입고 마음을 닫은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이렇게 계속 회피하며 불안만 키운 노랑이와 불안이 뭔지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공부한 파랑이는 같은 사자의 으르렁대는 소리에도 다른 생각을 한다.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건가? vs. 배가 고픈 건가?
똑같이 사자의 소리가 들려도 한 명에게는 공포, 한 명에게는 기회라니!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회사에서 상사가 화를 낼 때...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하는 사람 vs. '오늘 기분이 안 좋으신가?' 생각하는 사람 당연히 내가 잘못한 게 없다면 후자가 건강한 생각이겠다. 이렇게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반응한다. 이것을 알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게 마인드 셋이겠지.
결국 사자가 배가 고프다고 생각한 파랑이는 이 기회를 잡아 사자를 유인하고 밖으로 나온다. 밖을 신나게 탐험하던 파랑이는 다시 곰을 만나지만 이번에도 방법을 생각해 볼 힘이 있다. 반면 노랑이는 나도 나가고 싶은데 사자 때문에...라고 생각하며 방 안에서 계속 떨고만 있다.
나의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때로는 노랑이처럼 무기력하게 아파했고, 때로는 파랑이처럼 씩씩하게 나의 아픔을 대면했다. 아니, 이 둘은 따로가 아니라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조금씩 나아갔다. 어쩌면 노랑이인 시간을 지나 조금씩 파랑이가 되어 가고... 그러다 상처받으면 다시 노랑이로 돌아가고 그러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삶에는 계속 두려움, 불안이 들이닥칠 것이다. 이것을 직면하고 이겨나가며 살아갈지, 회피하고 숨어버릴지는 결국 나의 선택이지만... 회피하는 사람은 계속 방에 갇히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 한 번쯤 용기를 내보고 싶지 않을까? 한 번 이렇게 효능감을, 회복 탄력성을 맛보고 나면 다른 고릴라, 악어, 공룡도 마찬가지로 상대할 용기가 솟을 테니.
어쩌다 보니 문을 많이 열어본 호기심쟁이라, 혼자 울고 있는 노랑이에게도 "지금 괜찮아. 나랑 같이 나가 보자."라고 문을 두드려 주고 싶다.
(오지랖이다. 그랬다 다치면 책임져 줄 수도 없으면서)
그래서 이 그림책이 내게 준 질문을 던져 보며 마무리하겠다.
내 문 밖에 있는 사자/내가 열지 못하고 있는 문은 무엇일까?
그 문을 열면 어떻게 될까?
열고 나온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
문을 열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부디, 건승을 빈다! (내 안의 노랑이도)
이런 경험들을 통해 희노애락이 공존하는 걸음들에서도 성장의 기회를, 도움의 감사함을, 기타 등등 긍정적인 것들을 찾아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