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한 시간을 그래도 필요한 시간이었나 보다고 바라보는 배경에는 내가 괴로움을 공부로 승화해 대입에 성공한 것이 한몫했을 것이다.
우선은 힘든 시기에 책으로 도피했기에 초등 시절에 어지간한 세계 문학은 돌파한 상태였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로는 셀프 독서치료를 한 느낌이었고, 데미안이니 주홍글씨니, 죄와 벌이니 하는 소설들을 엄마한테 혼나가며 미친 듯이 읽었다(이공계 패밀리는 소설 읽는 걸 낭비라고 인식하더라는).
그렇게 어쩌다 보니 수능 언어 영역 셀프 선행, 그리고 언니 어깨너머로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영어로 미국까지 갔다 왔으니 영어도 완료.
미국에서 공부한 것이 인정은 되지만, 한국 고등학교가 1년이 비면 학업을 따라잡는 것이 치명적이고 사실 미국 10개월이 큰 매릿도 없어 대체로는 교환학생 갔다 오면 1년 꿇는데 나는 거부하고 그냥 2학년 2학기로 복학을 했다. 때마침 미국에 있는 사이 가족이 이사를 해서 새로운 동네.. 새로운 학교에.
새로 복학한 학교의 친구들은 그전 동네친구들보다 공부는 못 했지만 훨씬 착했고, 1년 정도 입시판을 떠나 있다 바로 고2 2학기부터 시작하니 공부에 지치지도 않았던 나는 공부도 곧잘 했지만 노래방과 떡볶이에도 진심인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여전히 반에서 유일하게 핸드폰이 없던 학생이었지만 그런 걸로 이제는 따돌림을 당하진 않았다. 한 번도 학창 시절을 즐거웠다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1년 반은 즐거웠던 것도 같다. 야자를 해서 친구들과 저녁까지 먹었었고 집에서는 잠만 잤던 것도 컸을 듯...
언니가 이런저런 학원을 심드렁하게 다니고 관두고 해서 나는 학원에 있어서는 기회를 얻지 못했고... 귀한 언니가 걱정되어 교환학생을 보내지 못한 덕에 나는 갈 수 있었다. 그땐 언니만 잘한다고 칭찬하고 학원도 보내주고 해서 억울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학원보다 자기 주도(혼자 책 보고 문제집 풀고)가 더 맞는 성향이었던 것이다, 마침. 엄마가 그걸 파악하고 일부러 그렇게 지도해 주신 것이 아니라는 점이 유감이나 아무튼 강의를 듣는 것보다 혼자 보는 것을 더 잘 흡수하는 데다(활자중독) 뭔가 임박하면 엄청난 효율성을 발휘하는 내 성향에 사교육 빠진 2학년 2학기 복학은 신의 한 수였다. 이때도 엄마는 물론 1학년 2학기로 복학하라고 하셨지만 미국에서 혼자 결정하고 혼자 생활해 본 경험 덕인지 그럴 바엔 그냥 복학 안 하고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강수를 두어 내 뜻대로 해본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온 집안의 기대주인 언니보다 좋은 결과를 내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돌아온 것은 내가 기대한 칭찬일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내 인생 가장 큰 성과였던(그땐 정말 몰랐지.... ㅎ 아이들 낳고 나니 이제야 교문에 단독으로 걸렸던 플래카드 사진 한 장 안 찍어놓은 게 아쉽다ㅎㅎ) 대입! 혼자 씩씩하게 수능 보고 혼자 씩씩하게 집에 왔고 언어, 외국어 두 과목이나 상위 1%가 떴다.
끝내 따라잡지 못한 수학 외에는 괜찮은 성적이어서 그렇게 스카이 문과대학에 합격하는데 엄마는 스카이보다는 언니와 같은 학교(서울 중위권 대학) 사범대를 갔으면 하셨다. 그 배경에는 언니의 자존심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늘 언니보다 한두 단계 아래 학교를 가라고 했는데 더 좋은 학교를 혼자 기를 쓰고 가버린 것이다. 우리 집은 조선 시대 스타일의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으니 이는 반역이었다. 언니 대학에는 사범대 전체 수석으로 붙었는데 그 짠돌이 우리 집에서 장학금은 모두 나를 주겠다고 꼬셨었다. 사실 엄마는 아직도 네가 사범대를 갔어야 했다고 한다. 엄마는 사립 중 교장으로 퇴임하셨고 연금으로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고 계시니 분명 나를 위한 말일 거다. 그런데 나는 엄마를 보며... 내 아이에게 선생님이고 싶지 않았고..... (결국 늘 가르치는 일을 해오긴 했다는 아이러니)
나의 성취에 대해서는 언니가 속상할 수 있으니 조용히 있으라는 입장이셔서 정말 경사는커녕 약간은 죄인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때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대단하다. 잘했네~ 자랑스러운 일이야.라고 나라도 말해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우리 꾸물이, 이 그림책은 대학원에서 집단상담 실습수업을 들을 때, 나의 상담 데뷔를 함께 한 친구이다.
토끼와 거북 뒷 이야기로, 토끼가 잠든 바람에 달리기 경주에서 이긴 거북 꾸물이는 순식간에 슈퍼 스타가 된다. 온 마을이 꾸물이에 열광하는 와중에 꾸물이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결국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위치에 떳떳하기 위해 꾸물이는 밤낮없이 훈련하며 빨라지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렇게 정말로 빨라진 슈퍼 거북 꾸물이의 거울 속에는 천 년은 늙은 것 같은 지친 거북이 있었다.
꾸물이는 그저 천천히 살고 싶었던,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때 토끼가 재시합을 신청한다. 그렇게 밤잠을 못 이루던 슈퍼 거북.
경주가 시작되고 진짜 빨라진 슈퍼 거북은 슝 순식간에 토끼가 보이지도 않게 재치고 나무 밑에서 잠이 든다. 그렇게 토끼가 이긴 경기에서 깨어난 거북은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 오랜만의 단잠을 자고 그렇게 원하던 여유로운 삶을 산다.
이 그림책을 보며, 꾸물이가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애를 쓰며 사는 것을 멈추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결에 안 맞는 것에서 운이 좋게 최고라는 타이틀을 얻어서... 그래도 그렇게 숨어 버리거나 척하지 않고 진짜 실력을 노력해서 획득한 꾸물이 너무 멋지지 않나?
그 과정을 통해 최고가 되어 누리고 살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게 애써 얻었는데도 나의 길이 아니라고 결단하고 그만둘 수 있는 용기도 그렇고 우리 꾸물이 보통 거북은 아니었구나?
20 대란 나에게 집이라는 진흙탕에 삼켜져 있던 나를 꺼내어 털고 씻고 이런저런 맞는 옷을 찾아보던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싫은데, 20대로는 좀 돌아가고 싶다. 너무 즐겁고 좋았어서가 아니라 아쉬운 점이 많아서...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더 인생을 즐길 수 있었을 것만 같달까?
지나고 나면 힘든 시간들도 다 어떤 의미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 같은데, 이 말이 터널 안에 있을 땐 어찌나 듣기가 싫은지...
그래서 꾸물이도, 느려도 괜찮다는 말... 남들이 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말...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잘했어. 그렇게 최선을 다해보고 다른 길을 선택하면 적어도 미련도 후회도 없잖아?
그래도 너, 푹 쉬고 나면 다시 달릴 거지?
나는 네가 멈추어서 다행이면서도 죽도록 애써서 얻어낸 달리기 실력을 잘 사용하면 좋겠어. 1등 하는 데 말고, 빨라지고 싶은 동물들을 코칭한다거나, 쉬고 싶을 땐 쉬고 가야 할 땐 가는 방향으로라도!
거북은 저렇게 살아도 거북의 삶에 충실한 것이니 괜찮을지 몰라도 우리 인간은 자아성취를 통해 돈을 벌어야 하니 말이다.
여유를 늘 그리면서도, 힘든 상황들을 늘 스스로 꾸물이처럼 애쓰고 노력해 헤쳐나간 각인으로 인해 늘 나를 혹사하는 중이라 마지막 속표지의 여유로운 꾸물이가 부럽기도 하다.
지금도 주기적으로 애쓰다 번아웃이 오는 나에게 치열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도 얘기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