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선택에는 지금 돌이켜 보면, 알게 모르게 지난 유년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의 나의 모든 것들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러하듯, 육아를 하며 부부는 다시금 서로의 내면아이를 샅샅이 마주한다.
그와의 모든 갈등들을 안고 가지 못했던 것에는 앞에서 기술한 듯 나의 취약했던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그릇이 크지 못했기 때문도 있음을 이제는 안다. 그렇지만 처음 아이를 낳고 나와의 혹독한 싸움 속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던 그때에 유일한 나의 편이어야 할 대상이 자기도 보살펴 달라고 나를 보채는 것은 어떤 상황인지 독박으로 육아를 해본 분들은 알지 않을지.
어찌 됐건, 남편 입장에서는 생에 최초로 자신을 지지해 주고 관심 가져주고 애정을 주던 대상이(그의 가족이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나 표현이 없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아이에게 온 시간을 쏟으니 마치 동생이 태어나 질투하는 첫째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자존심이 상해 인정하기는 어려운 마음일 테지만 또 한 편으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종의 '사랑'이었을 수도...
그리하여 그는 내 육아의 파트너가 되지 못하고 큰 빌런이 되었다. 그는 번번이 아기에게 화를 냈고, 지금도 발화점이 매우 낮아 펑펑 터지는 존재이다. 아들이 가족을 소개할 때 아빠에 대해서 '불같이 화를 낸다'라고 적었고, 딸은 '화만 안 내면 완벽한 아빠'라고 나보다 더 너그럽게 아빠 편을 들어준다. 편을 들어줘도 빠질 수 없는 그놈의 화. 그것 또한 그의 성장 과정에서 물든 것이라는 것을 유추하면서도, 혹은 진짜 그의 어떤 기능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킬 앤 하이드와 살 듯이 나는 무한히 답답했다.
우리 가족이 자꾸만 마주치는 하이드. 그는 아이고 사정이고 없이 자신의 짜증과 화를 마음껏 분출한다. 나는 그를 말릴 수 없다. 내가 대화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지나가고 돌아온 지킬. 지킬은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기도 하지만 주로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대화를 마무리한다. 그러나 그 또한 하이드가 언제 오는지는 알 생각도 적극적으로 막을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그의 약속은 아이들조차 "아빠는 화 안 낸다고 맨날 말만 하고 또 화내더라."라고 신뢰를 잃는다. 그리고 가족 외의 모든 사람들은 지킬만 만나지 하이드는 모르기에 우리는 오래 억울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그도 노력하고 있다. 이 노력을 알아줄 수 있는 것도 이런 온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들보다는(벌써 이해하는 거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어른인 나일 텐데 아이들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나도 관대해지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우리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서로 멀어졌다. 남편이 아들을 부당하게 잡을 때마다 나는 아들을 보호하고 편들 수밖에 없었고, 그런 나에게 그가 서운해하는 것을 느꼈으나 그 마음까지 돌보기에는 나도 상처를 많이 받아온 10여 년이었다. 머리로는 그의 상황도 다 이해하지만 나의 마음은 아이들에게 나눠줄 애정조차 마르지 않도록 자꾸 펌프질을 했어야 했기에.
언젠가 이 '왼손에게' 그림책을 봤을 때, 이러한 상황에서의 남편과 내가 떠올랐다.
왼손에게는 화가 난 오른손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정말 참을 만큼 참았어. 더 이상은 못 참아."
오른손은 누구에게 그렇게 화가 난 걸까? 아니 정확히는 억울한 걸까? 숟가락질, 양치질, 가위질, 빗질까지도 모두 자기의 일인데 핸드크림 바를 때만 왼손이 얄밉게 쓱 먼저 다가오는 것이다. 심지어 반짝이고 근사한 것도 죄다 왼손 차지다. 똑같은 손인데 하나는 일만 하고, 하나는 팽팽 놀면서도 더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은 그 기분. 매니큐어를 바르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오른손은 정성스럽게 왼손에게 매니큐어를 발라주었다. 그런데 왼손은 엉망진창으로 갚는 게 아닌가! 이건 일부러 그러는 거야!! 그런데 왼손은 자기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말도 안 돼. 왜 너는 맨날 놀고 나만 일하냐고 하니까 내가 먼저 나서서 다 해 버렸단다. 오른손과 왼손이 싸우다 오른손이 다쳤다. 왼손이 너무 미운데 사람들이 다 하필이면 오른손을 다쳤다며 왼손을 무시하는데 왼손은 바보처럼 듣고만 있다. 왼손은 정말 오른손 대신 열심히 최선을 다했지만 오른손처럼 할 수가 없다. 어느 날 왼손에 모기가 앉아 물렸는데 왼손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다. 오른손이 다가가 긁어주고 다시 모기가 왔을 때 둘은 힘을 합해 모기를 잡았다.
나도 남편도 불안정 애착이다. 나는 그것이 싫어 육아부터 심리학까지 열심히 공부를 했다. 남편은 이쪽이 관심사가 아니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간극은 벌어졌고, 남편은 자신이 받은 그대로, 가기고 있는 그대로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것은 요즘 옳은 육아가 아니었다.
그리고 같은 과정을 거쳐 노력해 온 나에게는 남편이 부족하고 못 미더워 보였을 뿐만 아니라 그런 대물림이라는 변명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삶의 절반, 20년을 그쪽으로 애를 써서 이제 겨우 벗어난 것이면서, 그가 아이 앞에서 쑤욱 변할 수 있을 것처럼.
나는 나에게 혹독한 것은 나의 선택과 성장일지라도 타인에게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되는 것인데,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배워서 사랑하는 나에게도 육아가 버거웠고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다.
얼마 전 캠핑을 갔다. 우리 집은 내가 토요일에 일해서 캠핑을 가기 좋은 상황이 아니다. 어쩌다 연휴에 친구네와 캠핑을 다녀온 남편은 캠핑에 꽂혔고 그렇게 바로 텐트와 장비를 사서 나 없이 두세 번 캠핑을 갔다 왔다. 물론 내 마음에 드는 캠핑은 아니었다. 가서 닌텐도, 영상을 신나게 즐기다 올 거면 뭐 하러 굳이 고생을 하지? 자연도 즐기고 오면 좋겠는데... 그런데 사실 남편이 혼자 애들을 데리고 텐트에서 자는 경험을 시켜준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일 수도 있는데.
그러다 나도 같이 캠핑을 갈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제외된 상태에서 세팅이 된 캠핑이다 보니, 캠핑짐을 챙기는 것과 정리하는 것에 아는 바가 없었다. 심지어 남편은 각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데, 나는 대충 쑤셔 넣는 편이라 캠핑 이전에도 뭔가 짐을 쌀 때 내가 싸면 남편이 마음에 안 들어해서 도와주려다 일이 더 생겼다고 타박을 받기 일쑤였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혼자 하고 내가 그 시간에 애들을 데려가서 놀아주고 있는 것이 돕는 것이라 생각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남편이 불평을 하는 것이다. 다들 같이 치고 같이 정리하는데 자기만 혼자 한다고. 그래서 내가 하면 잘 못 해서 싫어할까 봐 그랬다고, 내가 뭘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으니 한숨을 쉬며 그냥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의 나는 다소 억울했지만 남편 입장도 알 것 같았다.(유명한 똥손.....)
그렇다. 이 안에 대해서는 내가 왼손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오른손이다 왼손이다를 반복한다.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그래서 서로를 보듬고 격려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터이다. 그것이 쉽지 않았던 것에는 풀지 않은 이야기보따리가 30개쯤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사람과 짝꿍으로 2인 3각 경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어디 나라고 이 사람 마음에 꼭 드는 배우자일까? (대체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훗!)
식은 마음에 다시 온기를 불어 일으키는 것은, 끊어진 관심을 다시 잇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모든 변화는 인식에서 오기에, 비록 머리의 것들이 마음으로, 그리고 행동으로 나오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나는 이 관계를 회복시킬 것이다.
(이해하고픈 마음조차) 내려놓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 중년, 이제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무서운 아빠와 대신 싸워주는 것보다 무서운 아빠를 해처럼 녹이며 보듬는, 사이좋은 부모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아이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나와 그, 각자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을 미숙하고 연약한 우리 자신들을 위해서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아직 남편과 소통이 안 되는 심리상담사. 가끔 부모교육을 하고 집에 오면 내가 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일들이 잔뜩 벌어져있어 현타를 받곤 하는 평범한 부모다. 그러나 변화는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렇게 흉이 가득했던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