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해피엔딩인가 또 다른 시작인가?!

20대 초반

by 밍밍

드디어 이번 글부터 20대에 진입!!!

20 대란 나에게 집이라는 진흙탕에 삼켜져 있던 나를 꺼내어 털고 씻고 이런저런 맞는 옷을 찾아보던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릴 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싫은데, 20대로는 좀 돌아가고 싶다. 너무 즐겁고 좋았어서가 아니라 아쉬운 점이 많아서...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더 인생을 즐길 수 있었을 것만 같달까?


지금 돌이켜보면 대학 진학이 터닝 포인트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좀 풀어볼까 한다.


우리 집은 할머니의 비호를 입은 남동생과 결혼 7년 만에 어렵게 얻은 귀한 장녀 언니의 구도로 돌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언니가 이런저런 학원을 심드렁하게 다니고 관두고 해서 나는 학원에 있어서는 기회를 얻지 못했고... 귀한 언니가 걱정되어 교환학생을 보내지 못한 덕에 나는 갈 수 있었다.

그땐 언니만 잘한다고 칭찬하고 학원도 보내주고 해서 억울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학원보다 자기 주도(혼자 책 보고 문제집 풀고)가 더 맞는 성향이었던 것이다, 마침. 엄마가 그걸 파악하고 일부러 그렇게 지도해주신 것이 아니라는 점이 유감이나 아무튼 강의를 듣는 것보다 혼자 보는 것을 더 잘 흡수하는 데다(활자중독) 뭔가 임박하면 엄청난 효율성을 발휘하는 내 성향에 사교육 빠진 2학년 2학기 복학은 신의 한 수였다. 이때도 엄마는 물론 1학년 2학기로 복학하라고 하셨지만 미국에서 혼자 결정하고 혼자 생활해본 경험 덕인지 그럴 바엔 그냥 복학 안 하고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강수를 두어 내 뜻대로 해본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온 집안의 기대주인 언니보다 좋은 결과를 내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돌아온 것은 내가 기대한 칭찬일 수가 없었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내 인생 가장 큰 성과였던(그땐 정말 몰랐지.... ㅎ 아이들 낳고 나니 이제야 교문에 단독으로 걸렸던 플래카드 사진 한 장 안 찍어놓은 게 아쉽 ㅎㅎ) 대입!

혼자 씩씩하게 수능 보고 혼자 씩씩하게 집에 와서 채점하고 들은 소리는 "어떻게 인간이 350점을 못 넘니? (언니 유명한 물수능, 나 불수능) 이래서 지방 전문대나 가겠니?"라는 엄마의 타박이었고... 언어, 외국어 두 과목이나 상위 1%가 떴고 미국 매릿 전혀 없이 오히려 혼자 1년 치 따라잡아 정시로 스카이에 붙었던지라... 엄마의 그 반응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최근에 물어보니 네가 거만해질까 봐, 겸손하라고 그런 거라고..... 나는 자존감이 낮은 걸로 둘째 가면 서러운 사람이었는데 엄마는 너무나도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 처치를 계속하셨다.


합격 후에도 스카이보다는 언니와 같은 학교(서울 중위권 대학) 사범대를 갔으면 하셨는데 그 배경에는 언니의 자존심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었을 것이다. 늘 언니보다 한두 단계 아래 학교를 가라고 했는데 더 좋은 학교를 혼자 기를 쓰고 가버린 것이다. 우리 집은 조선 시대 스타일의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으니 이는 반역이었다. 언니 대학에는 사범대 전체 수석으로 붙었는데 그 짠돌이 우리 집에서 장학금은 모두 나를 주겠다고 꼬셨었다. 사실 엄마는 아직도 네가 사범대를 갔어야 했다고 한다. 엄마는 사립 중 교장으로 퇴임하셨고 연금으로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고 계시니 분명 나를 위한 말일 거다. 그런데 나는 엄마를 보며... 내 아이에게 선생님이고 싶지 않았고.....

(결국 늘 가르치는 일을 해오긴 했다는 아이러니)


이십 대에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몰랐던 것도 문제였지만 엄마한테 평생 선생님 하라는 말을 들으니 선생님은 정말 안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선생님보다 더 훌륭한 사람 될 거야~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결국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내 힘으로 온전히 이루어내도 인정해주지 않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뿅 하고 싹트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도 대부분 전문대를 갔고(4년간 스카이를 보낸 적이 없는 고등학교라 합격 후 논술 준비도 교감선생님이 봐주셨었다. 끝까지 학원이나 과외는 안 시켜주심 ㅎ) 집에서도 언니는 중상위권 대학 수시 붙었었는데 수능이 쉬워 한두 문제로 미끄러져 중위권 대학을 가서 속상해했는데, 조용히 있으라는 입장이셔서 정말 경사는 커녕 약간은 죄인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때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대단하다. 잘했네~ 자랑스러운 일이야.라고 나라도 말해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이런 게 내면 아이 작업일까? ㅎㅎ)


쓰면서도 자랑으로 보일까, 잘난 척으로 보일까,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세상이 너무 힘들어 도망친 책들이 나의 문해력을 도와줬고, 죽을 것 같아 도망친 미국 교환학생 시절이 영어와 입시 공부를 할 마음의 준비를 시켜줬다고 생각한다(남들 지쳐갈 때 심심했던 시절을 보내고 온 나 ㅎ). 지나고 나면 힘든 시간들도 다 어떤 의미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 같은데, 이 말이 터널 안에 있을 땐 어찌나 듣기가 싫은지...


이제부터 밝은 이야기! 가 아니고 자존감 낮은 상태로 명문대에 입학한 후... 처절한 방황과 자아 찾기가 시작된다. 그래도 앞에서는 계속 가라앉았다면 이제부터는 나아가기 위한 발버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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