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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Nov 17. 2023

시집살이? 아니 며느리살이

딸은 엄마 인생을 닮는다고? - 3

"우리 집에는 제사가 없어"

결혼 전, 남편이 자랑하듯 나에게 한 말이었다. 아주 어릴 적에는 명절에 친척집을 간 기억도 있긴 한데 그것도 아주 가끔이었고 명절도 그냥 보통의 주말과 다르지 않게 보냈다고 한다. 남편의 집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집이었다.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 네 식구 사는 집에 티브이가 4대인  일인당 일TV를 고수했다. 


가족에 관해서는 그려려니 하며 넘기는 남편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약간 섭섭해하는 일이 하나 있다. 군대에 있을 때 부모님 포함 가족 누구도 면회를 한 번도 오지 않은 것이다. 남편이 소속된 부대는 집에서 지하철을 타면 30-40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고, 부대에서 부모님께 연락을 해서 한번 면회를 와달라고 말했는데도 끝내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군인일 때 해외로 파병을 다녀왔지만 가족들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얼마 전 가족들이 모여 티비를 보다가 남편이 "나 저기 파병 갔을 때 말이야"하는 대화가 오고 갔는데 어머님도 아가씨도 "파병을 갔다왔다고?" "언제 갔다 왔어?" 하며 처음 듣는 소리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해외 파병을 하루 이틀 만에 다녀오지는 않았을 테고 몇 달을 서로 연락도 없이 집에 오면 휴가 나왔나 보다. 없으면 들어갔나 보다 했다는 것이다. 


그와 정 반대로 나는 집에  끊임없이 사람이 오고 가는 집에서 자랐다. 제사와 차례는 물론 지냈고 아빠의 직장 사람들에게 우리 집은 회식 장소였다. 나는 많은 집들이 우리 집과 같은 모습의 살아 가는지 알았다.


결혼하고 첫 명절은 추석이었다. 음식 준비하는 어머니 옆에서 심부름도 하고 간도 봐야지 하며 어떤 음식이 메인이 될지 궁금하고 설레기도 했다. 그때는 시댁 식구들에게 잘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은 그런 며늘며늘한 시절이었으니 더 파이팅이 넘쳤을 것이다. 

남편은 우리끼리 장을 봐서 시댁에 들고 가자고 했다.

"왜? 어머님은 우리랑 마트 안 가시는 거야?"

"엄마가 우리 보고 사 오래. 목록을 보내줬어"


(생략)........... 부르스타, 제일 큰 프라이팬............(생략)


그때 왜 부루스타를 사라고 했었는지 이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동안 휴대용 버너나 그릴을 사용할 만큼 많은 음식을 한 적이 없었던것이다. 우리 집이 얼마나 화목한 집안인지 보여줘야 했고 며느리는 초반에 기를 죽여놔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기필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신듯했다. 

내 작은 행동 하나까지 "그거 아니다"로 시작하며 가르치려고 하셨다.  전을 할 때도 밀가루와 계란을 입혀서 굽는 나를 보시고 "그거 아니야. 밀가루 하고 계란 섞어야 해"  포기김치를 썰때도  "그거 아니야. 넌 왜 김치를 거꾸로 써니"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는 질문에는 답을 피하셨다. 나는 그냥 '내가 하는 게 모든 게 싫으시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안 하던 음식도 하고 틈틈이  며느리도 지적해야 하니 명절증후군은 내가 아닌 어머니가 생길 판이었다. 

몇 해 뒤에 아가씨가 결혼을 하며 어머니의 명절 백기 투항은 빠르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아가씨가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명절을 앞두고 어머니는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연휴 첫날에는 출근을 해야 한다고 너 혼자 음식 해야 할 거 같다는 내용이었었다. 그날 이후로  자연스럽게 명절 음식은 나 혼자서 준비하기 시작했다. 혼자라기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했다는 말이 더 맞을 거 같다. 고기 반죽으로 네모, 세모, 동그라미의 기발한 동그랑땡도 만들어지고, 찢어지고 두 장 입혀진 깻잎 전이 수두룩했으며 꼬지 하고 남은 꼬챙이로 소떡소떡도 만들었다.  

아이들이 아빠와 놀이터로 나가면 본격적으로 밀가루와 계란을 입혀 기름을 휘휘 두른 프라이팬에 전을 하기 시작했다. 기계적으로 전을 뒤집으며 단순노동의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정신 차려보면 3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펴지지 않는 허리를 부여잡고 냉장고 안에 있는 비락 식혜로 느끼한 속을 달랬다. 역시 떨어진 당을 끌어올리기에는 식혜가 최고다. 혼자 준비하는 명절도 나쁘지 않았다.


이런 집에 돌아가신 시할머니의 제사가 폭탄처럼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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