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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희 Nov 21. 2023

내가 가져가도 될까

딸은 엄마인생을 닮는다고? - 5

     시댁에서 제사를 안 지내기고 결론을 내리 셨다니 두 분의 싸움 원인이 없어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제사를 지내오던 사람들도 이런 저런 이유로 안 지내거나,  1년 제사를 모아 한번에 지낸다고 한다. 제사는 지켜야 할 우리 문화이기도 하지만 차림과 예법이 어렵고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시어머니의 제사 보이코 선언 이후 며칠 동안 내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불안한 것도 아니고 콕 찍어 말로 표현 못할 무언가가 가슴 꽉 막고 있는 듯했다. '왜 이런 기분이 들까?' 원인을 찾고 싶었다. 


남편은 학창 시절까지도 제주도 할머니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할머니를 5년이나 10년에 한 번쯤 만나는 게 다였고, 시아버지도 자신의 엄마(=제주도 할머니)에 대한 살가움은 없었기 때문에 남편의 한여름 메마른 땅과 같은 감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남편은 결혼 후에 자신의 아이를 안고 만나러 간 할머니는 예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무뚝뚝한 할머니도 손주를 보면 미소를 지으셨고 그 모습을 본 남편은 할머니에 대한 애정의 싹이 돋아 나는것 같았다. 

남편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제주도를 찾을 때마다 옆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나의 친할머니는 뵌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시할머니의 모습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백발에 방 문 앞에 쪼그려 앉아 계시던 모습이 눈앞에 선 하다. 싱숭생숭했던 내 감정은 시할머니를 보내고 애도의 시간이 없다는 게 뭔가 서운하게 느껴진 것 같았다.

내 마음이 이런데 남편은 어떤 마음일까? 

남편은 아무렇지 않은데 나 혼자 왕오지랖을 떨고 있는 건 아닌가 궁금했다.


"할머니 제사 안 지내기로 한 거 어떻게 생각해?"

"엄마 아빠가 그렇게 정했는데 뭐 할 수 없는 거지"

"그래? 혹시.. 그냥..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할머니 제사는 지내는 건 어떨까?"

"우리 집에서? 엄마 아빠 오시라고 해서?"

남편은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말했다.

"아니~ 그냥 우리 끼리 하자는 거지. 아이들도 있으니까 할머니께서 증손주 보러 오시겠지"


남편은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는 제안이었다. 어차피 내가 다 만들고 내가 다 준비해야 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고 싶으면 해. 그런데 힘들게 준비하지는 마. 있는 것만 놓고 간단하게 하자"

"응, 그래 생각해 볼게"

생각해 본다고 말했지만 이미 제사를 하는 걸로 마음은 기울어져있었다. 그리고 남편의 말 한마디는 나의 마음을 더 가볍게 만들어 주었고 부담이 없으니 제사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린 시댁뿐 아니라 친정, 친구, 가까운 지인까지 누구에게도 제사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조언과 참견의 말들을 차단하고 싶었다.  난 제사 지내는걸 보고 자랐으니 내가 알아서 잘할 거라 믿었고 우리가 결정한 제사이니 만큼 우리의 힘으로 하고 싶었다.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에는 어린 여자 아이가 제사상에 놓은 빵을 찾아다니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주도 제사상에는 롤케이크나 카스테라와 같은 빵을 올린다고 한다. 

제사 당일, 하교하는 둘째 아이와 평소 지나다니며 눈여겨보았던 빵집으로 향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는 홍보 문구와 당일 제조 당일 판매를 원칙으로 한다는 말에 확신을 갖고 가게로 들어갔다. 

카스테라와 롤케이크는 없었다. 망설이다가 진열된 빵 중에서 제일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빵을 골랐다. 

시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치아가 튼튼하였으니 이 정도는 드실 수 있다고 나름 합리화를 했다. 먹고 싶은 빵을 몇 개 더 골라 빵집을 나왔다. 


집으로 와서 난생처음으로 제사상에 올리는 지방을 썼다. 다이소에서 사 온 붓펜과 종이를 꺼내고 인터넷에서 지방 쓰는 법, 할머니 제사 지방 쓰기 등을 검색하여 한자를 찾았다. 

초등학교..(아니 난 국민학교였다.) 국민학교 1학년때 서예학원을 다녔었는데 그때 실력을 되살려 최대한 반듯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총 5장을 썼다. 아이들을 불러서 1번부터 5번까지 중에 어떤 게 제일 나은지 골라보라고 했다.

"다 똑같은데?"

"아니야 자세히 봐봐~"

"어 난 이거" "나도 이거"

  아들 둘은 엄마가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을 보는 둥 마는 둥하며 대충 하나씩 찍었다. 이렇게 확연하게 다른데 뭐가 똑같다는 말인지 원참... 아이들 의견과 나의 의견을 반영하여 이쁜 한 장을 골라 지방틀에 넣었다. 

얼추 제사 준비가 다 되어 갈 때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응응 괜찮아. 회사가 바쁜걸 어떻게 하겠어. 걱정하지 마 우리 셋이서 잘해볼게"

아빠의 야근으로 인해 첫제사는 나와 아들 둘이서 지내게 되었다. 


상이 다 차려지고 "들어가서 양말 신고 와"라는 말로 제사가 곧 시작될 것임을 알렸다. 

 절하자. 술잔을 돌려라. 젓가락을 옮기자. 아! 이걸 빠뜨렸다. 아니다 이게 먼저다. 하며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오늘은 처음이니까! 

우리는 진지했고 즐거웠다. 

 제사는 숨죽이고 지루하고 끝날 때까지 꾹 참아야 하는 따분한 문화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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