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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인간 Jul 18. 2023

실격 3

나무인간 46

2018. 3, 1 - 3, 21 진행된 염소진 개인전 '실격', 스페이스 55(서울 은평구 소재)에 전시된 텍스트입니다.


3. 그녀는 기차역을 마주했다.     


 오랫동안 그녀의 세계는 구성원들에게 긴 암흑 속 터널과 같은 고유한 절차를 거치기를 권고해 왔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 각기 이동(travel)이 주어졌다. 위험하고 눅눅한 그 통과의례를 어떤 사람들은 돌아간다는 핑계로 반대 또는 외면했다. 하지만 우울과 절망이 녹아든 도처에 사람들도 그녀도 도저히 스스로 생경한 자가 되기를 거부할 도리가 없었다. 이 같은 과정들이 지속적으로 번복되는 까닭은 보편적 도덕성을 간과한 개인의 윤리적 판단 결여로 인해 사회적 자아의 내용이 실추되기 때문이라고 도시의 매체들은 말했다. 자유의지가 있음에도 불행한 사람을 도울 묘책은 세상에 없다고도 했다. 심지어 사회적 요구가 어느 사건을 통해 강요로 뒤바뀔 때마다 그들의 자기 결정권은 의미를 상실했다. 그런 강제로부터 실격은 그녀의 내부에서 이루어진 재량권과 같았다. 외부의 폭력적 유물인 시공간(기차역)의 위협에 갇힌 실재에게 방어기제란 그녀의 관념이 기차에 오를 결정을 유예하는 것뿐, 이미 결연했던 그녀이기에 역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한동안 제자리에서 어지러운 광장의 숨을 들이켠다. 하지만 궁극적 사건(강제이주)은 끝내 없다. 그녀에게 마침표란 의미의 끝이 아닌 방점, 하나의 서사를 평화적으로 연장하겠다는 머리와 꼬리가 맞물린 평행선언이다. 개인의 종말이나 종착역 따위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녀의 의지는 실추될 수 있던 격을 스스로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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